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기적②…켈트의 호랑이, 질주하다
아일랜드의 기적②…켈트의 호랑이, 질주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5.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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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정부의 개혁·개방 조치에 미국 유수 기업들 대규모 투자

 

아일랜드 공화국의 GDP 성장률은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 7.8~11.5%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고, 이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4.4~6.5%를 이뤄 냈다. 유럽 어느 나라도 이 시기에 아일랜드보다 높은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다. 아일랜드는 2000년대에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1990년에서 2000년까지 아일랜드가 보여준 경이적인 성장을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이라 부른다. 1960~1990년 사이에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일컬어 네 마리의 호랑이’(Four Asian Tigers)라 부른 것을 빗대어 투자회사 모건스탠리의 케빈 가디너(Kevin Gardiner)란 애널리스트가 붙인 이름이다.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1987년 이후 아일랜드 정부가 취한 정부 구조개혁, 세금감면조치, 노사정의 사회연대협약이 1980년대말부터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 결실로 이끌었다. 기업은 법인세가 낮은 곳에 회사를 두려 한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법인세가 20%를 넘었는데, 아일랜드에선 외국기업에 대해 초기에 법인세를 면제해주었다. 고용직원에 대해 훈련보조금을 정부에서 100% 지급하고 빌딩을 5~10년동안 무료로 사용하도록 했다.

아일랜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기업 진출을 금지시켰다. 폐쇄적이었던 이 나라가 1987년에 문호를 파격적으로 열었다. 노사정 협의체에서 노사분규를 자제하도록 약속했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에겐 아일랜드기 기회의 땅이 되었다.

 

아일랜드의 가장 큰 강점은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300년간 영국 통치의 유산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약이 되었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미국 굴지의 IT기업들이 유럽 본사를 두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브뤼셀에 본사를 두는 것보다 영어가 되는 아일랜드가 다국적 기업에겐 유리하다.

 

아일랜드에 투자한 기업은 대부분 미국 기업이다. 1990년대에 미국은 10년 장기호황을 구가했고, 인터넷 등 IT 산업이 신흥 산업으로 각광을 받으며 번창했다. 미국의 IT 기업들이 유럽진출 교두보로 삼은 곳이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 50대 기업의 다수가 미국 기업이고, 영국회사는 1곳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인텔, 델 컴퓨터, 오러클, 애플, 페이팔, IBM, 페이스북, 트위커, 이베이, 어도비 등이 아일랜드에 법인을 차려 톱 기업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톱10 IT 기업중 9곳이 아일랜드에 유럽본부를 두었고, 화이자, 노바티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세계 톱10 제약회사 대부분이 아일랜드를 선택했다.

미국 시간대로 저녁 퇴근 후에 아일랜드에선 아침이 열린다. 미국 본사에서 하던 업무를 퇴근 무렵에 아일랜드 지사에 맡겼다가 아침에 출근하면 잘 정리된 자료가 들어온다. 하드웨어 업종보다 소프트웨어 업종에서 미국과 아일랜드의 분업이 유리하다.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아일랜드는 1973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EU는 가난한 회원국에 구조조정 기금을 주는데, 아일랜드는 당시만 해도 회원국 중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들어갔기 때문에 170억 유로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아일랜드는 이 자금의 35%를 교육에 투자했다. 이 자금을 지원받은 나라들의 대부분이 25% 정도만 교육에 투자했던 것에 비해 높은 비율을 교육에 쏟아 부었다. 젊은 인재들에게 IT 교육을 시켰다. 이 인재들은 후에 미국 IT기업들이 진출했을 때 고용인력이 되었다.

 

노조의 변신도 외국기업 유치에 한몫을 했다. 1970~1980년대에 아일랜드는 노조공화국이나 다름 없었다. 금융회사, 철도, 항만, 교원노조 모두가 투쟁으로 일관했고, 어떤 해엔 파업건수가 200여건에 달했다. 공장이 돌아가는 날보다 파업으로 쉬는 날이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노조가 1987년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이 해에 아일랜드는 국가채무가 GDP120%에 달해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노조는 이후 사회연대협약(Social Partnership Agreement)에 동참해 노사정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로 손을 잡았다. 노사정 위원회는 임금인상률을 3년간 2.5%대로 묶고 법인세 감면을 대폭 확대하는 국가재건 프로그램에 동의했다. 노사분규도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990년대에 세계화의 붐을 타고 미국 기업들이 대규모로 아일랜드로 찾아왔다. 소프트웨어, 반도체, 컴퓨터, 제약, 의학, 생명공학 등 분야에서 1,500개 이상의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본부를 두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적극적인 외자유치 전략을 선택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1949년에 설립해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해 있던 산업개발청(IDA: Industrial Development Authority)에 해외자본유치에 나서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IDA는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원스톱 지원서비스를 실시했다. 투지신고에서 공장 부지 선정, 자금조달, 외국인 자녀의 학교문제 등을 한번에 해결해준다.

외국인 기업들은 아일랜드 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일랜드에 유럽본사 또는 지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이 수출의 66%를 차지한다. 2018년 기준으로 아일랜드의 법인세 중 80%가 외국 기업에서 나왔고, 국내 고용의 25%를 외국인 기업이 담당했다. 덕분에 1980년에 20%를 웃돌던 실업률이 4%대로 떨어졌다.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아일랜드가 경제기적을 이루는데 빼놓을수 없는 것이 영국과의 화해다. 독립 초기엔 식민모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미수복지역인 북아일랜드의 반환에 총력을 기울였다.

1971130일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은 아일랜드 정부와 영국 사이를 냉랭하게 했다. 19798월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촌인 마운트배튼(Louis Mountbatten) 경이 아일랜드의 휴양지에서 아일랜드공화군(IRA)에 의해 피살되었다.

테러가 자행되는 곳에는 기업들이 투자를 하려 하지 않는다.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오랜 반목을 치유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공동의 노력을 했다. 1980년부터 아일랜드 정부는 영국과 물밑 대화를 시작해 198511월 앵글로-아이리시 협정(Anglo-Irish Agreement)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협정에 의해 아일랜드 공화국은 북아일랜드 행정에 목소리를 낼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북아일랜드 IRA가 테러를 한 뒤에 남아일랜드로 도피하는 것도 막기로 했다.

결정적인 화해는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 대통령의 화해 노력에서 나왔다. 로빈슨은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카톨릭이 금지하는 낙태를 허용하고 이혼을 합법했다.

그는 분쟁지역인 북아일랜드를 네 차례나 방문해 강경파 신페인당 지도자들을 만났고, 엘리자베스 여왕과도 만났다. 그런 노력 덕분에 아일랜드는 1998410일 영국과 벨파스트 협정(Belfast Agreement)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조치로 아일랜드공화국과 북아일랜드는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이게 되었다.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자료=Center of American Experiment

 

아일랜드의 경제 기적 배경에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동족 후손들의 지지도 컸다. 아일랜드 민족은 아일랜드 공화국(남아일랜드)4백만명, 영국령 북아일랜드에 180만명으로 아일랜드 섬에만 580만명이 산다. 하지만 전세계에 퍼져 있는 후손들을 합치면 5천만~8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가장 많은 아이리시 후손들이 사는 나라가 미국으로, 4천만명 쯤 된다. 19세기 대기근 때 이민간 후손들이다. 캐나다에도 450, 호주 700, 뉴질랜드 60, 아르헨티나 50만의 후손들이 산다.

특히 미국에서 성공한 아이리시들이 많다. 근면하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22명이 아이리시다.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 후손이다. 미국 정계, 재계, 예술계, 과학계에 진출한 아이리시들은 모국 아일랜드의 개혁과 개방을 적극 지지했다.

 

아일랜드 경제 기적을 상징하는 더블린시 오코넬가의 첨탑 /위키피디아
아일랜드 경제 기적을 상징하는 더블린시 오코넬가의 첨탑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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