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대왕국 예국⑤…창해역사의 전설
사라진 고대왕국 예국⑤…창해역사의 전설
  • 아틀라스
  • 승인 2019.04.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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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국토성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폐기…가면극으로 전승

 

오랜 역사를 가진 예국이지만, 1500년이 지난 오늘날 예국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예국은 철국(鐵國)으로도 불리웠다.

1915년에 예국토성지(濊國土城址)’라고도 불리는 성터가 발굴조사됐는데, 총연장 2,800m, ()0.5~12m이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 편과 민무늬토기 편이 출토됐다. 예국토성지는 조선시대에 폐기됐는데, 예국의 소군장(小君長)인 후()가 거처하는 성읍(城邑)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릉시 옥천동과 금학동에 걸쳐 있는 예국의 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강릉에는 또 고대 예국의 신화적 인물인 창해역사(滄海力士)에 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창해역사에 대하여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자료는 조선시대 문신 홍만종(洪萬宗)이 쓴 순오지(旬五志).

 

예국의 노파가 시냇가에서 호박만한 알이 떠내려 오는 것을 주워 두었더니, 얼마 안 되어 알이 두 쪽 나며 남자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 얼굴이 보통사람이 아니었으며, 6세가 되자 키가 8척이나 되고 얼굴빛이 검어서 성인과 같았으므로 검을 ()’자를 성으로 삼고 이름은 용사(勇士)라 불렀다. 여용사가 예국의 호랑이를 퇴치하기도 하고, 만근이나 되는 종을 옮기는 등 괴력을 발휘하자 왕은 상객으로 대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곳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장량열전에는 장량이 동쪽을 보고 창해군의 역사를 얻었다 했으며, 그가 사용하던 쇠방망이가 무려 120근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창해역사가 장량과 함께 진시황을 저격하려다가 실패했다고 전한다.“

 

창해역사는 철퇴를 들고 진왕 정(진시황제)이 행차하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진시황이 탄 수레를 공격했는데, 진시황은 다른 수레를 타고 있어 죽음을 모면했다고 한다. 창해역사는 모래밭으로 뛰어가 30리나 달아 나 사라졌다고 한다.

설화는 믿거나 말거나다. 하지만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을 죽이려 덤벼들었던 사람이 강원도 동해안 출신이라니 통쾌하기 그지 없다.

 

창해역사 유허비각 /강릉시 사이트
창해역사 유허비각 /강릉시 사이트

 

강릉관노가면극에서는 장자마리가 장량(장자방)을 상징하고, 창해역사는 시시딱딱이로 형상화됐다고 한다. 강릉 지역에 전하는 구전설화에는 창해역사의 이름이 강중(剛中)이라 밝히고 있으며, 사후에 강릉의 성황신 가운데 육고기를 대접받는 장군신인 육성황신이 됐다고 한다.강릉시는 1991년 옥천동에 창해역사 기적비를 세우고 그의 신화적 행적을 기리고 있다.

예의 무천(舞天) 행사는 오늘날 강릉 단오제로 변형돼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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