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이용] 동아건설 준공 리비아 대수로공사
[물의 이용] 동아건설 준공 리비아 대수로공사
  • 아틀라스
  • 승인 2019.04.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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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대수층에 나일강 200년 유수량 저장…사막국가에 그린혁명

 

1953년 리비아 영토에서 석유를 탐사하다가 내륙의 사하라 사막의 지하 깊은 곳에 1만년 이전부터 축적된 대량의 지하수가 잠자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지하수의 양은 나일강이 200년 동안 흘려 보내는 유수량과 맞먹는 35조톤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무아마르 알카다피(Muammar al-Qadhafi) 대령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아랍통합과 녹색혁명을 기치를 내걸었다. 그는 1980년대초에 이 어마어마한 지하수를 퍼 올려 해안도시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식수와 공업용수로 쓰고, 농경 지대에 관개 공사를 펼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발표했다. 곧이어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수로 사업부(GMRA, Great Man-Made River Project Authority)를 조직하고, 특별법을 만들었다. 카다피는 이 계획이야말로 세계의 8번째 불가사의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공사는 4단계로 진행되었다. 쿠프라(Kufra) 근처의 키레나이카 내륙부로부터 지하수를 퍼 올려 벵가지 및 키레나이카 해안부에 공급하고, 2기는 페잔(Fezzan)의 세바 근처로부터 물을 퍼 올려 트리폴리타니아 해안부 및 트리폴리에 공급하며, 3기는 이집트 국경 가까이의 내륙부로부터 투브루크 인근으로 급수하고, 4기는 가다메스 근처로부터 튀니지 국경 지방으로 급수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수로의 총연장은 4,000km에 달하며, 깊이 500m, 1,300개 이상의 우물로부터 하루에 700의 담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수로가 통과하는 거의 전역이 사막 지대이기 때문에, 직경 4m, 길이 7.5m, 무게는 1개당 75톤의 거대한 압력파이프(PCCP: Prestressed Concrete Cylinder Pipe)관을 지하에 매설해 해안 지역까지 송수한다. 총공사비는 250억 달러 정도로 예정되었다.

 

이 공사는 우리나라 동아건설이 수주해서 공사를 맡았다. 1993년에는 벵가지에 송수를 개시했고, 1996년에는 트리폴리에 물을 공급했다.

동아건설은 39억 달러에 1단계 공사를 수주해서 동남부 지역 1,874km의 수로를 19841월 착공해 19918월 통수식을 거행함으로써 완공했다. 리비아 서남부 내륙 지방 사리르(Sarir) 취수장에서 지중해 연안 서트까지 955km, 타저보 취수장에서 벵가지까지 955km의 송수관 라인을 각각 연결하는 1단계 공사에 연인원 1,100만 명과 550만 대의 건설 중장비가 동원됐다.

당시 카다피는 민심을 얻기 위해 반대 세력이 많은 벵가지 지역에 최우선으로 물을 끌어들였다. 1990년에 착공한 2단계(서부 지역) 공사는 자발하소나 취수장에서 트리폴리까지의 1,730km 송수관 라인을 연결하는 공사도 동아건설이 맡아 19968월 통수식을 거행했다.

1~2단계 공사비만 102억 달러에 이르렀다. 3, 4단계 공사도 동아건설이 수주할 것이 유력했으나 2003년 회사가 쓰러지면서 1~2단계 때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했던 대한통운이 동아건설을 인수, 현재에는 대한통운의 자회사인 ANC3, 4단계 공사를 수주했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리비아 대수로를 통해 지상으로 공급되는 지하수는 오래전부터 축적된 물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의 지하수량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지하수 개발이 오히려 리비아 남부에 있는 오아시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거액의 공사비를 들였지만, 지하수가 고갈되면 대수로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수도 있다. 향후 50년동안 당초 계획한 수량이 공급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50년 이후의 지하수량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어쨌든 지금으로선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수로 공사로 일컬어진다. 리비아로서도 대토목공사이지만, 이 공사를 담당한 동아건설도 인류역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동아건설이 대수로 공사를 따내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공사는 카다피 국가수반이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하는, 사막을 녹지로 만들기 위한 녹색혁명이었다. 사하라 사막에 매장된 풍부한 지하수를 파이프로 연결해 지중해 연안까지 끌어내는 엄청난 대역사였다.

카다피 정부는 2단계 공사를 국제경쟁 입찰에 붙였다. 동아건설은 이미 198311월에 21개국 72개 업체를 제치고 1단계 공사를 따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1단계 공사를 따냈다고, 2단계 공사를 그저 주는 것은 아니었다. 발주처의 입장에서는 새로 경쟁을 붙여 가격을 떨어뜨리려 했고, 1단계에서 떨어진 해외업체나 신규업체들이 이 큰 공사를 그냥 둘 리 없었다. 동아건설 경영진과 현장의 협상실무자들에겐 지루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 수주전은 1985625일 대수로공사 관리청(GMRA)이 세계 굴지의 건설업체들에게 사전자격심사(PQ) 초청장을 발송하면서 시작됐다. 초청된 한국업체로는 동아건설과 대우·현대·대림·삼성·한양·삼환·한진등 8개사였다. 외국사까지 합쳐 21개국 72개 업체가 참여했다.

이 중 사전심사를 거쳐 최종 입찰에 참가하게 된 업체는 한국의 동아·대우·현대를 비롯해 프랑스·인도·영국 각 1개업체, 프랑스와 소련의 컨소시엄 1개등 5개국 7개업체로 압축됐다.

당초 19864월로 잡혀 있던 입찰이 몇 차례 연기된 끝에 198746일에야 마침내 본격 입찰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발주처와 입찰 참여 희망업체 사이에 오가는 협의가 2년여 지루하게 진행됐다.

 

마지막까지 남은 업체는 프랑스의 듀메즈사와 인도의 컨티넨탈사였다. 프랑스는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고립돼 있는 리비아의 국제정치적 입지를 바꾸도록 외교활동을 벌이는데 앞장서겠다며 국가 차원의 로비를 벌였다. 인도의 컨티넨탈사는 마지막 제시가격이 동아보다는 몇억 달러나 낮았다. 인도의 값싼 노동력을 등에 업은 덤핑 가격이었다. 둘 중에 끝까지 경쟁상대가 됐던 업체는 컨티넨탈사였다.

19897월초 최원석 회장은 런던에 가 있었다.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수주 마지막 협상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인도의 컨티넨탈사는 27억 달러를 제시했고, 동아건설이 제시간 가격은 36억 달러였다. 1단계 공사를 맡고 있던 동아건설은 파이프 생산공장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의 공장에서 2단계 공사에 들어가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인도 회사는 새로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가격을 제시했다.

파이프 생산공장을 하나 건설하는데 최소한 5억 달러가 드는데, 컨티넨탈사가 동아건설보다 싼값을 제시했으니, 국제입찰에서 경쟁이 될리 만무했다. 인도로 낙찰될 것은 기정사실처럼 됐다. 심지어 컨티넨탈사는 거기서 더 깎을 수 있다고 나왔다.

인도가 그렇게 덤핑공세를 해오자, 리비아측이 오히려 당황해서 입찰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입찰 중단이 선언된 후 인도 정부가 앞장 서서 로비를 했다. 부총리와 장관, 그리고 각료급 인사 4명등 모두 6명이 리비아를 방문해 인도엔 핵기술도 있다며 미끼를 던졌다. 당시 리비아는 198812월 이른바 팬암항공기 폭파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한 제재를 받고 있었고, 카다피는 핵기술 개발에 손을 대려 했다. 인도가 이를 감지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리바아측은 동아건설에 어떻게 하겠는가. 최종 가격을 제시하라고 입찰가를 낮출 것을 요구했다.

서울 본사에 있던 최원석 회장과 리비아 현장의 최재영 본부장 사이에 매일 암호 전화가 오갔다. 그러나 최 회장은 대답을 최대한 연기하라고 할 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7월말이 되자 리비아측은 다시 가격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통보했다.

동아로선 달리 도리가 없었다. 공사수주를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결정적인 반전의 기회는 8월초 아즈다비아에서 있는 1차 공사 예비통수식이었다. 리비아혁명 20주년을 맞아 정식 통수식을 앞두고 그동안 묻은 관을 통해 진짜 물이 나오는가 시험가동을 하는 행사였다.

 

리비아 대수로공사 통수식/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공사 통수식/동아건설

 

당시 정황을 최 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사막 한가운데 지표면 저 아래서 나온 샘물이 장장 400km, 높이 10m, 저수량 400만톤의 아즈다비아 저수조에서 콸콸 쏟아지니까 그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리비아인들은 물 없는 사막에서 물이 곳 신이었습니다. 리비아의 부족장과 정부 지도자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올리며 세리카 동가를 외쳤다고 합니다.” (‘세리카는 리바아 말로 회사라는 뜻이고 동아건설의 영자표기안 ‘Dongah’를 리비아 사람들은 동가라고 읽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동아건설 직원은 대수로공사 관리청의 수석위원인 시알라라는 사람으로부터 동아가 최고다. 인도는 물론이고, 다른 회사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 직원이 상급자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고, 최 회장이 그 소식을 보고받은 것이다.

서울 시각 87일 새벽 3, 현지시각 86일 밤 8. 최 회장은 그 소식을 듣고 협상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협상팀에게 암호로 최종가격을 내려줬다. 87일부터 협상은 재개됐다.

협상을 재개한지 1주일 후인 815일 리비아측은 갑자기 “8746일 실시한 대수로 2차공사 국제입찰을 무효로 한다며 입찰 중단을 선언했다. 동아측은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사실상 동아건설에 2단계 공사가 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공개경쟁 입찰에서 수의계약 입찰로 전환된 것이고, 동아에 공사를 준다는 뜻이었다.

1989831,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의 역사적인 가조인을 체결했다.

공사규모가 무려 531,000만 달러로, 당시로선 인류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였다. 이 큰 토목공사가 한국의 건설업체에 낙찰된 것이었다.

199024일 동아건설은 뱅가지의 망구시 장관실에서 2단계 공사에 관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곧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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