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국가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John R. Bolton)의 저서가 한국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서 2년전 싱가포르 미북 정상화담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비화가 공개되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내 언론들의 미국 특파원들은 볼턴의 출판물을 입수해 경쟁적으로 주요 내용을 보도했다.
볼턴의 회고록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사람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2018년 미북 싱가포르 회담의 내막을 소개했다.
국내 언론이 전하는 회고록 요약에 따르면 2018년 3월 정의용 실장이 평양을 다녀온 직후 미국에 와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고, 트럼프가 충동적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해 6월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그런데 볼턴이 4월 12일에 정의용 실장을 다시 만났을 때 정 실장이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를 초대하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시안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볼턴은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fandango, 스페인의 열광적인 춤)는 한국의 창조물이며, 김 위원장이나 우리 쪽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와 더 관련이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볼턴은 “내가 볼 때 기본적인 미국의 국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북미 정상회담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닌 위험한 연출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볼턴의 회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의용 실장이 김정은에게 트럼프와의 회동을 제의했고, 김정은이 동의하자 미국에 건너가 김정은의 말을 전해 트럼프가 수락해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춤판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볼턴은 한국전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나는 처음에는 종전선언이 북한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이것이 자신의 통일 어젠다를 뒷받침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볼턴은 또 "북한은 종전선언을 문 대통령이 바라는 것으로 보면서 자신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추진해야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배경 때문에 한반도 종전선언도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도 했다.
볼턴은 21일 밤 abc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의 미북 정상회담은 전략적 실수였다”면서 “대선 이후 까지 미국은 북한과 어떤 합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턴의 회고록에 언급된 청와대 정의용 실장은 발끈했다.
정 실장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을 통해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한국과 미국,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면서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고,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또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의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이러한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한편 윤도한 수석은 볼턴 회고록에 대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 간의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한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며 별도의 청와대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