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휴대용 시계 있었다…앙부일구 축소형
조선시대에 휴대용 시계 있었다…앙부일구 축소형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5.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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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cm 크기 휴대용 해시계로 서울의 위도 표준, 제작자·제작연대 표기

 

조선시대에 휴대용 시계가 있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 제852호 휴대용 앙부일구(仰釜日晷)가 그것이다.

휴대용 해시계는 휴대용은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그 중심에 침을 세우게 되어 있는 간략한 것과 자석을 붙여 남북을 정확하게 맞춰 시각을 측정하게 만든 정밀한 것의 2종류가 있다.

세로 5.6, 가로 3.3, 두께 1.6의 돌로 만들었으며, 서울의 위도를 표준으로 했다. 반구형 해시계 면의 직경은 2.8이고, 나침반의 직경 1.9로 주위에 24방향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낮 시간과 시각선이 새겨져 있고 24절기와 절기선들도 새겨져 있다.

휴대용 해시계는 만든 솜씨가 뛰어나며, 조선시대 과학기기 제작기술의 정밀함과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다.

휴대용 앙부일구에는 제작자의 이름과 제작 연대가 새겨져 있다. 조선 후기에는 강윤(姜潤, 1830~1898)과 동생 강건(姜湕, 1843~1909)이 해시계 제작 가문으로 유명했다. 강건의 두 아들인 강익수(姜益秀, 1871~1908)와 강문수(姜文秀, 1878~1931)도 가문의 시계 제작 전통을 이어 나갔다. 조선시대 시계제작은 주로 중인 신분이 했는데, 강씨 집안은 고위층 양반 가문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보물 862호 휴대용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문화재청
보물 862호 휴대용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문화재청

 

휴대용 해시계에 앞서 만들어진 해시계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 845호 앙부일구(仰釜日晷)였다. 큰 것은 시계의 지름이 35.2, 높이가 14이고, 작은 것은 시계의 지름이 24.3이다.

하지만 국립고궁박물관의 해시계는 들고 다니기에 크고 무겁다. 이것은 대궐에 두었고, 종로 혜정교(惠政橋, 종로1)와 종묘 앞에도 설치했다. 임금 뿐 아니라 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볼수 있다록 한 공동의 시계였다. 특히 세종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정용 앙부일구는 세종 16(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솥을 뒤지븐 둥군 모양은 지구를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냈다. 청동으로 몸통을 만들고 검을 칠을 해서 글자와 선을 새겼다.

세종 때 만들어진 앙부일구는 전해지지 않으며,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고정용 해시계의 단점을 보안해 고안한 것이 휴대용 해시계, 즉 휴대용 앙부일구다.

 

보물 845호 앙부일구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보물 845호 앙부일구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6일부터 628일까지 경기도 여주시 소재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조선시대 해시계와 앙부일구전시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1부 평면 해시계의 역사, 2부 앙부일구의 역사와 구조, 3부 조선후기 휴대용 앙부일구의 제작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번 전시는 당초 428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개최를 변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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