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역사①…성 패트릭, 카톨릭 전파하다
아일랜드 역사①…성 패트릭, 카톨릭 전파하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6.01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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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종교 드루이드교 몰아내고 카톨릭화…아일랜드인의 상징적 인물

 

아일랜드 섬에 인류가 정착한 것은 고대유물에 방사선을 쪼여 측정한 결과 12,500년전이라고 한다. 그들은 다양한 거석과 고분 문화를 창조했다.

아일랜드에 켈트족(Celts)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BC 600년경으로 파악된다. 중부 유럽에서 출발한 켈트족은 프랑스 지역에서 갈리아(Galli), 그리스에서는 켈토이(Keltoi)라 불리던 종족으로 철기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3세기에 걸쳐 아일랜드로 이동하면서 우수한 무기로 토착부족을 누르고 지배종족으로 부상했다.

켈트족은 단일 왕국을 형성하지 못한 채 지역별로 할거하며 수많은 씨족사회를 건설했다. 고대 켈트 사회는 드루이드(Druid)라는 원시종교에 의해 운영되었다. 최고 상층부는 드루이드 사제가 위치하고, 전사, 지식인계급이 평민과 노예를 지배했다. 150개의 씨족 사회가 BC 300경에 5개 정도의 소왕국으로 통합되어 타라 언덕(Hill of Tara)에서 공동 종교의식을 지냈다.

고대 로마제국은 브리튼섬은 지배했지만 아일랜드섬은 지배하지 않았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아일랜드의 왕자가 브리튼섬으로 망명왔다가 귀국해서 권력을 장악했다고 짤막하게 서술했고, 로마인들이 아일랜드 섬에 접근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지배하지는 않았다. 일설에는 아일랜드 섬이 춥고 황량하고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로마가 영토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다. 어쨌든 덕분에 아일랜드는 켈트족의 고유문화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타라 언덕의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 /위키피디아
타라 언덕의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 /위키피디아

 

오늘날에도 서양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할로윈(Halloween) 행사는 켈트족의 추수감사절 행사에서 유래했다. 켈트족은 계절 별로 축제를 열었는데, 수확기에 삼하인(Samhain) 축제를 열었다. 켈트족의 달력에는 111일이 새해 첫날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고, 춥고 어두운 겨울이 다가오는 날이었다. 켈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속에서 1년동안 살다가 하늘로 날아가는데 이를 막기 위해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춥게 만들었다. 이 행사는 한해의 마지막날인 1031일에 열려 111일밤까지 진행되고, 오늘날에 할로윈 데이로 이어지고 있다.

 

켈트족의 분포 /위키피디아
켈트족의 분포 /위키피디아

 

이런 원시 켈트사회를 붕괴시킨 사람이 성 패트릭(St. Patrick) 주교다. 아일랜드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켈트족은 드루이드교의 사회였다.

로마의 교황청은 일찍부터 아일랜드에 카톨릭을 전파시키려 했다. 교황 첼레스티누스 1(Caelestinus I)431년에 팔라디우스(Palladius)를 아일랜드 주교로 임명해 아일랜드인들의 개종을 지시했다. 하지만 팔라디우스는 렌스터(Leinster)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다가 곧바로 현지 국왕에게 추방되어 스코틀랜드 지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에 교황은 432년에 다시 성 패트릭을 신임 아일랜드 주교로 임명해 아일랜드로 보냈다.

성 패트릭은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로마제국 속주인 브리타니아에서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할아버지는 기독교 사제였으며, 아버지도 사제를 보좌하는 부제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세 잎 클로버 /위키피디아
세 잎 클로버 /위키피디아

 

성 패트릭은 16세 때에 영국 서해안 지역을 침입한 아일랜드인들에게 붙잡혀 아일랜드로 끌려갔다. 그리고 노예가 되어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가축을 돌보았다. 그러나 금식 기도를 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아서 해안으로 도망쳐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탈출했다. 그 뒤 두 달 동안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다니다가, 레랑 제도(Îles de Lérins)의 수도원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꿈에서 아일랜드로 가서 선교를 계시를 받았다. 그는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프랑스 중북부의 오세르(Auxerre)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그곳의 주교인 게르마누스(Germanus)에게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아일랜드 주교로 임명되어 432년에 북아일랜드 다운주(Down) 주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는 아일랜드 각지를 다니며 열성적으로 포교를 해 그가 세운 교회가 365개에 이르며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람은 12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아일랜드에 지천에 깔린 세잎 클로바(shamrock)로 삼위일체론을 설명했다고 한다. 또 드루이드교 신앙의 상징인 뱀을 바다로 내 쫓았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445년에 북아일랜드의 아마(Armagh)에 교회를 세웠는데, 이 교회가 성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으로, 지금도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성패트릭은 461317일 영면했고, 아일랜드 다운(Down) 주에 있는 다운패티릭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신교도인 영국과 싸우는 오랜 과정에서 성 패트릭을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겼다. 성패트릭이 영면한 317일은 성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로 카톨릭의 중요한 기념일이며, 특히 전세계에 퍼져 있는 아이리시들에겐 민족적 축제일이다.

 

성 패트릭 /위키피디아
성 패트릭 /위키피디아

 

아일랜드의 카톨릭화는 본격적인 역사시대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일랜드의 기독교는 라틴어와 알파벳도 가져와 기독교를 보급시키는 한편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었다. 수도원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아일랜드의 구전문화와 고대 문학이 로마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소왕국 /위키피디아
아일랜드의 소왕국 /위키피디아

 

카톨릭화된 이후에도 아일랜드 섬에는 여러 소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759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바이킹족(Viking)들이 아일랜드를 기습했다. 그들은 좁고 긴 배를 타고 해안선을 타고 기습공격을 하고 강을 따라 내륙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이후 40년동안 바이킹족들은 아일랜드 해안에 요새를 만들고 수도원을 습격하고 귀중품을 약탈하고 민간인을 잡아갔다. 그들의 기습공격에 그치지 않고 정착을 시도했다. 841년에는 바이킹의 한 부족이 해안가에 더브린(Dubh Linn)이라는 왕국을 세웠는데, 그곳이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오늘날 더블린(Dublin)이 되었다.

10세기 이후 바이킹 족들은 해안에 코크(Cork), 워터퍼드(Waterford), 웩스퍼드(Wexford) 등의 주요 기지를 세웠는데, 이 곳들이 오늘날 아일랜드 공화국의 주요 도시가 되었다. 바이킹족들은 농업 경제에 의존하던 켈트족에게 도시 생활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선박을 건조하고 새로운 예술양식을 도입했으며, 교역을 위한 항구를 만들었다.

 

바이킹들의 거점 도시 /위키피디아
바이킹들의 거점 도시 /위키피디아

 

바이킹들의 침략시기는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들은 수시로 켈트족의 수도원을 습격해 복음서와 황금성배, 은촛대 등을 노략질했다. 그러나 켈트족은 숫적으로 많았지만 분열되어 있는데다 우월한 그들의 무기를 당하지 못했다. 일부 부족장은 바이킹과 손잡고 동족을 공격하기도 했다. 켈트족은 수도원에 높은 탑을 세워 망루로 활용하거나 적이 습격할 때 도망치기 일쑤였다.

 

바이킹의 출현은 켈트족을 단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켈트족에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났으니 브라이언 보루(Brian Boru). 그는 클레어(Clare) 주에 있는 댈 카이스(Dal Chais)라는 소왕국의 왕이었는데, 차츰 세력을 넓혀 1014년에 바이킹족과 동맹자인 랜스터(Leinster)의 왕을 클론타프 전투(Battle of Clontarf)에서 쳐부수었다. 브라이언 보루는 전투중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켈트족 연합군은 아일랜드 해변에서 바이킹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100년간 아일랜드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들은 왕중의 왕인 상급왕(High King)을 추대해 왕국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외국으로 눈을 돌려 스페인, 잉글랜드, 프랑스와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166년에는 영국을 지배한 바이킹의 일족인 노르만(Norman) 족이 아일랜드를 침공했다. 아일랜드가 영국과 얽힌 것은 이때부터다.

 

클론타프 전투 /위키피디아
클론타프 전투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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