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기적④…불사조처럼 부활, 제2의 도약
아일랜드의 기적④…불사조처럼 부활, 제2의 도약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5.3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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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치가 무너지고 소비만능, 물신주의 풍조 만연…브렉시트 파고 넘어야

 

2009년부터 20013년까지의 경제 위기와 거품 붕괴는 켈트 호랑이를 초죽음 상태로 몰아 넣었다. 은행은 도산하고 합병되고 국영화되었다. 세금으로 은행 구조에 나서면서 나라가 파산위기에 빠졌고, 결국 IMF, EU, ECB 세 곳에서 8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IMF의 요구에 따라 실시한 긴축재정은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등록금을 올린다고 대학생들이 더블린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노조는 긴축재정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뼈를 깎는 개혁은 마침내 빛을 발휘했다. 20133월 아일랜드 정부는 국제시장에서 4.3%의 금리 조건에 10년 만기 국채 5억 유로를 발행하는데 성공하고, 그해 12월 구제금융 졸업을 선언했다.

2014년에는 4.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켈트 호랑이는 다시 꿈틀 거렸다. 한때 15% 가까이 치솟았던 실업률은 10%대로 떨어졌고, 2015년엔 8.8%로 내려갔다. 2015년에는 6.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켈트 호랑이는 완전하게 기력을 회복했다.

2016년에 아일랜드는 무려 26.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일랜드의 경제학자 폴 하워드(Paul Howard)켈트의 불사조’(Celtic Phoenix)라며 다시 일어난 아일랜드를 묘사했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폴 크루그먼 교수는 아일랜드 만화 주인공을 빗대 아일랜드의 부활을 러프러콘 경제’(leprechaun economics)라며 의미를 깎아 내렸다. 2016년의 경이적인 성장률은 미국 애플(Apple)사가 아일랜드에 있는 유럽본사의 회계를 재편하면서 생긴 착시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놀라운 것은 죽은줄 알았던 아일랜드 경제가 되살아났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에 몰렸던 아일랜드는 다시 유럽에서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달려 나갔고, 2의 도약을 이루고 있다. 거리는 다시 활기를 띠었고, 식당에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넘치고 백화점은 북적거렸다.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나갔던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더블린의 국제금융서비스 센터. 19세기 대기근 때 굶주린 아일랜드인들의 조각이 서 있다. /위키피디아
더블린의 국제금융서비스 센터. 19세기 대기근 때 굶주린 아일랜드인들의 조각이 서 있다. /위키피디아

 

아일랜드는 다시 지식경제 산업사회로 발돋움했다. 하이테크, 금융서비스, 생명공학 분야의 다국적 기업이 아일랜드를 찾았다.

아일랜드의 50대 기업 가운데 28곳은 외국기업이고, 이중 미국기업 25, 영국기업 3곳이며, 아일랜드 자국 기업은 22곳이다.

아일랜드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천국이다. 다국적 기업이 아일랜드 법인세의 80%를 차지하고 25%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소득세의 50% 외국 기업에서 나온다. 더블린의 애플 유럽본사가 아일랜드 GDP20% 이상을 차지한다.

이 작은 섬나라가 다국적 기업의 낙원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법인세다.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12.5%, OECD 평균 24.9%의 절반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헝가리(9%), 불가리아(10%)가 아일랜드보다 더 낮은 법인세를 제시하지만, 미국 기업들이 그곳으로 가려 하지 않는 것은 영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의 활동이 보장된다. 아일랜드는 경제자유도 측정에서 OECD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OECD 국가의 법인세 세율 비교 /위키피디아
OECD 국가의 법인세 세율 비교 /위키피디아

 

아일랜드는 미국 기업의 조세회피처(tax havens)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6년 제약회사 화아저와 엘러간은 세금 납부처를 아일랜드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금액은 1,600억 달러에 이르는데, 아일랜드의 GNI80%에 해당하는 규모다. 애플도 유럽내 매출을 모두 아일랜드로 돌려 세금을 내는 방법을 선택해 아일랜드의 GDP가 급팽창하는 통계적 오류를 빚기도 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이같은 조세회피에 미국과 EU가 조사에 들어갔다.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푀피 수법은 다양하다. 다국적기업은 아일랜드에법인을 통해 유럽에서 자금을 조달해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 회사는 아일랜드 법인이 되므로 세금은 아일랜드 세율이 적용된다.

 

더블린의 아일랜드 중앙은행 /위키피디아
더블린의 아일랜드 중앙은행 /위키피디아

 

아일랜드의 경제번영은 또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전통가치가 무너지고 도시화, 빈부격차 심화, 범죄율 증가, 이민자 문제 등의 사회 이슈가 부상하고 있다.

급격한 부의 증가는 엄격한 카톨릭 사회의 윤리를 무너뜨리고 소비만능, 물신주의 풍조를 확산시켰다. 유흥가에는 마약과 알콜 중독, 각종 범죄가 일어나고 10대들의 임신과 낙태가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동유럽과 아프리카인들이 일자리를 구해 몰려 오면서 몸을 파는 여자도 등장하고 게이바도 생겼다고 한다. 부자들 사이에는 최신형 외제차에 해외 휴가, 고급와인, 도박 등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또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면서 교통, 주택, 상하수도, 환경오염, 범죄등의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수도 더블린은 GDP40%를 창출하면서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아일랜드의 GDP 성장률 추이 /위키피디아
아일랜드의 GDP 성장률 추이 /위키피디아

 

또 아일랜드의 기적에 견제도 만만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내 법인세를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려 아일랜드의 경쟁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켰고, 게다가 해외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국가들도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떨어뜨리고 있다. 아울러 EU는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탈루 여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아일랜드의 저임금 매력이 상실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고도성장으로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 아일랜드에 비해 인건비가 10분의1 수준인 동유럽 국가들도 EU에 가입하면서 경쟁하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쓰리콤(3COM)R&D 공장만 아일랜드에 남기고 공장을 철수했고, 프랑스의 전자부품업체 슈나이더도 아일랜드 공장을 체코로 이전했다.

아일랜드의 또다른 문제는 자국 산업 없이 외국자본 유치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50대 기업 가운데 20여개의 토착 기업이 있는데, 이들 회사는 건설, 물류, 식품 등 내수분야이거나 외국기업의 지원업무가 주류다.

아일랜드는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학기술 분야에 연구비 지원을 늘리고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자생적인 기업이 육성되어야 외자 중심의 경제를 보완할수 있게 된다.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의 도로. 국경 표시가 없다. /위키피디아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의 도로. 국경 표시가 없다. /위키피디아

 

최근에 아일랜드의 문제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과도기를 거쳐 2021년부터 아일랜드와 관세체계가 바뀌게 된다.

아일랜드 섬은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나눠져 있고, 두 나라 사이에 육상 국경이 그어져 있다.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 접경지대는 500km에 달하고, 하루 평균 4만명가량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영토는 다르지만 아일랜드 섬 자체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있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에는 아무런 제한장치가 없었다. 그동안 영국과 아일랜드가 모두 EU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차량과 상품, 사람이 이 육상 국경을 자유롭게 오갔다. 그런데 브렉시트가 시행되면, EU에 가입해 있는 아일랜드와 탈퇴한 영국 사이에 관세와 경제제도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국경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영국이 EU 탈퇴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가운데 북아일랜드에서 신() IRA(New Irish Republican Army)가 준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IRA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 이후 해산한 IRA(아일랜드 공화군)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진짜 IRA’(Real IRA)라며 IRA 지도부가 무장해제를 한데 대해 불만을 품고 개별적으로 다시 조직에 나섰다. 이들은 20194월에 리라 맥키(Lyra McKee)라는 여기자를 사살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아일랜드 경제가 브렉시트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지가 관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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