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 해체③…나폴레옹의 요구로 소멸
신성로마제국 해체③…나폴레옹의 요구로 소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6.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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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회전에서 패한후 프란츠 2세 퇴위…844년만에 제국 해체

 

1789년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그 후폭풍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혁명에 의해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쫓겨 났다. 앙투아네트는 독일어 이름이 마리아 안토니아 조세파 조하나(Maria Antonia Josepha Johanna), 합스부르크 가문의 프란츠 1세 황제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막내딸이었다.

앙투아네트의 오빠인 황제 레오폴트 2세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프랑스 국왕의 왕권복고를 위해 선전포고를 했고, 프랑스 혁명정부도 선전포고를 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이 프랑스 국경을 넘으며 승기를 잡았으나, 국민군으로 편성된 프랑스군에 패주했다.

1792년 프랑스 공화정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신성로마제국 내 제후국들을 위협했다. 그해 합스부르크-로렌가의 프란츠 2(Franz II, 재위 1792~1806)가 신성로마제국 제위에 올라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했다. 하지만 제후국들이 따라주지 않았다. 제국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허울만 남았고, 제후국들이 사실상 독립한 상태였다. 프로이센은 폴란드로 영토를 확장하는데 주력하며 프랑스와의 전쟁을 피하려 했다.

이때 배신자가 나타났다. 1796년 뷔르템베르그(Württemberg)와 바덴(Baden)의 제후가 프랑스에 손을 내밀어 사실상 항복했다. 프란츠 2세는 분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1799년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제1통령이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프란츠 2세는 선제후를 다시 배분하며 프랑스와의 한판 대결을 준비했다.

 

1804년 나폴레옹 황제대관식 /위키피디아
1804년 나폴레옹 황제대관식 /위키피디아

 

1804518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스스로 제위에 올라 황제라고 칭했다. 일찍이 프랑스 왕정에는 없었던 일이다. 프랑수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입후보해 카를 5세와 경쟁하고, 태양왕 루이 14세가 황제를 넘본 일은 있지만 독일 제후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나폴레옹은 전임 국왕과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선제후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에 의해 옹립되는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교황이 머리에 황제의 관을 씌우는 행사도 필요 없이 헌법에 의한 입헌군주로서의 근대적 개념의 황제가 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신성로마제국의 전신인 프랑크왕국의 카를(프랑스어로 샤를마뉴) 대제를 모방했다. 1천년 전인 서기 800년 카를 대제는 프랑크왕국의 영토를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넓히고 교황 레오 3세에게서 고대 서로마제국을 계승한 황제의 관을 부여받았다. 나폴레옹은 카를 대제, 나아가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려 했다. 나폴레옹은 고대 로마황제의 의관을 갖추고 칼도 제작했다.

이에 프란츠 2세는 황제가 엄연히 있는데 유럽에 또다른 황제가 나온 것에 분노했다. 그는 두 개의 황제 타이틀을 쓰기로 했다. 1804811일 프란츠 2세는 자신의 오스트리아 대공의 지위를 황제로 올려 오스트리아의 초대 황제가 되어 프란츠 1세라 칭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황제가 된 것이다.

 

이제 유럽에 세명의 황제가 나타났다. 또 한명의 황제는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Aleksandr I)였다. 러시아에선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한 후 모스크바의 이반 대공이 동로마제국의 황제를 이어받았다. 동로마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자신의 조카 소피아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황제라 부를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어 차르(Tsar)와 독일어 카이저(Kaiser)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서 파생된 말이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 대회전 /위키피디아
1805년 아우스터리츠 대회전 /위키피디아

 

이제 세 명의 황제는 결투를 벌여야 할 차례가 왔다. 그 전투는 보헤미아(체코) 동남부 아우스터리츠(Austerlitz)에서 1805122일에 벌어졌다. 오스트리아 황제와 러시아 황제가 한편이 되어 프랑스 황제와 붙은 아우스터리트 전투(Battle of Austerlitz)는 세 명의 황제가 싸운 전투라 해서 삼제회전(三帝會戰帝, Battle of the Three Emperors)라고도 한다.

전투는 하루만에 나폴레옹의 압승으로 끝낫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는 아우스터리츠 부근에서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와 합류, 8만 명이 넘는 연합군을 조직하여 7만 명의 나폴레옹군과 대치했다. 나폴레옹군은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포병이 맹활약하면서 연합군의 중앙을 돌파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2만명의 전사자를 낸 러시아는 폴란드로 물러나고, 프란츠 2세는 협약을 맺고 휴전했다.

 

이 전투로 프랑스는 라인강 서쪽 땅의 영토를 확고히 했다. 1806712일 파리에서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등 신성로마제국 소속의 16개 제후국이 프랑스를 보호국으로 하는 라인동맹을 결성하고, 81일을 기해 제국을 탈퇴해 버렸다. 나폴레옹은 독일 남부에 프랑스군은 주둔시키고 여차하면 협약을 깨고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태세를 보였다. 라인동맹은 프랑스의 괴뢰국으로 러시아 침공 때 병력을 징발해 프랑스군에 합류시켰다.

 

라인동맹 /위키피디아
라인동맹 /위키피디아

 

프란츠 2세와 오스트리아의 귀족들은 허울만 남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직을 유지해야 할지를 논의했다. 대세는 신성로마 황제를 양위하자는 쪽으로 흘렀다. 마지막으로 프란츠 2세는 메테르니히(Metternich)를 파리로 보내 나폴레옹의 의중을 떠봤다. 나폴레옹은 810일까지 프란츠가 황제를 퇴위하고 제국을 해체하라고 최후통첩을 전했다. 그때까지 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를 하겠다고도 했다.

180686일 아침, 프란츠 2세는 귀족과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프란츠에겐 또하나의 황제 타이틀이 있었다. 이후 그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1세로 황제 지위를 유지했다.

 

프란츠 2가 퇴위하면서 962년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1(Otto I)가 제위에 오른후 844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신성 로마 제국은 공식으로 소멸했다. 이 소식을 듣고 독일의 괴테는 내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있으나마나 했던 제국이 해체된 것이란 의미였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명은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157년 프리드리히 1세가 신성제국(Holy Empire)이라는 국호를 사용했고, 1512년 쾰른에서 열린 의회는 제국의 공식 국명을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이라고 반포했다.

1254년부터 1273년까지 선제후들 사이에 패가 갈리면서 황제를 없는 대공위시대를 겪기도 했다. 그후 영주들의 투표에 의해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는데, 황제선출권을 갖는 선제후들이 특권을 갖게 되면서 제국의 분열은 심화되었다. 말기에 들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황제 자리를 독주했다.

서프랑크 왕국의 후신인 프랑스 왕국이 중앙집권적으로 발전한 것과 달리, 독일 지역의 신성로마제국은 수백 개의 왕국, 공국, 후국, 백국, 자유시 등의 영방국가들로 이루어진 분권화되었다. 황제의 권력은 제한적이었고, 여러 공작, 후작, 백작, 주교후, 시장들이 자신의 영토 안에서는 사실상의 독립적 지위를 누렸다. 볼테르는 말기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독일인들은 신성로마제국에 대단한 애착을 가졌다. 나폴레옹이 패망한후 1815년 독일 제후국들은 독일연방(Deutscher Bund)을 결성했다. 그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 군대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북독일연방을 결성하고, 1870년 프랑스를 공격해 이듬해 118일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의 성립을 선포한다.

독일인들은 신성로마제국을 제1제국, 프로이센 호엔쫄레른가에 의한 제국을 제2제국,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제3제국이라 일컫는다.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 /위키피디아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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