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딸 앨리스의 천방지축 대한제국 방문기
루스벨트 딸 앨리스의 천방지축 대한제국 방문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7.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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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9월, 태프트 사절단과 동행…홍릉에서 코끼리 석상 올라타 물의

 

미국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Theodore Roosevelt, 재임 19019~19093)의 딸 앨리스(Alice Lee Roosevelt)19059월에 대한제국을 방문했다. 사절단장은 루즈벨트에 이어 미국 27대 대통령이 되는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전쟁부 장관이었다. 당시 전쟁부는 지금의 국방부다. 앨리스와 그의 남편이 될 니콜라스 롱워스(Nicholas Longworth) 하원의원 등 10여명이 사절단에 동참했다. 앨리스가 대한제국을 방문할 때 나이는 21살이었고, 그의 애인 롱워스는 14살 많은 35세로 전도가 양양한 젊은 정치인이었다.

 

앨리스 루스벨트 /위키피디아
앨리스 루스벨트 /위키피디아

 

당시 대한제국은 황제국을 칭했지만 주권은 일본에 휘둘리고 있었다. 앨리스가 조선에 도착한 것은 95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러일전쟁의 패전국 러시아와 승전국 일본 대표를 미국 동부 뉴햄프셔로 불러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을 체결한 직후였다. 이 조약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이 인정되었다.

고종황제는 포스머스 조약 체결로 조선이 일본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자, 의지할 곳은 미국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미 조선을 포기한 상태였는데, 국제정세에 어두운 고종은 그래도 미국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대통령의 딸이 온다 하니, 대한제국 황실은 그녀를 국빈대우를 했다. 황제국의 입장에서 미국 대통령의 딸은 공주나 다름없었다. ‘앨리스 공주 모시기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가족들. 뒤편 가운데 서 있는 이가 앨리스. /위키피디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가족들. 뒤편 가운데 서 있는 이가 앨리스. /위키피디아

 

919일 미국 군함 오하이오호를 타고 제물포항에 도착한 앨리스 일행은 경인선 황제전용 철도편으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엔 대한제국 관리와 황실 근위대, 군악대, 각국 공사들이 환영 나왔으며, 구경꾼들도 구름같이 몰렸다고 한다. 앨리스는 황실에서 준비한 가마를 타고 미국 공사관으로 이동했다. 서울의 가가호호에는 대한제국기와 미합중국기가 걸렸다고 한다.

다음날인 20일 앨리스는 덕수궁 중명전에서 고종황제를 알현하고 오찬에 참석했다. 이때 황실에서 앨리스 일행을 위해 준비한 오찬식단과 그들이 고종과 황태자(순종)에게서 받았던 사진들이 남아 있다. 고종은 미국을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유지시켜줄 구세주로 여기고 앨리스 일행을 극진히 환대했다.

21일에는 미국 공사가 주최하는 가든 파티가 열려 한국에 꺼주하는 미국인들이 앨리스와 일행을 만났다.

 

홍룽에서 코끼리 조각상에 올라타고 있는 앨리스 /코넬대 도서관
홍룽에서 코끼리 조각상에 올라타고 있는 앨리스 /코넬대 도서관

 

22일에는 앨리스가 고종황제와 점심을 하고 오후에는 명성황후(민비) 무덤이 있는 청량리 홍릉(洪陵)을 방문했다. 이때 외국인에 대한 황실 의전은 독일 출신 엠마 크뢰벨(Emma Kroebel)이 담당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홍릉에서 환영 리셉션을 하기로 했다. 아마 고종이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미국에 일깨워 주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때 앨리스가 홍릉에 있는 코끼리 상 위로 올라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가 유교국가에서 황실 무덤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앨리스는 자주색 승마복을 입고 채찍을 들고 위세당당하게 말을 타고 등장했다. 앨리스는 무덤 주변에 동물 석상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코끼리 석상에 관심을 갖더니 재빨리 말에서 내려 코끼리 석상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애인 롱워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 사진도 당시 미국 공사관 부영사였던 윌러드 디커맨 스트레이트(Willard Dickerman Straight)에 의해 남아 있다.

크뢰벨은 당시 일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우리 일행은 그녀의 그런 망나니 같은 짓에 경악했고,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신성한 곳에서 저지른 그같은 무례한 짓은 한국의 역사에서 찾아볼수 있는 일이었다.”

크뢰벨은 앨리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듯 했다고 기록했다. 그 순간에 음식이 나왔고, 앨리스와 공사관 직원들은 잡담을 나누며 삼페인을 마시고 즐겼다고 한다.

고종황제는 엘리스 일행에게 남한산성도 구경하게 했다. 청나라와 싸운 흔적을 보여주고, 대한제국이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앨리스의 대한제국 방문을 보도한 프랑스 르 프티 파리지엥지(1905년 10월 8일자)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앨리스의 대한제국 방문을 보도한 프랑스 르 프티 파리지엥지(1905년 10월 8일자)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당시 프랑스의 르 프티 파리지엥(Le Petit Parisien)1905108일자에서 앨리스의 대한제국 여행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썼다.

과연 어떤 여행자가 루스벨트양처럼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식사를 초대받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황제(고종)는 이같은 행동이 한국의 관습에 어긋남에도 루스벨트 의 알현을 허락하였고 그녀를 초대한 식사자리에는 황태자와 다른 왕자들, 대신 및 장군들도 함께 하였다. 루스벨트양은 평범한 여행과는 거리가 먼 경험을 완수하였다.”

 

황실 요리사 크뢰벨이 독일로 돌아간 후 1909년 대한제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해 내가 어떻게 조선 궁궐에 들어가게 되었는가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뉴욕타임스가 19091120일 자에서 롱워스 부인, 한국인을 놀라게 하다‘(Mrs. Longworth Amazed Koreans)라는 기사를 썼다. (앨리스는 귀국한 후 190512월 롱워스 하원의원과 약혼하고 이듬해 결혼했다.)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간 후 남편 롱워스는 기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며 변명했다.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 앞 가운데가 앨리스, 뒤 가운데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 앞 가운데가 앨리스, 뒤 가운데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앨리스의 외교적 무례는 미국에서 나중에 논란이 되었지만 당시 대한제국에서는 관대하게 넘어갔다. 당시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종은 당시 수행단 대표인 태프트가 일본과 밀약을 체결한 사실을 몰랐다.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은 1905년 워싱턴을 떠나 대륙횡단철도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미 해군 오하이오호를 타고 아시아로 출항했다. 순방단은 725일 일본에 도착했다가 730일 마닐라로 이동했으며, 이 때 고종이 순방단을 대한제국으로 초청했다.

루즈벨트의 전권대사 특명을 받은 태프트는 일본을 떠나기 전날인 729일 카쓰라 다로(桂太郎) 일본 총리와 만나 이른바 카쓰라-태프트 밀약약(The Katsura-Taft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 밀약에서 미일 양국은 조선을 일본이 지배하고, 필리핀은 미국이 지배한다는 나눠먹기에 합의했다. 이 밀약을 토대로 그해 95일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 밀약은 복잡한 국제관계 때문에 공개되지 않다가 1924년에 알려지게 되었고, 당시 고종황제나 앨리스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게 당연하다. 앨리스가 천방지축, 무례하게 날뛰어도 고종과 대신들이 아무런 말을 못했던 것은 당시 조선의 허약한 입장을 보여준다.

 

고종황제와 황태자(순종)이 앨리스에게 선물한 사진(좌측이 고종, 우측이 황태자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고종황제와 황태자(순종)이 앨리스에게 선물한 사진(좌측이 고종, 우측이 황태자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앨리스는 1934년 자서전 혼잡한 시간들’(Croweded Hours)을 출간하는데, 그 안에 대한제국 방문 내용을 기록했다. “한국은 원치 않았으나 속수무책으로 일본의 손아귀 아래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보였고 낙담한 것 같았다. 그들의 몸에서 힘이란 힘은 모두 빠져 나간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서 일본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상인으로 보이는 일본 사람들이 있었고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앨리스는 고종황제에 대해서도 썼다. “황제와 곧이어 마지막 황제가 될 그의 아들은 우리 공사관 근처에 있는 궁전에서 내밀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 우리는 조그마한 만찬장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식이었는데 황실 문장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져 잇었다. 내가 사용한 그릇들은 식사후 나에게 선물로 증정되었다. 궁전을 떠날 때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주었다. 그 두 사람은 애처롭고 세상사에 둔감한 인물이었으며, 황실로서 그들의 존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앨리스와 태프트 일행이 대한제국을 떠난지 두달 후인 19051118일 새벽 1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

 

홍릉에서 기념촬영하는 앨리스와 미국 순방단 /코넬대 도서관
홍릉에서 기념촬영하는 앨리스와 미국 순방단 /코넬대 도서관
홍릉에서 기념촬영하는 앨리스와 미국 순방단 /코넬대 도서관
홍릉에서 기념촬영하는 앨리스와 미국 순방단 /코넬대 도서관
고든 패독, 앨리스와 롱워스 /코넬대 도서관
고든 패독, 앨리스와 롱워스 /코넬대 도서관
앨리스와 롱워스 /코넬대 도서관
앨리스와 롱워스 /코넬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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