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주총과 경영 판단 존중한 수사심의위 결정
삼성 주총과 경영 판단 존중한 수사심의위 결정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6.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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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삼성물산 주총의 합법성 인정한 조치…검찰 고민 깊어질듯

 

26일 저녁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는 의견을 의결한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수사심의위는 기업의 최종 의결기관인 주주총회 결정을 존중하고, 경영자의 경영판단이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골자는 5년전인 2015년에 있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재용 부회장의 기업승계를 위한 것이 아니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의혹에 이 부회장이 간여한 것이 아니냐는 것으로 요약된다.

두 번째 혐의는 이재용 부회장이 어디까지 알고 있고 지시했느냐의 여부가 관건인데 이 부회장측은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검찰은 이 부회장을 두차례나 소환 조사하고 관련 삼성 기업들을 수차례 압수수색을 했다. 이 의혹은 이재용 측과 검찰 측이 법정에서 다퉈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첫 번째 혐의, 즉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지나치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의 미래가치나 합병의 당위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번 대검 수사심의위가 이런 지적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KBS 캡쳐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KBS 캡쳐

 

시계를 돌려 5년전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경영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식 7.12%((1,1125,927)를 장내에서 매집하고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했을뿐 아니라 합병 조건도 공정치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나온 64일 삼성물산 주가는 10.3% 폭등하고 하루 사이에 엘리엇은 7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주총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고 외국인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득표운동에 나섰다. 미국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 등이 엘리엇을 지지하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엘리엇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삼성측과 ISS 등 외국계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다. 당시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식합병 비율을 10.35로 보았고, ISS10.95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ISS 등은 삼성물산의 자산가치가 높은데, 삼성측이 인위적으로 낮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외국계의 주장은 삼성가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경영권 장악을 위한 것이란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시각이 후에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 크게 엇갈렸다. ISS는 삼성물산의 현재 가치를 중시했고, 삼성측은 미래 가치에 비중을 두었다.

딩시 삼성물산은 성장 한계를 드러내는 기업이었다. 삼성물산의 주력인 건설부문은 성장의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평가였고, 또다른 사업인 상사 부문은 개발 연대의 산물이다. 이에 비해 제일모직의 바이오부문은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부문이었다. 삼성은 바이오사업의 미래가치를 75,000억원으로 보았고, ISS15,000억원으로 내려 잡았다. 삼성이 바이오 부문의 미래가치를 밝게 내다본 반면에 ISS는 불투명한 전망을 깎아내리고 현재의 가치를 비중 있게 보았던 게 차이다.

이런 가치 평가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일반적 평가와는 완전히 다르다. 엘리엣과 ISS 등은 월스트리트에서 진행되는 것과 다른 잣대를 한국에 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20138월 미국의 양대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 개인에게 넘어갔고, 앞서 2009년 인터넷 미디어회사 허핑턴포스트가 아메리카온라인(AOL)에 매각됐다. 두 회사의 매각가격은 얼마나 될까. 136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워싱턴포스트의 매각가격은 25,000만 달러, 창업한지 4년째인 허핑턴포스트는 31,500만 달러였다. 갓 태어난 뉴미디어가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올드 미디어에 비해 26%나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잘 나갈 때 기자 수가 600명에 이르고,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하야케 한 권위있는 신문은 아리아나 허핑턴이라는 여성 기업인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만든 신생 매체보다 헐값에 팔려나간 것이다.

이런 가격의 차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는 전국적인 배달망과 인쇄시설, 건물등 자산가치가 충분한 회사였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의 미래가치는 허핑턴포스트에 크게 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매각 당시에 7년째 적자를 기록했고, 독자수는 해마다 떨어져 40만부대로 급감했다.

 

마찬가지로 제일모직 바이오 부문의 미래가치는 삼성물산의 미래가치보다 훨씬 높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 삼성측 논리였다. 이에 비해 미국계 헤지펀드와 의결권자문회사들은 한국에서 이상한 논리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가처분소송 기각으로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717일에 열렸다. 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이 양사 합병을 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에 11.21%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후에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지지하는 결정을 내린 과정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고 이사장이 법적 조치를 받게 된다. 당시 국민연금만 지지했을까. 국민연금 이외에도 사학연금(0.36%), 신영자산운용(0.11%), 하나UBS(0.02%), 한국투신운용(2.85%), 트러스트자산운용(0.36%), 브레인자산운용(0.23%)도 합병을 지지해 국내기관투자자들이 몰아준 표가 22.6%였다.

삼성그룹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13.92%였고, 대주주 우호지분인 KCC5.96%였다. 이 표를 다 합쳐도 42.12%였다.

합병은 특별의결안건이었으므로 참석자의 3분의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당시 주총 참석률은 전체 주식의 83.57%로 그 어느때보다 소액주주의 참석율이 높았다. 소액주주가 어디를 지지하느냐가 합병 찬성비율 3분의2를 얻는데 절대적 관건이었다. 이날 삼성물산 주총에서 결정적으로 캐스팅보트를 던진 주주는 개미군단이라 불리는 소액주주였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소액주주은 이날 주총에서 합병 찬성에 17%를 보태주었고, 합병안을 3분의2에서 2.87%P 넘어선 69.53%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엘리엇이 상정한 현물배당안(2호안)과 중간배당안(3호안)45.93%45.82%의 찬성률을 각각 얻었는데, 이는 합변 반대 25.82%보다 높은 것이었다. 소액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되는 안건에는 엘리엇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소액주주의 주류는 한국 국적자였다. 한국 소액주주들이 합병찬성에 지지를 한 것은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당하는 것보다는 창업 3대째인 이재용 부회장을 지지하는 게 낫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삼성물산 주주총회 이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국수주의에 빠져 글로벌 스탠다드를 무시했다고 빈정거렸다. 외국 언론들은 해설기사를 통해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들이 애국주의에 물들었고, 정실주의(cronyism)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삼성이 외국인 투자자를 배제하고 한국인 주주만 원한다고 선언하든지, 비상장회사로 가든지 하라고도 했다.

 

5년전 주총 결과가 2020년 대검 수사심의위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 같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대검 심의위의 한 위원은 위원회 쟁점에 대해 "법에 저촉되느냐, 안 되느냐가 이날 쟁점의 90%였고, 그 외의 문제는 부수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위원은 법적인 것보다 삼성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검토됐나는 기자 질문에 그런 부분도 고려됐다. 주가 조작 의혹이나, 국민경제, 경제민주화 등등 모든 걸 놓고 고려와 고민과 번뇌를 했다고 말했다.

 

대검 수사심의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초대검찰총장이던 문무일 총장이 2018년 도입한 제도다.

위원회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수사 계속 여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적법성 등을 심의한다.

언론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날 출석 위원 14명 중 위원장 직무대행을 제외한 13명이 비밀투표를 했고, 103으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낸 위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만 있고 구속력은 없다. 따라서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해야 한다.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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