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초자오선과 적도가 만나는 곳, 널 아일랜드
본초자오선과 적도가 만나는 곳, 널 아일랜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6.14 15: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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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 기준으로 놓고 영국과 프랑스 대결에서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로 결정

 

본초자오선인 경도 와 적도를 표기하는 위도 가 겹치는 곳은 어디일까. 아무것도 없는 섬, 널 아일랜드(Null Island).

1957년 커널 블리프(Colonel Bleep)라는 만화에서 이 섬을 제로제로섬(Zero Zero Island)이라 호칭하기도 했다. 위도-경도 모두 인 섬이란 뜻이다.

하지만 널 아일랜드는 서아프리카 기니만(Gulf of Guinea) 대서양상에 있는 공해 상의 한 지점이다. (null)아무 것도 없다’, ‘제로’(zero)라는 뜻으로, 널 아일랜드는 섬은커녕 바다 위의 어느 지점일 뿐이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북쪽으로 570km 올라가면 나타나는 가나 해안이다.

널 아일랜드에는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이 설치한 부표(buoy)가 떠 있다. 이 부표의 번호는 13010이며, 명칭은 소울(,Soul), 즉 영혼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이 부표에는 피라타(PIRATA: Prediction and Research Moored Array in the Atlantic), 즉 기상관측과 연구용 센서가 붙어 있다. 프랑스, 브라질이 미국의 연구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널 아일랜드의 부표 /위키피디아
널 아일랜드의 부표 /위키피디아

 

널 아일랜드는 인위적으로 탄생한 지점이다. 적도는 지구 자전 궤도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애당초부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위도 설정에 대해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달랐다. 지구가 돌고 있기 때문에 자오선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 Prime meridian)에 대한 인식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부터 있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BC 276~194)가 자오선을 제기했고, 프톨레미우스(Ptolemaeus)가 전설적인 대서양 상의 행운의 섬’(Fortunate Isles)을 자오선으로 삼자고 했다. 그 섬은 현재 북아프리카 대서양상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로 추측된다. 하지만 항해술과 지리학이 발달되지 못한 시절이어서 그의 주장은 뒷받침되지 못했다.

 

널 아일랜드의 위치 /위키피디아
널 아일랜드의 위치 /위키피디아

 

15세기말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지리학과 항해술이 발전하고 자오선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다.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을 체결할 때 기준선을 북대서양 카보베르데(Cape Verde) 섬을 기준으로 삼아 세계를 갈랐다.

1541년 지리학자 메르카토르(Mercator)는 카나리아 제도의 특정 지점을 자오선으로 삼아 지도를 그렸다.

 

그러다가 1714년 영국에서 천측(天測)을 통해 배의 위치를 산출하는 크로노미터(chronometer)가 개발되면서 지도가 필요 없게 되었다. 이후 제국주의 시대가 되면서 유럽 각국은 자국 수도에 자오선이 지나가도록 지도를 그렸다. 프랑스는 파리 자오선, 독일은 베를린 자오선, 덴마크는 코펜하겐 자오선을 그렸고, 영국은 그리니치 자오선을 채택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위키피디아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위키피디아

 

각국이 저마다 다른 자오선을 그으면서 지도의 통일이 필요해 졌다. 1875년 국제지리학회는 프랑스가 주장한 파리 자오선을 기준으로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영국은 파리 지리학회의 결정을 무산시키고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 자오선을 가르키는 빛 /위키피디아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 자오선을 가르키는 빛 /위키피디아

 

두 나라의 팽팽한 대립은 1884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자오선 회의에서 절정에 달했다. 25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영국이 제출한 그리니치 본초자오선 결의안이 찬성 22, 반대 1, 기권 2의 압도적 표결로 통과되었다. 반대한 나라는 프랑스령이었던 산 도밍고(현재 도미니카 공화국)였고, 프랑스와 브라질은 기권했다.

프랑스는 불복했다. 이후 프랑스는 자국 시간대와 항해, 지도에 파리 자오선을 썼다. 하지만 1914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프랑스는 파리 자오선을 고집할수 없게 되었다. 영국군과 미군이 프랑스 진입하면서 교신과 좌표 측정에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는 울며겨자먹기로 그리니치 자오선을 인정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푸른자오선 행사 표지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푸른자오선 행사 표지 /위키피디아

 

파리 자오선에 대한 프랑스의 애착은 남다르다. 자오선이 파리를 지난다는 것은 프랑스가 세계의 중심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 프랑스는 파리 자오선이 지나는 직선 상에 1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 푸른 자오선’(Green Meridian) 행사를 가졌으며, 20007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푸른 자오선에 심은 나무 그늘에서 즐기는 600km의 피크닉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파리 자오선이 지나는 표시 /위키피디아
프랑스의 파리 자오선이 지나는 표시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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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2 2020-09-29 13:21:32
sja skdakswjrdls rhtdlsp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