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 보호에 앞장섰던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
여성인권 보호에 앞장섰던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7.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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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서 성고문사건-서울대 성희롱 사건 변호, 서울시에 젠더 특보 신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새벽 020분쯤 서울 삼청각 뒤 숙정문 근처 산속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딸의 실종신고로 경찰이 수색을 펼친지 7시간만이다.

박 시장이 9일 갑작스럽게 모든 일정을 취소한채 출근하지 않았다.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오찬약속, 오후 440분 대통령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도 취소했다. 그리고 오전 1053분 와룡공원 CCTV에 찍힌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러던 왜 그는 자살을 선택했을까. 그는 201110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9년째 서울시장을 역임했으며, 차기 대권의 유력한 후보자였다. 1956년 생, 향년 64세로 한창 일할 나이다.

 

그가 실종된 후 SBS8시 뉴스에서 2017년부터 박 시장 비서로 일하던 A씨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소장을 접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경찰은 고소 여부를 묻는 언론에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현재로서는 미투 사건 이외에는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여지는 정황은 없다. 그의 인생역정을 돌아보면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대해 참회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시
사진=서울시

 

젊은 시절에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경남 창녕군에서 태어나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해 1학년때 유신체제에 반대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어 제적되었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후 법원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으나 1년만에 박차고 나와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인권변호사 시절에 변호사 조영래 등과 함께 부천서 성고문사건 피해자 권인숙씨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관련 소송으로 알려진 서울대 우 모 조교의 성희롱 사건에도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200012월에는 여성국제전범법정에 검사단으로 참여해 일본군의 전쟁 범죄와 강제연행, 위안부 강간, 상해, 고문, 살인 행위를 비판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설립, 재벌개혁, 부적격 정치인 낙선운동 등을 벌였고, 2000년대 들어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등의 시민운동을 개척했다.

2011넌 오세훈 시장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안철수와 합의로 서출시장에 입후보해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시 행정을 맡았다. 2018년에는 서울시에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젠더특보를 임명하고, 성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성권익담당관을 신설하는 등 여성 인권보호에 적극 나섰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언사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다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미투 사건에 연루되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시장을 고소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비서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성추행이 이어졌다고 진술하고 박 시장과 나눈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 내용을 비롯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증거도 상당량 경찰에 제출했다고 한다.

박 시장은 A씨의 고소 이후에 무척 초조해 한 것 같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A씨의 고소장이 확인된 6일 밤 박 시장 최측근들과 젠더특보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전행했고 이 자리에서 시장직 사의 필요성 등이 거런됐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박 시장은 실종 당일 정세균 총리와의 오찬약속을 취소하면서 너무 힘들다.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과 가치, 언행을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에 그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을까.

서울 한강대교 난간에 자살을 방지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그 가운데 박원순 시장의 말이 있다. “우리 마음 잡고 다시 해 보아요. 행운은 잠시 쉬고 있어요.” 참 허망하게 들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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