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6·25 영웅 백선엽 장군 별세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6·25 영웅 백선엽 장군 별세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7.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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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100세…다부동 전투 방어, 평양 첫 입성, 32세에 육군 참모총장

 

6·25 전쟁 때 영웅이자 한국군 최초로 4성 장군에 올랐던 백선엽(白善燁) 육군 예비역 대장이 10일 밤 11시경에 별세했다. 향년 100세다.

고인은 1920년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나 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직에 잠시 종사하다 194112월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던 중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후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가 김일성이 권력을 잡고 부역자 처벌과 지주에 대한 재산몰수를 단행하자 이에 실망해 19451224일 월남했다.

월남한 후 고인은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이듬해 2월 임관해 중위가 된다.

30세가 되던 19504월에 대령으로 1사단장으로 부임해 6·25를 맞는다. 개전 당일 경기도 장단군에서 북한군과 교전했으나 화력과 장비 부족으로 다음날 퇴각하게 되었고, 1사단은 낙동강 까지 후퇴했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한국군이 굶주린 가운데 이탈자가 발생해자, 백선엽은 내가 앞장 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도 좋다.”며 병사들에게 싸울 것을 호소했다. 낙동강 전선은 이렇게 해서 지켜졌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를 꼽은 적이 있다. 고인은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한미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백선엽의 1사단은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제일 먼저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고, 평안북도 운산까지 진출했다. 그는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고,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50년 10월 평양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백선엽 /위키피디아
1950년 10월 평양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백선엽 /위키피디아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백선엽의 사단은 유엔군과 함께 38선 이남으로 후퇴했다.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한국군 대표로 참석했고, 회담 도중 전황이 악화되자 군단장으로 다시 강릉으로 부임해 동부전선을 지켜냈다.

1951년 지리산 빨치산 소탕을 위해 백야전사령부가 구성될 때 사령관을 맡았고, 그 시절에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 광주 송정리에 보육원을 세웠다. 그 때 보육원 고아들은 그를 아버지로 부르며 평생 인연을 이어갔다.

1952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그 때 나이는 32세였다. 육군 참모총장 재직시인 195212월 방한한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에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해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했다.

19531월 한국군 최초로 육군대장에 진급했고, 8군으로부터 155마일 휴전선 방어를 위임받았다. 1959년에는 연합참모본부 의장에 취임해 한구군 근대화를 추진했다.

1960531일 김종필 등 젊은 장교들이 추진한 청군운동으로 스스로 용퇴를 결심하고 퇴역했다.

5·16 직후인 19607월 그는 주중화민국(대만) 대사를 시작으로 주프랑스 대사, 주가봉·토고·세네갈·카메룬 대사, 주 캐나다 대사를 역임했다.

196910월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어 서울 지하철 1기 건설을 지휘했고, 1971~80년 공기업이었던 충주·호남비료 사장과 한국종합화학 사장을 지냈다.

 

1951년 휴전협정 대표시절의 백선엽 /위키피디아
1951년 휴전협정 대표시절의 백선엽 /위키피디아

 

미군은 백선엽 장군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백 장군에게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이라는 경칭을 붙이는 전통이 생겼다. 2013년에는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2016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8군 사령관 이·취임식에 초대되었다. 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겪은 일화 등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육성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일본 치하에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북무한 것이 친일 행위 명단에 올라 논란이 되었다. 2010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가 불발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노인숙씨(95), 아들 백남혁·백남흥씨, 딸 백남희·백남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2002년 82세때 백선엽 예비역 장군 /위키피디아
2002년 82세때 백선엽 예비역 장군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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