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갈라진 유럽의 한 마을 속 두 나라
코로나로 갈라진 유럽의 한 마을 속 두 나라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5.11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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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와 벨기에 영토 공존하는 바를러 마을, 다른 방역 대책에 혼선

 

한 마을에 두 나라의 영토가 공존하는 곳이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 근처의 바를러(Baarle)라는 마을이다. 네덜란드 영토내에 있는 이 마을에는 벨기에 영토가 22곳이 있고, 벨기에 영토 내에 네덜란드 영토 8곳이 있다. 네덜란드 영토의 마을 이름은 바를러 나사우(Baarle-Nassau)이고, 벨기에 마을은 바를러 헤르토흐(Baarle-Hertog). 두 나라의 영토를 합쳐 바를러 나사우 헤르토흐(Baarle-Nassau-Hertog)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어느 곳이 어느 나라 땅인지 구별하기 위해 지도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N1, N2'로 표시된 곳은 네덜란드 땅이고, 'H1, H2'로 표시된 곳은 벨기에 땅이다. 지상에서는 영토를 구별하기 위해 땅위에 십자(+)를 표시하거나 집 앞에 국기를 내걸기도 한다. 국경은 건물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식당 내에도 한쪽은 네덜란드령이고 다른 쪽은 벨기에령이다.

 

바를러 마을의 한 카페를 가로지르는 국경선. 오른쪽이 벨기에령, 왼쪽이 네덜란드령이다. /위키피디아
바를러 마을의 한 카페를 가로지르는 국경선. 오른쪽이 벨기에령, 왼쪽이 네덜란드령이다. /위키피디아

 

네덜란드쪽 인구 6,600, 벨기에쪽 인구 2,600명인 이 마을이 코로나19 전염병으로 갈라졌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코로나 방역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이번 코로나 돌림병에 큰 타격을 입었다. 방역규정도 까다롭다. 벨기에는 지난 3월 이후 모든 상점을 폐쇄하고 국민들에게 자택 격리를 명령했다. 특별한 이유없이 집에서 나오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의 방역규정은 비교적 느슨하다. 상점의 영업을 허용하고 외출도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마스크 착용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현지 르포기사에 따르면, 이 마을의 벨기에령 가게는 문을 닫고 바로 옆의 네덜란드 가게는 문을 열었다. 두 나라 경계를 오가는 버스는 네덜란드령에서 마스크를 벗고, 벨기에령에서는 마스크를 쓴다고 한다.

 

이 마을은 EU 통합 이전에는 네덜란드 길더와 벨기에 프랑을 공동으로 사용하다가 EU 통합과 함께 유로 단일 통화로 통일했다. 국경은 나눠져 있고, 국적이 다르지만 주민들은 한 마을처럼 살았다. 셍겐 조약이 발표되기 이전에도 이 마을에선 국경이란 개념이 없이 지내왔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된 이후 마을은 국경과 국적으로 갈라졌다. 문을 연 상점과 문을 닫은 상점으로 소속 국가가 구별되었다. 가족들도 사는 곳의 국적에 따라 격리되었다.

 

바를러 마을의 복잡한 영토 /위키피디아
바를러 마을의 복잡한 영토 /위키피디아

 

이 마을이 갈라진 것은 역사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중세 유럽시대에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였다. 네덜란드는 합스부르크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벌였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현재 벨기에 지역은 합스부르크 영토로 남아 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네덜란드에 합병되었다. 그후 벨기에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네덜란드와 독립전쟁을 펼쳐 1843년 마스트리히트 조역에 의해 독립했다.

이때 바를러 마을에는 헤르토흐(Hertog)라는 귀족 가문이 12세기에 합스부르크로가에게서 받은 영지가 산재해 있었는데, 그 영지가 벨기에로 귀속되었다.

이 마을에는 우체국, 경찰서, 은행, 학교도 국가별로 하나씩 있다. 마을 대표도 각기 한명씩 있다.

봉건시대의 유산으로 갈라지게 된 마을은 유럽 통합과 함께 하나의 마을이 되었지만 코로나가 마을이 분리된 것이다. 관광안내소는 통합운영되고 있지만, 코로나로 한쪽은 폐쇄되고, 반쪽만 운영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코로나 사태가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하고 부분적으로 각종 시설을 개방하는 추세에 있다. 벨기에령 상점도 곧 열리게 된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이 마을의 두 나라는 다시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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