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위구르에서 귀화한 성씨들
중앙아시아 위구르에서 귀화한 성씨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7.07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덕수 장씨, 경주 설씨, 임천 이씨, 상곡 마씨…고려, 조선시대에 귀화

 

우리나라에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성씨가 있다. 덕수 장()씨와 경주 설(), 임천 이(), 상곡 마()씨다.

 

덕수 장씨의 시조는 장순룡(張舜龍)으로,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 제국공주의 시종으로 고려에 들어와 귀화했다. 제국공주(齊國公主)는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로, 고려 충렬왕과 결혼했는데, 이는 몽골() 왕족과 고려 왕실과의 최초 혼인이었다.

장순룡은 필도치(必闍赤)라는 벼슬을 지낸 장백창(張伯昌)의 아들이다. <덕수장씨족보><고려사>에 의하면 장순룡은 고려에 귀화해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져 황해도 개풍군 덕수리를 식읍으로 받아 후손들이 덕수(德水)를 관향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고려사> 열전 장순룡조에 그 기사가 나온다.

장순룡(張舜龍)은 원래 회회(回回) 사람으로, 초명은 삼가(三哥, 셍게)였다. 아버지 장경(張卿)은 원 세조(世祖)를 섬겨 필도적(必闍赤, 비칙치)이 되었다. 장순룡은 제국공주(齊國公主)의 겁령구(怯怜口, 케링구)로서 고려에 와서 낭장(郞將)에 임명된 후 여러 번 승진하여 장군(將軍)이 되었으며, 지금의 성명(姓名)으로 바꾸었다.”

위구르인이 원나라 조정에서 행정책임자로 일하다가 충렬왕비가 된 몽골의 제국공주의 시종무관으로 고려에 왔다. 장순룡은 고려에 와서 결혼하고 정착해 후손을 둔 것이다.

<고려사>에는 장순룡은 권력을 다투고, 경쟁적으로 사치스럽게 하였다. 저택을 지을 때 극도로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지어 기와와 조약돌로 바깥담을 쌓고 화초 무늬로 장식하니, 당시 사람들이 장씨네 집 담장[張家墻]’이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구르인으로 고려에서 상당한 세도를 누렸음을 알수 있다.

 

위구르인 /위키피디아
위구르인 /위키피디아

 

회회(回回)는 위구르(Uygur)족을 의미한다. 위구르는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와 중앙아시아에 있는 터키계 민족이다. <삼국사기>에 고구려와 접촉한 돌궐(突厥)이 그 원조다.

회홀(回纥, 回鶻)이라고 불렀으며, 이슬람을 종교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슬람을 회교로 부르는 것도 이 종족에서 유래한다. ()나라 시대엔 차가타이한국이 위구르족의 영역으로 보면 된다. 중국 신장지역의 주요 민족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이다.

 

경주 설()씨의 시조 설문질(偰文質), 임천 이씨 시조 이현(李玄)는 셀렝게 강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한자표기로는 설련하(偰輦河). 이 강은 몽골어로 셀렝게 강()이며, 몽골에서 러시아 영토인 바이칼호로 흘러가는 강이다.

경주 설씨는 발음이 같지만, 한자로 설()을 쓰는 또다른 성이 있다. 위구르 출신의 설씨는 세렝게 강의 한자 표기(偰輦河)의 첫 자()에서 유래를 찾는다고 한다.

위구르족 귀화성씨의 시조가 국내에 들어온 시가와 배경이 다르다.

임천 이씨의 시조 이현은 고려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와 공양왕대 명나라 남경을 다녀온 공으로 임천을 식읍으로 받았다.

경주 설씨의 시조 설손도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로 망명했으며, 공민왕이 태자때 원나라에 있을 때 구면이 있어 입국후 집을 하사하는등 후대했다고 한다.

 

셀렝게강 /위키피디아
셀렝게강 /위키피디아

 

상곡 마씨는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들어왔다. 상곡(上谷)은 중국 허베이(河北)성에 속한 지명이다. 시조는 회회(回回)왕국의 임금이었던 마립(麻立)이다. 1512년 회회왕국이 망하자 여섯 살이었던 태자 마록(麻祿)이 신하의 등에 업혀 안남국(安南國, 베트남)으로 망명해 안남국 왕의 사위가 되고 그 뒤 1522년 중국으로 들어가 벼슬을 했다.

한국의 마()씨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 마귀(麻貴) 장군의 후손이다. 마귀는 회회국왕 마립의 원손으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를 거느리고 조선에 들어왔다. 도원수 권율(權慄)과 합세해 울산 왜성 공격에 참여하는 등 도처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왜란이 끝나고 명나라로 돌아갔다.

마귀의 증손 마순상(麻舜裳)이 수군 관리로 산동성 등주의 군량을 배를 타고 순찰 감독하다가 1627(인조 5) 9월에 등주의 묘도(廟島)에서 풍랑을 만나 황해도 풍천에 이르렀는데 함께 탔던 29명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가 조선에 귀화해 상곡 마씨의 시조가 되었다.

 

1490년 위구르 칸국 /위키피디아
1490년 위구르 칸국 /위키피디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