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기적③…붐-버스트, 국가파산 위기
아일랜드의 기적③…붐-버스트, 국가파산 위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5.29 14: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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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타이거의 죽음…외자로 번영한 국가의 불행, 거품 경제의 한계

 

1990~2007년까지 아일랜드 공화국은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켈트 타이거는 1991~2001년 사이에 연평균 7%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해외의 자금이 쏟아졌다. 1990~2000년 사이에 1인당 GNP58% 상승해 아일랜드인은 유럽에서도 가장 잘 사는 국민이 되었다. 독일 은행들은 아일랜드에 믿고 돈을 빌려 주었다. 무려 2,083억 달러의 뭉칫돈이 독일은행에서 아일랜드로 흘러들어갔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하면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한다. 아일랜드의 고도성장은 주택 붐을 일으켰다.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지어지고 집값이 폭등했다.

21세기의 도래는 아일렌드 주택시장에게 큰 희망이었다 20005월에서 20015월까지 1년 사이에 집값이 17%나 폭등했다. 이 무렵 IMF는 아일랜드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를 우려했다. 시장은 그런 경고도 무시했다. 2000~2006년 사이에 주택가격은 두배로 뛰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났다. 2000년부터 연간 75천 가구의 집이 신축되었다. 집권여당인 피어나 포일당은 주택 건설에 세제혜택을 부여했고, 은행들은 주택 첫구매자에게 자금의 100%를 저리로 대출해 준다는 광고를 냈다.

언론들도 부동산 붐을 부추겼다. 전국적인 매체들은 부동산 기사를 쏟아냈고, 부동산 광고로 수익을 챙겼다. 신문들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을 소개하고, 어느 논객은 거품 붕괴 직전인 2007년에도 국민들에게 지금이 집을 살 때라고 강조했다.

IMFOECD가 주기적으로 아일랜드의 거품을 경고하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거품을 우려했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신들을 질시하는 보고서요 보도라면서 흘려 들었다.

건설업도 흥청거렸다. 연간 신축 주택의 규모는 인구가 15배나 많은 영국의 절반에 맞먹었다. 건설업이 GDP에서 20%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고, 건설업의 고용인력이 전체고용의 15%를 차지했다.

 

2000~2010년 아일랜드의 부동산 가격 추이 /위키피디아
2000~2010년 아일랜드의 부동산 가격 추이 /위키피디아

 

하지만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오르던 집값도 2007년 들어 꺾이기 시작했다. 20073월 주택 수요가 0.6% 하락한데 이어 다음달에도 0.8% 내려갔다. 20072분기에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기록하고 건설업 고용인력도 미세하게 줄어들었다. 신규주택의 공실률이 고개를 들었다. 주택시장의 거품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아일랜드 정부는 주택시장의 연착륙을 시도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이듬해인 2008년 미국의 대형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아일랜드를 덥쳐 왔다. 아일랜드에 투자한 회사의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었다. 미국발 불황의 타격은 아일랜드엔 치명적이었다. 가뜩이나 부풀어 오른 부동산 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2007년 아일랜드 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광고 /위키피디아
2007년 아일랜드 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광고 /위키피디아

 

자산시장의 붕괴는 주식시장부터 무너뜨렸다. 20072월 한때 1만 포인트를 돌파했던 아이리시증권거래소(ISEQ)의 일반 지수는 20092월에 1,987 포인트까지 폭삭 주저앉았다. 20084분기에 아일랜드는 유로존 국가 가운데 최초로 불황에 진입했다. 2009132만명이 실업급여를 받겠다고 신청했고, 실업률이 20066.5%에서 201214.8%로 치솟았다. 10만명의 실업자들이 더블린 시내에서 데모를 했지만, 국가는 파산하고 실업자를 구제할 돈이 없었다.

 

주택 시장 붕괴는 무제한 집담보 대출을 해주던 은행들에게 직격탄을 던졌다. 3개월짜리 단기외채에 의존하던 은행들이 도산의 위기에 빠졌다. 리먼브러더스 사건이 터지자 브라이언 코웬(Brian Cowen) 총리는 은행장들을 불러 은행 부채를 국가가 전액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대략 500억 유로쯤 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은행부채의 절반은 아이리시 뱅크(Anglo Irish Bank)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부동산 대출이 점점 부실화되면서 은행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동산 가격은 정점대비 40%나 빠졌고, 주택담보대출 신청수도 73%나 감소했다. 대표적인 상업은행인 앵글로 아이리시 뱅크(Anglo Irish Bank)는 부동산담보대출에서 발생한 손실을 감당할수 없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후 국영화되었다. 정부는 무제한 채권을 발행해 6개 은행에 신규자금을 투입했다. 이 구제금융은 4,400억 유로나 되었다.

부동산 거품붕괴가 은행 부실로 이어졌고, 결국은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2010년 아일랜드 정부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30%로 치솟았다. 아일랜드 정부는 마침내 IMF에 손을 내밀었다. 201011월 아일랜드는 IMF,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로부터 8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재정긴축을 통해 150억 유로를 갚는다는 조건이었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유령의 집이 되어버린 주택들 /위키피디아
부동산 거품 붕괴로 유령의 집이 되어버린 주택들 /위키피디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아일랜드의 낙하속도는 더 빨랐다. 20191분기 아일랜드이 GDP 성장률은 -8.5%, GNP 성장률은 -12%를 기록했다.

다시 이민자가 늘어났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에 아일랜드 인구의 3%15만명 이상이 살 곳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 특히 젊은 층들이 많이 나갔다. 19세기 대기근으로 1백만명 이상이 이민 떠났던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켈트의 타이거는 죽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유럽 언론은 물론 아일랜드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한때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던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켈트 타이거의 죽음’(Death of the Celtic Tiger)은 많은 교훈을 만들어 냈다.

그 첫 번째가 외자로 일어난 경제가 사상 누각이라는 사실이다. 아일랜드의 기적은 유럽 최저의 법인세(12.5%)의 이점으로 형성되었다. 주로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아일랜드로 몰려 들었고, 그 덕분에 고용이 창출되고 자본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해외자금 유입이 끊기면 아일랜드 경제는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미국이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미국기업들이 타격을 받았고, 아일랜드에 투자를 중지했다. 결국 아일랜드의 기적은 유럽에 진출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발판에서 형성되었고, 미국 기업의 자회사로 성장해온 것이다.

둘째는 부동산 거품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0년 이상 외국에서 자금이 유입되었고, 그 자금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집은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정부는 세제혜택을 주어가며 주택공급을 늘렸다. 부동산 거품이 지속될 것을 알면서도 포폴리스트적 정책을 중지하지 않았다.

 

2009년 더블린 시내의 노동자 시위 /위키피디아
2009년 더블린 시내의 노동자 시위 /위키피디아

 

경제 붕괴는 아일랜드가 자랑하던 사회연대계약을 무너뜨렸다.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뛰쳐 나갔다. 기업들은 부도 위기에 처하면서 수많은 일자리를 줄였다. 실업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은 왜 정부가 은행을 살리는데 세금을 투입하면서 복지혜택을 줄이며 긴축재정을 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런 틈을 뉴욕 월가의 저승사자 무디스는 20114월 뒤늦게 아일랜드 은행에 대해 정크 상태(junk status)라고 선언했다. 아일랜드 은행을 쓰레기로 몰아붙인 것이다.

 

정권도 교체되었다. 아일랜드 정부는 경제위기를 자초한 피어나 포일당을 불신하고 피네 게일당을 밀어주었다.

새로 집권한 게일당 출신의 총리 엔다 케니(Enda Kenny)는 긴축정책을 고수하고 경제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규제를 완화하고 복지혜택을 축소했으며, 공무원을 감축하고 임금과 연금을 삭감했다.

마침내 20131215일 엔다 케니 총리는 IMF 구제금융에서 졸업했다고 선언했다. 구제금융을 받은지 3년만이다. 아일랜드의 IMF 졸업은 비슷한 시기에 IMFEU의 구제금융을 받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보다 빨랐다.

 

2008~2009년 각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위키피디아
2008~2009년 각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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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2022-10-25 22:56:27
지금 시점의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사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