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곽 원형이 잘 보존된 순천 낙안읍성
조선시대 성곽 원형이 잘 보존된 순천 낙안읍성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6.10 1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아 건물, 소담스러운 초가, 고즈넉한 돌담길…옛 추억을 되살리는 곳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조선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각 고을마다 읍성을 쌓았으나, 일제강점기, 해방후 개발연대에 거쳐 대부분의 읍성이 뜯겨 졌다. 하지만 낙안읍성만은 변화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다 뜯어낸 초가집이 이 곳엔 그대로 살아 있다. 빨래터도 그대로 재현돼 있다. 아낙네들이 흰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린다. 빤 옷가지를 빨래줄에 그대로 걸어 놓았다. 할아버지가 소를 이끌고 연자방아를 돌린다. 1970~80년대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고향의 정취에 흠뻑 젖게 된다.

낙안읍성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시 양동마을 등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전통적인 촌락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마을로 자부한다.

 

낙안읍성 전체 모습 /문화재청
낙안읍성 전체 모습 /문화재청

 

고려말 왜구가 순천 지역에 자주 침입하자 1397(태조 6)에 낙안 출신의 절제사 김빈길(金贇吉)이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에는 1424(세종 6) 9월부터 성벽을 돌로 고쳐 쌓으면서 원래의 규모보다 넓혔다는 기록이 있다.

석축으로 고쳐 쌓는 작업은 1450년경에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당시 성벽의 둘레는 2,865척이고, 높이는 평지에서 9.5척이지만, 높은 곳은 8.5척이었으며,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420개로 높이가 2.5척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읍성으로는 계획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면적은 223,108, 성내 135,597 , 성외 87,511이다.

낙안읍성 지원사업소에 따르면, 읍성에는 98세대 228명의 주민이 직접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건물은 300동이며 이중 본채 147, 부속채 161동이다. 국가문화재 사적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사각형으로, ··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조선 중기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젊은 시절에 낙안군수를 지냈다. 낙안군수 시절이던 1627년에 임경업은 정묘호란 소식을 들었다. 장군은 후금이 쳐들어오자 군대를 이끌고 서울에 진군해 강화도까지 갔지만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기에 싸우지도 못하고 낙안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마을에는 임경업 장군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그 비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자리집고 있다.

석성(石城)으로 성의 길이는 1.4km. 평지에 쌓은 성으로 일부 고갯길에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곳도 있다. 관청과 일부 양반가는 기와집이지만, 대부분 초가집 노란 지붕을 유지하고 있다.

문은 동, , 남 세곳으로 열려 있다. 돌담으로 가옥 사이에 경계를 짓고, 물레방아와 민속장터, 기념품, 각종 체험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관광지로 조성돼 인위적 냄새가 나는 게 흠이지만, 그런대로 현대화한 도시민으로선 옛 향취와 시골풍경을 느끼기에는 만족할만하다.

 

낙안읍성은 성곽의 원형이 잘 보존된데다 관아 건물과 소담스러운 초가, 고즈넉한 돌담길에 이르기까지 옛 추억을 되살린 점에서 관광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11년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그해 CNN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 2015년 한국 관광 100선 선정, 2019년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기도 했다.

낙안읍성은 또 소리의 고장이다. 동편제의 거장 국창 송만갑 선생과 가야금병창 중시조 오태석 명인의 생가가 있고 음력 정월 대보름민속한마당 큰잔치, 낙안민속문화축제, 전국가야금병창경연대회 등으로 이어져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장금, 광해, 허준, 토지, 해신, 불멸의 이순신, 감격시대, 왕의 얼굴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낙안읍성 이모저모 /박차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