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과 시장의 장례식…이념에 갈라진 대한민국
장군과 시장의 장례식…이념에 갈라진 대한민국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7.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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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에 추모 논평도 없는 민주당…박원순 서울시장 장례에 찬반 논란

 

백선엽 예비역 대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루의 시간 차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백 장군과 박 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때 다부동 전투에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고 평양에 제일 먼저 입성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육군 대장에 임명된 6·25 전승의 상징이다. 박원순 시장은 젊은 시절에 반독재 투쟁을 하고 민권변호사로 시민운동을 개척했고 3선 서울시장을 역임하며 차기 대권의 유망주로 꼽혀온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의 75년 역사 궤적은 북한 공산주의의 도발을 저지하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경제도약을 이룩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탈바꿈한 것으로 요약된다. 그 큰 역사의 흐름 한복판에서 백 장군과 박 시장은 역사의 물길을 바꾸었다. 우리나라의 현재가 그믈처럼 짜이는데 두 사람의 역할이 큰 것은 분명하다.

흠결도 있다. 백선엽은 만주국 봉천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주의자가 지휘하는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친일 역사 청산을 슬로건으로 하는 정치인과 단체들은 그에게 반역이라는 덫을 씌우고 있다. 박원순의 마지막도 오점으로 더럽혀 졌다. 그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인생여정에 그토록 강조해온 여성인권보호가 한 여성의 미투 사건 고소사건으로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죽은 사람 앞에 경건해야 하는 것이 관례고 오랜 풍습이다. 백 장군의 장례는 육군장으로, 박 시장 장례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내면서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고 있다. 언론들은 두 상갓집에 누가 참석하고 어떤 말을 하며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지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두 인물의 장례를 보면 이 나라가 갈라져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어느 상가를 가는지로 그 사람의 이념과 철학이 확인된다. 누구는 어느 장례식에 가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누가 SNS로 한 말을 다른 이는 곧바로 비판한다. 죽음의 의식을 놓고 이 나라에 이념과 가치관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시장 /위키피디아
고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시장 /위키피디아

 

백선엽 장군은 한 세기를 꼬박 채우고 세상을 떴다. 그의 군인정신은 미국인들에게서 인정을 받는다. 낙동강 전투에서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며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고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국군현대화에 기여한 공로는 한국사람들보다 미국인들이 더 알아준다.

11일 아산병원 빈소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찾아와 부인 노인숙 여사에게 사진을 하나 꺼내 보여주다. 그 사진에는 2년전 백 장군의 생일 때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를 다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정경두 국방 장관, 육군참모총장과 국가보훈처장도 빈소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고,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김병주 더불어민주등 의원등이 백장군의 빈소를 찾았다.

그런데 집권여당은 백선엽 장군에 대해 한마디도 추모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공식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추모도 지적도 하지 않고 침묵하겠다는 것이다. 백 장군이 친일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이 언론들의 해석이다. 아니면 북한군에게 승리한 장군을 추모하면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민주당이 미투 사건 의혹이 제기된 박원순 시장에 대해 추모 논평을 낸 것과 대조적이다.

백장군의 장례와 장지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미래통합당은 백 장군에 대해 육군장으로 치르는 것에 대해 국가에 대한 그의 헌신을 추념하기 위해 국장 또는 국가장으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장군의 장지는 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는데, 미래통합당은 서울현충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청년이 만주군에 가서 일했던 짧은 기간을 친일로 몰아 백 장군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좌파들의 준동이 우리 시대의 대세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백 장군의 헌신과 오점 논란은 70년도 더 된 과거인데 비해 박원순 시장 추모와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박 시장 장례에 대한 논란은 더 뜨겁다.

여권 인사들은 줄줄이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민주당은 서울 곳곳에 박 시장 추모 현수막을 내걸었고, 서울시는 시청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차려 시민적 추도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박 시장의 죽음은 성희롱 사건과 뒤섞여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해찬 대표는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박 시장의 미투건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걸 예의라고 붇느냐며 되레 화를 냈다. 덮고 싶은 것을 꺼낸데 대한 불쾌감의 표현일 것이다.

민주당의 2중대라고 비판받던 정의당이 반기를 들었다. 정의당은 심상정 대표 등 지도부 차원에서 박 시장의 빈소를 조문했지만, 개별 의원 차원에선 조문을 하지 않았다.

류호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글을 남겼고, 정혜영 의원은 누군가 용기 내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 이야기 끝이 공소권 없음과 서울시 이름으로 치르는 전례 없는 장례식이 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에 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이 SNS"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나. 지금은 애도할 시간."이라고 적었다가 진중권씨로부터 "옛날 성누리당 지지자들이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고, 옛날 민주당은 더듬어만지당으로 변신해 그 짓을 변호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박시장 빈소를 이틀째 공식조문하지 않았다. 박 시장과 동지로 출발했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페이스북에 "고위 공직자들의 인식과 처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조문을 않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장례에 대해 반대 서명이 11일 오후 현재 45만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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