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석유 패권 휘둘렀다…트럼프 감산 주도
미국, 국제석유 패권 휘둘렀다…트럼프 감산 주도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4.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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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가스로 세계최대 산유국 부상…추가 감산에도 미국 영향력 클 것

 

10년전만 해도 국제석유시장의 주도권은 당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 아라비아가 쥐고 흔들었다. 사우디는 그동안 아랍 산유국이 중심이 된 OPEC를 통해 국제원유가격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사우디도, 러시아도 아닌 미국이 이번 국제원유시장의 감산을 주도했다.

 

사우디와 러시아, 미국은 12일 화상회의를 통해 하루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합의안은 하루 1천만 배럴 감산이었는데, 멕시코가 감산 몫 40만 배럴을 10만 배럴로 줄여달라고 요구한 것을 받아들여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번 감산 합의의 주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1주일 동안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 황태자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화상회의를 벌이며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것이다. 당초 합의안에서 멕시코가 반발해 감산량을 하루 30만 배럴 줄여달라는 요구도 트럼프가 나서서 멕시코에 보상을 약속했고, 사우디가 수용했다고 한다.

 

이번 감산 합의는 국제석유시장의 패권이 바뀌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미국은 지난 10여년간 셰일가스 시추기술을 개발해 국내에 매장된 셰일오일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세계 최대산유국이 되었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원유생산량에서 미국의 비중은 18%1위를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사우디 12%, 러시아 11%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유가 폭락은 한달전 러시아가 사우디와의 감산 합의를 거절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우디가 러시아의 패권 장악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증산을 결정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원유 생산단가가 사우디에 비해 비싼 미국 셰일석유 생산업체들은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도산 위기에 빠졌고, 트럼프도 코로나 경제위기를 타파하는 수단으로 원유시장에 개입하게 되었다.

국제석유전문가인 헬리마 크로프트(Helima Croft)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동안 OPEC을 비판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석유생산자 그룹의 사실상 대통령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박차영
그래픽=박차영

 

미국이 국제석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 것은 셰일석유 덕분이다.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2008년에 하루 500만 배럴에 불과했지만, 그후 셰일오일이 생산되면서 201112월 하루 600만 배럴을 넘어섰고, 201211700만 배럴, 20141800만 배럴, 그해 9900만 배럴을 돌파했다.

이에 2015년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오일 산업을 죽이기 위해 무제한 원유 증산을 단행하는 바람에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미국의 원유생산 증가 속도도 주춤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미국의 셰일오일산업의 성장을 저지하지 못했다. 미국 셰일업계는 공장 통폐합, 기술개발 등을 통해 원가를 낮추었고, 석유에만 의존하던 사우디가 굴복해 유가를 다시 올렸다.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201610월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17121,000만 배럴을 돌파하고, 지난해 1,500만 배럴에 이르게 되었다. 미국은 10여년 사이에 생산량이 3배 이상 커지면서 더 이상 사우디와 중동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이번처럼 국제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실, 사우디와 러시아 등 OPEC+의 감산만으로 국제유가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산유국들이 감산하지 않을 경우 유가 회복은 불가능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번 합의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하루 200만 배럴을 감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국영회사가 원유를 생산하기 때문에 감산을 조절할수 있지만, 미국은 민간기업이 생산하기 때문에 정부의 컨트롤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석유전문가들은 석유회사들의 자율적 조절로 미국의 감산할당분만큼 생산을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국제석유시장에 개입할 때 사우디와 러시아가 따라온 것은 두 나라의 석유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원유생산이 GDP에 차지하는 비중은 42%이고, 예산에 기여하는 비중도 87%에 이른다. 저유가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사우디의 인내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러시아의 경우 사우디에 비해 원유가 GDP나 예산에 차지하는 비중이 낮지만 정제시설과 비축시설이 부족해 감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석유비축시설이 넉넉하기 때문에 저유가가 오래될 경우 과다 생산량을 비축해 차후 석유전쟁에 대비할 여력을 갖추고 있다. 결국 장기전에 돌입하면 사우디와 러시아가 미국에 질 게 분명하고, 트럼프가 중재에 나서자 못 이기는척하며 따라온 것이다.

 

이번 석유 싸움에서 또하나의 승자는 멕시코다. 멕시코는 감산량을 당초 40만 배럴에서 10만배럴로 줄일수 있게 되었다. 멕시코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49달러에 장기계약 헤지를 걸어 놓았기 때문에 산유 강대국들의 감산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몫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트럼프가 멕시코가 감산해야 할 몫을 떠 안으면서 합의를 유도했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미국은 이 정도는 수용할 여력이 있다.

이번 합의는 5~6월 두달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 추가 협상도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전염병이다. 이미 코로나의 영향으로 국제원유시장의 수요가 이전보다 35%나 줄어들었다. 추가 감산이 없을 경우 국제유가 하락세를 반전시기 힘들다. 이날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가 상승폭이 크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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