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아프리카 해적의 종언②…미국의 첫 해외전쟁
北아프리카 해적의 종언②…미국의 첫 해외전쟁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4.27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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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 트리폴리의 공납요구 거부…4년간 전투 끝에 해적세력 제압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1801년에 벌인 첫 전쟁 상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금의 리비아였다. 당시 트리폴리(Tripoli)는 해적의 소굴로 오스만투르크를 종주국으로 인정하는 준독립국가였다. 자체 무장력을 갖고 인근 해역을 지나가는 상선들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며 이를 내지 않은 선박을 나포하고 선원을 인질로 삼았다.

당시 트리폴리를 지배하던 수령은 오스만투르크에서 파샤(Pasha)라는 귀족 지위를 부여받은 유수프 카라만리(Yusuf Karamanli)였다. 파샤는 미국이 이웃 알제와 튀니스에는 정기적으로 공납을 바치면서도 자기네에게 공납을 내지 않는데 불만을 품었다. 게다가 유럽 강대국도 때를 맞춰 조공을 바치는데 아메리카 대륙의 신생국이 돈 한푼 내지 않고 지중해를 넘나드는 것을 우습게 보았다.

18005월 파샤는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에게 위협적인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벗이여, 우리는 당신의 현명한 행동을 기대한다. 만일 말만 앞세우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 …… 당신의 해답이 지체될수록 이익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해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온건파 애덤스가 패하고 강경파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당선되었다. 트리폴리의 파샤는 제퍼슨의 새 정부에 225천 달러의 돈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의 1년 연방예산이 1천만 달러를 약간 웃돌던 시절에 트리폴리의 요구는 너무 컸다. 돈도 돈이지만 제퍼슨은 돈을 주고 선박통행의 안전을 추구하는 애덤스의 전략을 반대해온 강성파였다. 제퍼슨은 파샤의 요구를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자 트리폴리의 파샤는 1801510일 미국 영사관에 걸려 있던 성조기를 쓰러뜨렸다. 그들 방식의 선전포고였다.

앞서 미국은 새로 건조한 신형 프리깃 군함 6척을 지중해에 파견해 놓았다. 제퍼슨은 지중해 함대에 전투준비를 지시하고 의회에 전쟁 비준을 받아냈다. 동시에 트리폴리의 이웃인 알제와 튀니스의 중립유지를 얻어냈다.

 

미 해군의 트리폴리 해상봉쇄(1804) /위키피디아
미 해군의 트리폴리 해상봉쇄(1804) /위키피디아

 

미 해군제독 에드워드 프레블(Edward Preble)은 나폴리 왕국을 찾아가 군수품 지원과 항구 사용에 관한 허락을 얻어냈다. 당시 나폴리 국왕 페르디난드 4(Ferdinand IV)는 프랑스 나폴레옹군과 전쟁 중이었지만 미국이 대신해서 아랍 해적들을 무찔러 주겠다기에 적극 협력을 약속했다. 앞서 트리폴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스웨덴도 미 해군에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외교적 지원을 얻은후 미 해군은 트리폴리 항구를 포위했다. 81일 미국 순양함 엔터프라이즈(Enterprise)호는 트리폴리의 해적선을 일방적인 공격으로 격퇴시켰다.

트리폴리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미 해군의 해상봉쇄에 맞서 해적집단은 해안 포대에서 집중적으로 포탄을 쏘아대 적함의 해안 접근을 저지했다. 미국은 계속해서 추가 함대를 파견해 총 11대의 함선으로 해상봉쇄와 함포사격을 가했다. 전투는 1년 이상 지속되었다. 미국은 상대가 지칠 때까지 봉쇄작전을 계속할 심산이었다.

그러던 중에 180310월 미 해군의 필라델피아호(USS Philadelphia)가 적의 소형선을 추격하던 도중에 얕은 여울에 걸려 좌초하고, 베인브리지(William Bainbridge) 함장을 비롯해 선원 307명이 포로로 잡히는 일이 발생했다. 선박은 트리폴리항구로 인양되었다. 트리폴리의 해적들은 필라델피아호의 포대를 거꾸롤 돌려 미 해군을 향해 쏘아 댔다.

이제 미 해군에게는 트리폴리의 해적을 잡는 일보다 나포된 필라델피아호를 격침시키는 일이 중요해 졌다. 18042월 미 해병 70명은 야음을 틈타 인트레피드호(USS Intrepid)를 타고 트리폴리 항구로 들어가 필라델피아호를 불태워버렸다. 병사들은 뒤늦게 인지한 트리폴리측의 포격을 피해 전원 무사히 탈출해 이탈리아 시라쿠사로 귀환하는데 성공했다.

 

좌초하는 필라델피아호 /위키피디아
좌초하는 필라델피아호 /위키피디아

 

미국은 함포사격으로 트리폴리를 응징하지 못하고, 의외의 방향에서 승기를 잡게 되었다. 미국은 개전과 동시에 트리폴리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추진했다. 트리폴리의 집권자 유수프 카라만리를 몰아내고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운다는 음모였다. 이 계획은 트리폴리 영사였던 제임스 캐스카트(James Leander Cathcart)가 구상했던 것인데, 군 출신 외교관 윌리엄 이튼(William Eaton)이 그 계획을 수행하기로 했다.

윌리엄 이튼 /위키피디아
윌리엄 이튼 /위키피디아

 

해군 정보장교로 부임한 이튼은 유수프에게 쫓겨나 망명생활을 하던 하메트 카라만리(Hamet Karamanli)를 찾아 나섰다. 하메트는 동생 유수프와 함께 쿠데타로 트리폴리의 정권을 장악했지만 오스만투르크 총독에 의해 쫓겨나 있었다. 그후 유수프가 다시 쿠데타로 트리폴리를 차지했다. 하메트는 트리폴리 파샤로서 정통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튼은 18052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하메트를 찾아갔다. 이튼은 유수프 정권을 전복시키고 당신에게 권력을 찾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고 용병부대를 구성했다.

미국은 이 용병부대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고, 해군 전함을 지원했다. 하메트와 이튼이 이끄는 400명의 용병부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8km를 진군해 해안도시 데르나(Derna)를 기습공격했다. 데르나는 리비아 동쪽에 있는 도시로, 트리폴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튼의 용병부대의 육상공격과 해상의 미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18055월말 데르나는 함락되었다. 유수프는 급히 지원군을 파견했지만 유수프의 통치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이튼과 하메트는 데르나를 지켜냈다. 이 전투는 미국이 최초로 해외에서 승리해 땅위에 성조기를 올린 승전으로 기록된다.

 

1805년 데르마 전투 /위키피디아
1805년 데르마 전투 /위키피디아

 

이제 유수프가 코너에 몰렸다. 그는 형 하메트에게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미국의 협상 제의에 응했다. 미국과의 전쟁을 끝내고 반군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1805610일 양측은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4년에 걸친 전쟁을 마무리했다.

조약 내용은 미국에 유리했다. 미국은 당초 트리폴리가 요구한 225천 달러를 주지 않고, 포로의 몸값으로 6만 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 외에 통행료 등 공납을 내지 않는다는 조건도 얻어냈다. 필라델피아호의 베인브리지 함장과 선원들도 모두 풀려났다.

 

트리폴리와 데르마 /위키피디아
트리폴리와 데르마 /위키피디아

 

협상이 타결되면서 미국은 더 이상 데르나를 지원할 필요가 없었다. 이튼은 협상타결 이틀후인 612일 밤에 하메트와 함께 배를 타고 데르나를 탈출했다. 날이 밝은후 데르나의 주민들은 이튼과 하메트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다. 그후 유수프는 데르나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튼은 후에 미국에서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이튼에 협조했던 데르나 주민들이 유수프 군에 의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를 언급한 미국 기록은 없다.

 

미국이 독립후 첫 전쟁에서 보여준 방식은 그후 250년간 대외정책에 그대로 반영된다. 전쟁과 외교를 동시에 수행하고, 테러와 납치에 굴북하지 않으며, 적의 집권층에 대항하는 반군을 이용해 레짐 체인지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용하고 버리는 관행도 계승되고 있다. 최근 미국은 ISIS와의 전쟁에 이용한 쿠르드족을 배신했고, 아프간에서, 베트남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 왔다.

 

신대륙의 신생국이 무법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는 모습은 구세계 열강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열강들도 더 이상 북아프리카 해적세력과 타협을 하지 않고 무력으로 제압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미 해병에 의해 불태워진 필라델피아호 /위키피디아
미 해병에 의해 불태워진 필라델피아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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