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⑧…한자동맹, 발트-북해 무역 장악
신성로마제국⑧…한자동맹, 발트-북해 무역 장악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6.21 15: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뤼베크 중심으로 함부르크, 브레멘 등 백여개 도시 참여…자치권 확보

 

신성로마제국은 봉건제도를 토대로 농촌경제 시스템이었다. 황제도 대영주였고, 지역마다 영주들이 할거하며 더 많은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영토전쟁을 벌였다. 영주들은 토지를 농민에게 나눠 주어 소작료를 받아 거대한 부를 형성했다.

하지만 13세기에 접어들어 상업이 발달하면서 봉건질서에 변화가 생겼다. 상인들은 토지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형성했고, 도시들은 봉건영주들로부터 독립해 황제 직할령으로 전환해 상대적으로 자치권을 누렸다. 독일 북부의 상인들은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발트해와 북해를 누비며 교약활동을 하며 이윤을 불려 나갔다.

 

1641년 뤼베크 /위키피디아
1641년 뤼베크 /위키피디아

 

독일인들이 해상무역에 나서기 앞서 발트해에선 스칸디나비아의 비이킹족들이 약탈무역을 시작했다. 약탈 무역은 점차 상거래로 전환되었고, 해안지대에 무역거점들이 형성되었다.

게르만족이 발트해 무역을 장악한 것은 작센과 바이에른에 영지를 갖고 있는 하인리히 공작이 1159년 홀스타인(덴마크)의 아돌프 2세에게서 뤼베크(Lübeck)를 빼앗아 도시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3세기에 독일 북부의 도시들이 발트해 무역에 나섰고, 뤼베크는 거점 도시가 되었다.

뤼베크는 점차 성장해 작센과 베스트팔렌지역의 무역 중심지가 되었고, 1226년에는 작센으로부터 독립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면허장을 얻어 자유도시가 되었다. 그에 앞서 함부르크가 1189년에 자유도시가 되었다. 자유도시는 영주에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영주의 간섭을 받지 않고 무역거래를 할수 있었다.

독일 북부의 도시들은 스칸디나비아 무역상과 경쟁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했는데, 이를 한자 동맹(Hanz League)이라고 한다. 한자동맹이 언제 결성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문서상으로는 1267년에 처음 등장하고, 역사학자들의 견해로는 1100년대말에 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자동맹의 범위 /위키피디아
한자동맹의 범위 /위키피디아

 

한자동맹의 중심은 뤼베크이고, 함브르크, 브레멘, 쾰른 등 독일 도시와 단치히(폴란드 그다니스크), 라트비아의 리가, 에스토니아 등 100여개 도시를 포함했다. 동맹 소속 무역상들은 상인길드를 조직해 발트해와 북해를 누비면서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플랜더스, 영국에 가서 상품을 거래했다. 주요 거래품목은 모피 벌꿀 생선 곡물 타르 목재 호박(琥珀) 모직물 양모 등이었고, 밀과 귀리 등 곡물도 사고 팔았다.

 

독일 무역상들은 처음에는 발트해에서 스칸디나비아 상인들이 견제를 받았다. 키에프 루스(러시아)의 거점도시 노브고르드에선 스칸디나비아 무역상들이 상거래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독일 무역상들이 진출해 콘토르(Kontor)라는 상관(商館)을 설치하고 발을 들여다 놓았다. 동맹은 이어 브뤼헤(Bruges, 벨기에), 런던, 베르겐(노르웨이)에도 콘도르를 설치했다. 콘도르는 일종의 조차지 개념이다. 현지 국왕으로부터 특허장을 받아 주재원을 파견하고 그곳에서 상품을 거래하고 결제했다. 런던에 설치된 콘도르는 런던브리지 근처에 있었는데, 울타리를 쳐 경계를 표시하고 일종의 치외법권을 형성했다. 콘도르에는 뤼베크의 법이 적용되었다.

거래품목이 늘어나면서 한자 무역상들은 철과 구리제품도 거래했다. 독일산 철제갑옷은 다른 어떤 제품보다 강해 중세기사들이 애용했다. 염장어류, 목가공품, 비단 등도 거래되었다. 한자 상인들은 영국에서 모직물을 수입해 완성품으로 가공했고 그 결과로 독일 북부 지역에 수공업이 발전했다.

12~13세기에 한자 무역상들은 발트해 연안에 수십개의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폴란드의 엘블룸크과 토룬,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타르투, 라트비아의 리가 등은 한자 무역상들이 건설한 도시다. 이들 도시에는 아직도 한자동맹 시대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한자동맹 시대의 건물들. 에스토니아 탈린(위 왼쪽), 폴란드 포메라니아(위 오른쪽), 독일 단치히(아래 왼쪽), 노르웨이 베르겐(아래 오른쪽) /위키피디아
한자동맹 시대의 건물들. 에스토니아 탈린(위 왼쪽), 폴란드 포메라니아(위 오른쪽), 독일 단치히(아래 왼쪽), 노르웨이 베르겐(아래 오른쪽) /위키피디아

 

한자동맹이 전성기를 구가한 14세기 후반에는 군대도 확보했다. 상인들은 이 군대를 통해 그들의 무역 독점에 대항하는 왕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고 해적들을 소탕했다.

1368년에 한자동맹 소속 도시들은 연합 해군을 조직해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헬싱보리를 공격해 덴마크와 노르웨이 왕에게서 발트해 무역의 독점적 지위와 무역거래에서 얻은 이익 15%를 세금으로 내는 조건을 얻어냈다.

1428년에는 동맹 소속 군대가 260척의 선박과 12천명의 용병을 이끌고 두차례나 코펜하겐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영국 왕실에서 덴마크 왕실로 시집간 필리파 왕비(Queen Philippa)의 전설적 투쟁의 스토리가 전해진다. 한자동맹군이 코펜하겐을 쳐들어 갔을 때 덴마크의 에릭 국왕은 피난을 갔는데 왕비가 남아 끝까지 투쟁해 한자동맹 해군을 무찔렀다고 한다. 필리파 왕비는 덴마크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국에서 장미전쟁(14551487)이 벌어졌을 때 한자동맹은 요크가문에게 자금 지원을 하며 편을 들기도 했다.

 

한자동맹의 교역루트 /위키피디아
한자동맹의 교역루트 /위키피디아

 

하지만 한자 동맹은 구체적인 정치조직으로 확대하거나 연방체를 형성하지 못했다. 도시들이 자유롭게 가입하고 탈퇴하는 연맹체에 불과했다. 도시들이 신성로마제국에 충성을 했지만, 도시간 연합은 약했다. 이런 느슨한 조직이 동맹을 약화시켰다.

15세기 들어 유럽 곳곳에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면서 한자동맹은 현지 상권의 도전을 받게 된다. 러시아의 이반 대제는 노브고로드 콘토르의 영업에 제한을 가하다가 1496년에 문을 닫게 했다. 이탈리아에서 복식부기가 사용되면서 한자동맹의 회계는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은()이 화폐로 통용되면서 동맹의 어음 거래가 빛을 잃었다.

독일 북부 프로이센이 튜턴기사단의 영지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무역거점이 독립성이 약화되고, 폴란드의 영토 확장도 동맹의 주요도시인 단치히를 위협했다. 또 브뤼헤, 앤트워프 등의 도시가 부르고뉴 공작의 소유가 되면서 동맹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영업에 나섰고 네덜란드 상인들은 한자동맹의 독점체제를 피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직교역을 추진했다.

 

한자동맹의 마지막 전함 아들러호. /위키피디아
한자동맹의 마지막 전함 아들러호. /위키피디아

 

16세기엔 한자동맹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스웨덴 왕국이 발트해를 장악한후 신성로마제국 내에 영지를 확보하고 덴마크 상인들도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면서 한자동맹의 발트해 독점권은 사실상 무너졌다. 브뤼헤의 콘도르는 불능의 상태로 빠졌고 동맹 소속 도시들이 각자 이기주의에 빠져 들었다.

1556년 동맹 도시들은 행정체계를 정비해 쾰른 출신의 하인리히 수더만(Heinrich Sudermann)을 종신총독으로 선임했다. 하인리히는 회원 도시를 위해 외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각 도시에 의무를 부과하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쇠퇴하는 동맹의 기력을 회복시키는데 실패했다. 브뤼헤 콘도르는 안트워프로 이전했지만 결국 1593년에 문을 닫았고, 런던 콘도르도 1598년 폐쇄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 콘도르만 남아 활동했지만 1754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1563~70년에 덴마크-노르웨이 왕국과 스웨덴 왕국이 7년전쟁을 벌일 때 한자동맹은 당대 최대인 2~3천 톤급의 대형 전함 아들러호(Adler von Lübeck)을 건조해 덴마크를 지원했지만 한번도 써보지 못하고 전쟁은 끝나고 말았다.

 

17세기 들어 한자동맹은 내부 싸움으로 연맹체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독일이 종교전쟁에 휘말리고, 오스만 투르크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도시 동맹은 사실상 멈춰 버렸다. 1669년 한자동맹은 그때까지 남아 있는 9개 도시로 마지막 회의를 열었다. 뤼베크, 함부르크, 브레멘은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고 1862년 빌헬름 2세에 의해 독일 제2제국이 탄생할 때까지도 동맹을 이어갔다.

 

한자동맹의 건물인 독일 슈트랄준트의 세인트 니콜리아 교회 /위키피디아
한자동맹의 건물인 독일 슈트랄준트의 세인트 니콜리아 교회 /위키피디아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