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관노와 잤다’는 네티즌 글은 오류
‘이순신 장군, 관노와 잤다’는 네티즌 글은 오류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7.17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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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가는 도중에 관노의 집에서 숙식한 것을 잘못 해석했다는 게 정설

 

상당수의 사람들이 드라마나 소설의 역사 서술을 사실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허다하다. 드라마에서는 극적 요소를 가미 하기 위해 사실을 과장 왜곡하는 경우가 많고,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인터넷에 쏟아지는 지식 정보 가운데 검증해야 하는 역사 정보가 수두룩하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논란과 관련해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잤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느 네티즌이 이순신 장군이 관노(官奴)와 잤다고 주장하면서 너무 지나친 비유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순신 장군의 고향인 충남 아산시 출신인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이 <난중일기>를 연구하는 전문연구자들의 자문을 종합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의원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연구해 온 노승석 박사 등 권위 있는 전문 연구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종합한 결과,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잠을 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께서 관노와 잠을 잤다는 단초를 제공한 문구는 <난중일기> 탈초본(초서를 정서로 바꾼 책) 가운데 1596912일 여진(女眞), 914일 여진입(女眞卄), 915일 여진삽(女眞卅)이다. 이 구절은 1935년에 일본인이 최초 <난중일기>이순신 장군과 여진이라는 관기가 성관계를 했다로 해석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다수의 권위있는 전문 연구가들의 지적에 의해 당시 조선의 호남지방에 많이 이주해 살고 있던 여진족과의 생활을 의미하는 함께하다()’또는 단순히 여진·여진입·여진삽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설이라는 것이다.

<난중일기> 1597421일자에 저녁에 여산의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문구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이 감옥에서 나온 후 모친상을 당하고 상중출사(喪中出仕)해 백의종군하러 합천으로 가는 중에 해가 저물어 여산(익산시 여산면 소재) 관아의 남자종집[官奴家]에서 하룻밤 유숙한 것으로, 여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는 남자종이고 비()가 여자종이기 때문에 관에 속한 남자종의 집에서 숙박했다는 의미라며 당시 이순신 장군은 모친상을 당한 데다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의 신분으로 가는 길이었다. 해당 구절 뒤에는 한밤중에 홀로 앉아서 지난 일을 회고하며 비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고 적었다. 충무공이 여성과 잠자리를 했던 정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국보 제76호) /문화재청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국보 제76호) /문화재청

 

이명수 의원이 전문연구가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에 성관계를 표현하는 한문의 글자는 가까이 하다, 동침하다는 뜻으로 근(), ()가 일반적으로 쓰였고, 이 외에도 동침(同枕), 동호(同好) 등의 표현이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난중일기에 표현된 잘 숙(宿)’도 성관계를 의미하는 동침이 아니라 단순히숙박을 의미한다는 게 권위있는 전문 연구가들의 견해라는 것이다.

또 동시대 인물인 백사 이항복이 <고통제사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에서 이순신은 일찍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명수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물타기하기 위해 허위사실에 근거해 이순신 장군을 비교 인물로 등장킨 것은 국가적 인물을 매도하는 것이요, 국민적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쓴 네티즌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나 잘못된 자료를 읽고 쓴 것이라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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