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강 소유권을 두고 세네갈-모리타니 분쟁
세네갈 강 소유권을 두고 세네갈-모리타니 분쟁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6.13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9년 대규모 유혈사태 빚기도…사하라 남쪽의 오아시스 역할하는 강

 

서아프리카 세네갈 강(Senegal River)강은 세네갈과 모리타니의 국경선이며, 반건조지대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강은 고래로 흑인 부족들의 생활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북쪽 아랍계 무어족이 내려오면서 흑인 부족들을 공격하고 납치하고 노예를 삼았다. 제국주의 시절에 세네갈과 모리타니는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세네갈엔 흑인 부족들이 살고 있고, 모리타니는 아랍계 부족들의 나라였다. 두 나라는 모두 이슬람이 주류를 이루지만 인종족 차이점을 드러냈다.

1960년에 두나라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프랑스는 두 나라를 하나로 합쳐 독립시킬 것을 물어 보았는데 모리타니의 아랍계가 분리 독립을 주장해 갈라섰다.

 

세네갈 강 유역 /위키피디아
세네갈 강 유역 /위키피디아

 

1980년대에 장기간 대가뭄이 사하라 남쪽에 닥쳐왔다. 모리타니의 유목민들이 물을 찾아 세네갈 강가로 몰려 들었고, 그들을 따라 아랍 무역상들이 함께 왔다. 모리타니 유목민들은 세네갈의 농민들과 교역을 했다. 흑인 농민들은 농산물을 팔았고, 모리타니 유목민들은 유제품을 교환했다.

하지만 모리타니 유목민들이 점차로 세네갈 지역으로 들어와 목축을 하고 상인들도 세네갈 지역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강의 이용권을 두고 세네갈 농민들과 모리타니 유목민들 사이에 마찰이 잦아졌다.

그러던 중 198949일 세네갈 동부 디아와라(Diawara,)에서 두 나라 사람들끼리 목축권을 놓고 충돌이 빚어지면서 두 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리타니 군대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선을 넘어 세네갈 영토 일부를 점령했고, 세네갈인들을 체포하고 폭행했다.

이에 세네갈인들은 모라티나인들의 상가를 불태우며 보복 행동을 했다. 그러자 모리타니인들도 자국내에 들어와 있는 세네갈인들에 대해 무차별 린치를 가했다. 상호간에 죽은 사람만 수십명에 이른다.

 

두 나라의 외교관계는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서로 대사를 추방하고, 상대방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 때 세네갈에 들어와 있던 모리타니인 17만명이 본국으로 돌아갔고, 모리타니에 있던 세네갈인 8만명이 돌아왔다.

 

분쟁의 원인은 세네갈 강의 소유권이었다. 세네갈은 1933년 프랑스 지배 시절에 식민 당국이 규정한 조항을 근거로 세네갈 강이 자국령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기 때 최고 수위를 경계로 세네갈 강의 북쪽 또는 동쪽 강안이 세네갈 영토라고 내세웠다.

이에 대해 모리타니측은 세네갈 강은 4개국이 공유하는 국제하천이므로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세네갈 강은 총연장 1,086km로 세네갈, 모리타나, 말리, 기니의 4개국을 거친다. 강의 상류는 기니이고, 중류는 말리, 하류에서 세네갈과 모리타니의 국경을 통과해 대서양으로 빠져 나간다. 이 강은 사하라 사막의 끝부분에 위치해 사막 민족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두 나라 분쟁이 격화되면서 모리타니는 아랍 국가들의 지지를 호소했고, 세네갈은 아프리카 기구에 지지를 요청했다. 결국 두 나라는 외무장관 회담을 통헤 통해 1991년 외교 관계를 재개하고 국경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렇다고 두 나라 관계가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세네갈은 강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세네갈은 면적이 196이고 인구는 1,670만명이다. 모리타니는 면적이 103로 세네갈보다 5배로 넓지만 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해 건조지역이 넓어 전체 인구는 세네갈의 4분의 1400만명에 불과하다. 두 나라는 모두 이슬람 국가이며 수니파가 주류를 이룬다.

 

세네갈 강변. /위키피디아
세네갈 강변. /위키피디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