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초래한 샤트알아랍 수로
[물과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초래한 샤트알아랍 수로
  • 아틀라스
  • 승인 2019.04.19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의 무역로…이 수로를 놓고 8년간 전쟁 벌여

 

사막의 땅 메소포타미아를 촉촉하게 적시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하류에서 합쳐져 페르시아만으로 빠져 나간다. 두강이 합쳐진 곳에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곳까지를 샤트알아랍(Shatt al-Arab)이라고 한다. ‘아랍의 강이란 의미의 이 거대한 물줄기는 이란과 이라크 국경을 따라 200km를 흐른다. 이란에서는 샤트알아랍 수로를 빠른 강이라는 의미로 아르반드루드(Arvand Rud)라고 부른다.

이 강은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오랜 분쟁의 대상이었다. 이라크의 바스라, 이란의 아바단이 이 강을 끼고 오랫동안 하항(河港)으로 자기매김해 왔다. 이 강은 고대로부터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상인들이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무역로였다. 최근에 이 수로는 두 나라 석유 수출에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샤트알 아랍은 늘상 국제정치의 역학적 관계에 따라 관할권이 바뀌었다. 늘상 힘 센 나라가 이 수로를 차지했다.

 

샤트알아랍 수로 /MAP ARCHIVE
샤트알아랍 수로 /MAP ARCHIVE

 

이라크와 이란은 경제적·전략적 요충지인 샤트알아랍 수로의 영유권을 놓고 오래도록 대립해왔다. 두 나라는 이 수로를 내줄수 없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에 샤트알아랍은 이란과의 국경이었다. 1913년 이슬람의 두 강대국인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이란은 국제적 관례인 '탈베크(Talweg)의 규칙'을 따라 샤트알아랍의 가항수로(可航水路)의 가장 깊은 곳(流心)을 양국 간의 경계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오스만투르크가 패하고, 이라크는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32년 이라크는 영국이 뒤를 돌보아 주는데 힘입어 샤트알아랍의 동쪽(이란쪽) 연안으로 국경선을 긋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란은 탈베크의 규칙을 지켜 강 중앙을 경계로 하자고 했지만, 러시아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따랐다.

1968년 영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이라크는 19694월 샤트알아랍이 자국 영토라고 선언하고, 이 수로를 운항하는 이란 선박이 이란 국기를 달 수 없으며, 이란 해군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이란의 팔레비(Pahlevi) 국왕은 1937년의 국경조약을 파기하고 군대의 호위 하에 이란 국기를 단 선박이 수로를 운항하게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국내에서는 쿠르드족 반군을 내전을 벌이고, 이스라엘과 맞서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라크는 이란의 무력시위에 대응해 군사적 행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1975년 이란이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 반군을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양국은 샤트알아랍 수로의 중앙선을 경계선으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를 알제 협정(Algiers Accord)이라고 한다.

 

이라크 바스라를 지나는 샤트알아랍 수로 /위키피디아
이라크 바스라를 지나는 샤트알아랍 수로 /위키피디아

 

이 협정은 5년만 물거품이 되었다. 19797월 야심만만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집권한데다 이듬해 1980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전쟁은 후세인의 야심에서 시작되었다. 아랍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후세인은 페르시아(이란)를 증오했고, 마침 이란에 혁명이 일어나 혼란스러운데다 수니파 국가의 단결을 꾀할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의 서방국가들이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던 시기여서 좋은 타이밍이라고 보았다.

1980917일 이라크는 갑자기 알제 협정의 파기를 선언하고, 샤트알아랍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5일후인 922일 사담 후세인은 이란 공군기지를 폭격하라고 자국 공군에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시작한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이나 끌었다. 죽은 자가 50만명, 사상자도 비슷한 숫자였다. 100만명의 사상자를 낸 두 나라의 전쟁은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 승자 없는 전쟁으로 종결되었다.

이란과 이라크는 19888월 휴전협정을 맺어 포성을 멈추었고, 1990년 샤트알아랍 수로의 중앙선을 경계로 하는 알제협정을 재확인하고 국교를 회복했다.

20033월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쟁 이후 샤트알아랍 수로는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미국과 영국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영국 해군이 샤트알아랍 수로와 페르시아만 어귀의 연안 경비를 담당했다. 2004년과 2007년에 이란 혁명수비대가 수로를 순찰하던 영국 해군을 체포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