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영악한 국제유가 계산법…하락장 예측
멕시코의 영악한 국제유가 계산법…하락장 예측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1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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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 상황 대비 장기계약성 헤지 걸어…감산 요구에 불응하는 배짱도

 

2019년 기준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하루평균 원유생산량은 1,200만 배럴, 러시아가 1천만 배럴이다. 미국이 세계 석유생산 1위를 차지하며 하루 1,500만 배럴을 생산한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소비량이 많아 수출을 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국제석유 수출시장은 사우디와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와 러시아가 국제원유시장의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20달러 초반으로 가라앉았다. 두 산유국의 헤게머니 전쟁으로 미국 원유생산회사의 채산성이 악화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산유국에 감산을 요구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에 합의하고 OPEC에 가입하지 않은 많은 산유국도 감산에 합의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멕시코가 감산에 합의할수 없다고 나왔다. 멕시코의 원유생산량은 2019년 기준으로 하루 218만 배럴로 세계 원유생산량의 비중이 2,5% 정도에 불과하다. 세계 12위 산유국인 멕시코는 사우디의 5분의1, 러시아의 4분의1 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멕시코가 저돌적으로 감산 요구에 불응하자 OPEC+의 합의가 무산될 지경에 이르렀다. OPEC+는 멕시코에 하루 40만 배럴 감산을 요구했지만, 멕시코는 10만 배럴 이상은 감산할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국제유가 저점 /김현민
2000년 이후 국제유가 저점 /김현민

 

멕시코의 입장에서는 감산에 동의하면 가격이 올라 수익성을 올릴수 있다. 하지만 멕시코는 자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OPEC+의 감산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버티고 있다. 산유국 세계에서 사우디와 러시아는 골리아스다. 멕시코가 당당하게 골리아스에게 덤비도록 한 다윗의 무기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이 멕시코가 보유한 비장의 무기를 소개했다. 바로 국제유가 헤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와 국영석유회사 페멕스(PEMEX)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요 투자은행들과 장기거래 계약을 전제로 한 헤지계약을 체결해 두었다. 일종의 풋옵션(put option)인데 국제유가가 배럴당 49달러의 가격에 거래하도록 한 장기조건이다.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진 최근에도 멕시코 석유회사는 배럴당 20달러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헤지 계약기간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인데 멕시코 석유회사는 이 기간 내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회복되지 않아도 손해는커녕 오히려 수익을 얻게 된다.

연간 헤지 비용은 10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는 최근의 유가 하락에도 자신만만해 한다. 아르투로 에레라(Arturo Herrera) 멕시코 재무장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헤지 보험이 싸진 않다""그러나 이는 지금과 같은 저유가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 재정은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멕시코 재정의 상당 비율이 원유 수출에서 충당된다.

멕시코는 석유수출 대금에서 배럴당 2~5달러를 떼 석유안정화기금(oil stabilization fund)으로 비축한다. 따라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45달러가 되면 멕시코의 적정한 헤지가격이 된다.

 

PEMEX 로고 /위키피디아
PEMEX 로고 /위키피디아

 

멕시코가 유가 헤지에 재미를 들인 것은 이미 20년이나 된 일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2008년에 멕시코가 유가 헤지를 할 당시의 상황을 소개했다.

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고공행진했고, 2008년 최고 147달러로 치솟았다. 당시 원유시장에서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시장의 원유수요가 급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722, 국제유가는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멕시코 정부와 PEMEX 경영진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스, 도이체방크 등 국제적으로 내로라는 투자은행 트레이딩 매니저들을 멕시코시티로 불렀다. 멕시코는 투자은행에 배럴당 65~87 달러에 장기계약 조건의 헤지를 걸어달라고 요청했다. 세계적인 투자회사들도 겁이 덜컥 났다. 다들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베팅을 하는 판국에 절반 가격에 거래를 걸었다가 막대한 손해를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당시 연간 석유생산량 33,000만 배럴을 몽땅 헤지했다. 네덜란드가 1년에 수입하는 엄청난 물량이었다. 이중 영국의 바클레이스가 22,000만 배럴, 골드만삭스가 8,500만 배럴에 대해 헤지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를 하시엔다 헤지 계약(Hacienda hedge)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은 멕시코가 예상한대로 움직였다.. 그해 9월 리먼브러더스 부도위기가 터지고 국제유가는 이내 배럴당 55달러로 폭락했다. 멕시코가 헤지를 건 평균 가격은 배럴당 70 달러였으니, 배럴당 10달러 이상의 이익을 낸 셈이다.

그러면 멕시코는 어떻게 미래의 석유가격을 예측했을까.

블룸버그 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멕시코는 미국에 이웃해 있으면서 뉴욕 월스트리트와 끈끈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정치인, 경제관료, 기업인들이 수시로 월스트리트에 다니면서 국제경제의 고급정보를 수집했다. 이미 2007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미국에선 베어스턴스 등 일부 투자은행이 부도 위기에 몰렸고, 조만간 금융위기가 올 것이란 예감이 있었다. 국제원유시장만 천정부지로 뛰고 있었다. 월가와 교감을 한 멕시코 경제 수뇌부는 곧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멕시코인들은 서둘러 투자은행과 시가의 절반 가격에 장기계약 헤지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후에도 멕시코는 지속적으로 국제유가 헤지를 걸었다. 2008년 계약에서 빠졌던 도이체방크와 모건스탠리도 참여했다.

멕시코는 이후 국제유가 폭락시에도 늘 이익을 냈다. 블룸버그의 분석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멕시코는 유가 헤지에서 51억 달러를 벌었고, 2015년 폭락 시에도 64억 달러, 2016년 사우디 주도의 증산 경쟁에서도 27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현재 멕시코 대통령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es Manuel Lopez Obrador),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좌파 지도자다. 그는 국제석유시장에서 멕시코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원유생산량을 늘리겠다고 공언해왔다. 오브라도르는 원유생산량을 2024년까지 하루 250만 배럴로 늘려 그 수익금으로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멕시코 정부가 OPEC+의 감산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공약 때문이기도 하다. 히지만 유가 헤지라는 비밀병기가 없었으면 국제시장을 흔드는 골리아스에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멕시코는 지난해말 헤지계약을 체결할 때에 국제유가가 폭락할 것을 예측한 것 같다. 그 판단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서 얻었을 것이다.

멕시코는 아시아 금융위기 직전인 1995년에 페소화 폭락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당시 멕시코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예단하지 못하고 페소화 가치를 지지하려다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했다. 그후 미국 금융시장과 이웃해 있다는 점을 활용해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을 따라갔고, 이젠 시장을 예리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멕시코의 해상 유전 /위키피디아
멕시코의 해상 유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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