훈족의 출현③…헝가리분지 차지, 로마를 공격하다
훈족의 출현③…헝가리분지 차지, 로마를 공격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08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훈족에 쫓긴 서고트족에 로마 황제 피살…소아시아, 훈족 공격에 노출되다

 

서기 376, 훈족에 쫓긴 서고트족은 로마제국 발렌스(Valens) 황제의 관용으로 국경을 건너게 되었지만, 지방관들은 그렇지 않았다. 로마의 지방관들은 강을 건너기 전에 서고트족의 무기를 내려 놓으라고 했다. 무기는 명예의 상징이자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다. 고트족은 다른 걸 모두 줄 터이니 무기만은 지니게 해달라고 했다. 관리들이 노리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재물과 색을 원했다. 서고트족들은 하는수 없이 아내와 딸들에게 몸을 팔라고 했다. 로마 관리들은 고트족의 카펫이나 돈 되는 물건들도 내놓아라고 했다. 무기를 지키기 위해 서고트는 로마관리들의 마음에 드는 물건도 내놓았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서고트족은 무기를 소지한채 배에 올라타 다뉴브 강을 건넜다.

로마 영내에 들어간 서고트족은 숫자를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당대의 역사가 암미아누스는 이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헤아리는 것은 마치 리비아 평원의 모래알을 세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일본 역사문학가 시오노 나나미는 당초 예상했던 10만명보다 많은 30만명쯤 될 것으로 보았다.

로마관리들의 수탈은 갈수록 가혹해졌다. 로마 정부가 고트족에게 제공하기로 한 식량을 빼돌렸고, 고기를 얻으려면 노예를 바치라고 했다.

2년후인 378, 서고트족은 참다 못해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북서쪽에 있는 아드리아노플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서고트족은 발칸반도 북부를 휩쓸며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했다. 국경을 건너지 않았던 동고트족도 로마 영내로 들어와 반란에 합류했고, 훈족에 떠밀려 온 알란족도 가세했다. 반란은 걷잡을수 없이 확대되었다.

시리아 안티오키아에 원정을 나갔던 발렌스 황제가 로마 정예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그해 89일 아드리아노플에서 로마군과 야만족 연합군의 일대 회전이 벌어졌다. 초반에는 조직적인 로마군이 제압해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압도적인 수의 고트족와 알란족의 인해전술에 로마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로마군은 병력의 3분의2를 잃었고 황제는 측근과 함께 어느 오두막집으로 피했다. 고트족 병사가 그 오두막집에 숨은 로마인이 황제인줄 모른채 불을 질렀다. 50세의 황제는 불에 타 죽었다.

 

유럽의 민족이동 /위키피디아
유럽의 민족이동 /위키피디아

 

로마 황제를 죽이고 승기를 잡은 서고트족은 발칸반도를 휘젖고 다녔다. 그들은 다뉴브강 남쪽 로마 영토에 사실상 독립왕국을 수립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수시로 로마의 도시를 약탈했다.

발렌스에 이어 테오도시우스 1(Theodosius I)가 제위에 올랐다. 382, 테오도시우스는 용단을 내려 서고트에게 정착지를 주기로 했다. 트라키아 북부, 도나우강 하류 일대로, 오늘날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또 동고트에게는 다뉴브강 중류 판노니아 동부가 주어졌다. 오늘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일대다.

그리고 동맹이라는 지위도 부여했다. -서 고트족은 로마의 시민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동맹의 지위가 나았다. 세금도 내지 않고 자치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서고트족이 다뉴브강을 건넌 376년부터 정착이 허용된 382년까지의 소요를 고트 전쟁(Gothic War)라고 부른다.

 

헝가리 평원 /위키피디아
헝가리 평원 /위키피디아

 

발칸반도에서 고트전쟁이 벌어질 때 훈족은 다뉴브강 북쪽에 진을 치고 호시탐탐 로마 국경을 노렸다. 376년 서고트족을 밀어낸후 380년까지 훈족의 움직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381년 게르만족 일파인 스키리족(Scirii)과 카르피(Carpi)족과 연합해 판노니아(헝가리 초원)를 공격하고, 384년과 385년에 다뉴브강 하류 소스키타이(Scythia Minor)를 공격했다. 훈족이 서서히 로마 국경 내로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훈족이 헝가리 초원(판노니아)를 차지한 때가 380대년쯤으로 보고 있다. 헝가리 초원은 아시아 북부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이어지는 초원(steppe)의 서쪽 끝이다. 지금도 그 분지를 로마시대의 이름을 따 판노니아 분지(Pannonian basin)라 부른다. 초원이 형성되어 말과 양을 방목하기 좋은 곳으로, 훈족에 이어 10세기 마자르족, 16세기 투르크족등 초원의 유목종족들이 이 땅을 차지했다. 면적은 대략 52으로, 남한의 절반 정도로 좁다. 훈족은 살기 좋은 곳을 차지했지만, 오래 정착하기에는 비좁은 곳이었다. 그들은 헝가리에 본부를 두고 젖과 꿀이 흐르는 로마영내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훈족 이동로 /Cambridge Univ. Press
훈족 이동로 /Cambridge Univ. Press

 

서기 395, 훈족은 대대적으로 로마를 공격했다. 길은 두가지였다. 첫째 길은 다뉴브강을 건너 트라키아로 가는 길이고, 다른 길은 카프카즈 산맥을 넘어 아르메니아, 파르티아를 거쳐 시리아로 가는 길이었다. 이 두 갈래의 전투에 대해 역사학자들의 견해가 다르다. 두 전투가 모두 훈족의 조율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과, 서로 다른 훈족의 공격이라는 주장이 있다. 후자의 견해는 당시까지만 해도 훈족이 단일 지도자를 형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부 훈족이 다뉴브 강을 건넜고, 우크라이나 초원에 머물던 동부 흉노가 카프카즈를 넘었다는 것이다.

특히 훈족의 소아시아 공격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훈족이 소아시아 공격을 384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동부의 훈족은 카프카즈 산맥을 넘었다. 그들은 로마의 영역인 시리아 에데사로 향했다. 하지만 로마군은 막강했다. 훈족은 로마군에 격파당하고 서이시아로 진군해 아르메니아를 정복하고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했다. 그들은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Ctesiphon, 바그다드 인근)을 위협했지만 페르시아군애 패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소아시아(터키)로 방향을 돌려 안티오키아를 공격해 그곳을 차지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인구 50만으로 서이시아에서는 최대의 도시였다. 그곳의 로마 장군은 가까스로 병사들을 수습해 반격에 나섰다.

당시 훈족의 공격을 받은 로마 시민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성수(聖水)를 말에게 먹이고 성전에서 여자를 희롱하며 아이들의 머리를 베어 기둥에 매달았다. 우리의 딸들은 옷이 벗겨진채 말에 태워져 떠난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서아시아를 짓밟은 훈족은 3년후에 되돌아갔다. 훈족이 돌아간 이유도 불투명하다. 로마군의 반격으로 돌아갔다는 주장도 있지만, 추운 초원에서 살던 유목종족들이 지중해 여름의 폭염을 이겨내지 못하고 초원으로 돌아갔다는 주장도 있다. 이후에도 훈족은 수시로 카프카즈 산맥을 넘어 서아시아를 공격했다.

 

후세에 대제로 불리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5년 사망하기 직전에 로마제국을 둘로 나눠 아들들에게 물려 주었다. 서로마제국엔 동생인 호노리우스(Honorius), 동로마제국엔 형인 아르카디우스(Arcadius)가 각각 황제에 올랐다.

테오도시우스가 죽자 다뉴브강 하류 남쪽에 정주해 있던 서고트족에는 후에 로마제국을 뒤흔든 알라리크(Alaric)가 왕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왕국을 세웠다. 영국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알라리크가 로마군에 입대해 승진을 원했지만 로마가 거부해 독립하게 되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6세기 사학자 요르다네스는 로마가 서고트족을 전쟁 선봉에 내몰았기 때문에 그 불만이 쌓여 부족민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서고트족은 로마의 지배에 순종해 평화를 유지하느니, 차리리 독립왕국을 세우자며 알라리크를 방패 위에 올려 왕으로 추대했다는 것이다.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은 먼저 동로마제국을 타깃으로 했다.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 성채의 견고함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 반도의 테살리아를 훑고 다녔다. 알라리크는 그리스 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하했다가 다시 서해안으로 북상했다. 서고트는 아테네, 코린트, 아르고스, 스파르타 등 그리스의 주요도시를 약탈하면서 일리리쿰(llyricum)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지역이다.

 

서기 400, 당대의 역사기록에 처음으로 훈족의 지도자 이름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울딘(Uldin)이다. 울딘이 앞서 지도자로 기록된 발람베르(Balamber)와 혈족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루마니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올트 강(Olt River)의 동부 지역을 지배하는 수장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에서는 그를 부왕(副王) 정도로 파악했지만 훈족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리더로 평가된다.

로마 제국은 역내의 서고트족, 역외의 훈족이라는 안팎의 도전에 휩싸이게 된다.

 

아테네에 진입한 알라리크 /위키피디아
아테네에 진입한 알라리크 /위키피디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