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대형 폭발참사에 설상가상 디폴트 상태
레바논, 대형 폭발참사에 설상가상 디폴트 상태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8.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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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한 부채로 3월 7일 디폴트 선언…폭발 사고후 반정부 시위 확산

 

베이루트 항구에서 대형폭발 사고가 난 레바논은 현재 대외채무에 대해 디폴트 상태에 있다. 이번 참사로 100명 이상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베이루트 시민들은 부패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패도 원인이 있을 터이지만 기본적으로 나라가 파산 상태인 가운데 사고가 났다. 레바논은 지난 37일 대외채부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레바논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까.

 

레바논은 면적 1452로 경기도만하고,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686만명이다. 수도 베이루트와 메트로권역에 이나라 인구의 3분의 1220만이 모여 산다. 전체 인구의 54%가 이슬람이고 41%가 크리스챤이다.

1975년 종교갈등으로 내전이 발발하기 이전에 레바논은 중동의 금융 허브이자 중계무역 중심지로, ‘중동의 파리로 불리었다. 그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의 분쟁, 팔레스타인 난민의 유입 등으로 복잡한 중동 정세에 휘말리면서 중동의 화약고로 전락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 갈등 심화로 촉발된 내전은 시리아, 이스라엘, PLO가 가세해 국제 대리전으로 확대되었다.

1990년 종전까지 16년간 계속되면서 국가 및 산업 인프라가 대부분 파괴되었다. 중동의 오일달러 부호, 거물 금융인, 비즈니스인, 냉전시대 각국 스파이들로 북적였던 수도 베이루트의 화려했던 모습은 오래된 흑백사진 속 추억이 되었다.

 

종전 이후 주변 걸프 산유국, 프랑스, EU 등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으로 대규모 복구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종교·종파 간 분파주의로 나눠먹기식 정치 관행과 국가 전반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부정, 부패가 기승을 떨쳤다. 국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않고, 종교, 종파별 집단 이기주의와 지도층의 사적 이익에 편승하여 합리적인 배분이 왜곡되었다. 주택, 전력, 수도 등 기본 인프라가 장기간 부실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높은 실업률, 극심한 빈부격차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접국 시리아가 아랍의 봄여파로 2011년 내전에 휩싸이면서 레바논으로 피난 인구가 유입되면서 약 150만 명로 불어났다. 이는 가뜩이나 힘겨운 레바논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이들 난민은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2019년에 레바논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급여 및 연금을 삭감해 국민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지난해 1~2월에 항만, 공항 직원이 파업에 돌입했고 5월에 중앙은행, 증권거래소의 파업 동참에 이어 하반기에는 수도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를 퇴역 군인, 교사, 공무원들의 시위대가 점거했다. 무분별한 정부 정책에 불만의 여론이 높아졌다. 1017일 무료 모바일 대중 통신수단인 왓츠업과 일반 인터넷 사용에 대한 신규 과세 결정 발표를 계기로 억눌렸던 민심이 폭발하여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올해 2월 출범한 하산 디아브 총리는 헤즈볼라 출신 인사다. 헤지볼라 세력은 이슬람 시아파로 이란, 시리아와 연대하면서 반이스라엘, 반미 강경 투쟁을 앞세우고 있다. 헤지볼라는 국민의 60%를 차지하는 이슬람 교도 다수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2016년 내각에 진출한 이후 한층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2019년 10월 1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시위대 /위키피디아
2019년 10월 1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시위대 /위키피디아

 

디아브 내각은 집권 한달후인 37일에 대외채무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러면 레바논은 왜 디폴트를 선언했을까.

2017년 이후 내수 경제를 떠받치던 건설 경기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그동안 건설과 호텔, 리조트, 레저 부문 투자에서 큰손 역할을 톡톡히 했던 걸프 산유국의 자본이 서서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2006~2010년 사이에 불어온 건설 활황기에 투자를 감행한 기업들이 무리한 차입을 했고, 불어난 이자와 원금 상환의 부담에 노출됐다.

정부 예산도 대외채무에 기반했다. 정부 예산은 적절한 감독 없이 금융기관을 통해 과도한 차읍으로 채워져 건설, 부동산 부문에 쏠렸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국가 인프라 확충, 제조업 육성 및 일자리 창출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내수시장에 원자재, 소비재, 사치품의 수입-유통 마진의 달콤한 맛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기업인들로 넘쳐났다. 재정적자 확대는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유발하게 되었고, 결국은 파산상태에 몰리게 된 것이다.

 

베이루트 외곽의 팔레스타인, 시리아 난민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베이루트 외곽의 팔레스타인, 시리아 난민 거주지역 /위키피디아

 

2018년 이후 IMF는 레바논 국가부채가 GDP 대비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며, 신속하고 과감한 개혁 조치가 없을 경우 국가 재정이 파탄날 것임을 수 차례 경고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S&P, 피치 등도 연이어 레바논 신용등급의 하향 조정을 발표했다. 국가 경제성장률도 20161.6%를 고비로 급락해 20170.6%, 20180.2%에 이어 2019-0.5%를 기록했다.

 

지난해말에 실물경제 파탄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시중 금융기관의 뱅크런과 외화 대외유출 가능성이 현실화되었다. 이에 레바논 정부는 달러화 등 외환 계좌별 인출 한도 통제를 전면 실시했고 국외 외화 송금을 엄격히 제한했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더욱 심화되면서 고정환율제로 달러당 1,507.50LBP(레바논파운드화)에 고정돼 있던 기준환율은 유명무실해졌고 60% 정도 폭락을 거듭했다. 암시장에서 환율은 1달러당 2,500LBP까지 치솟았다.

 

유로본드 12억 달러의 만기일은 올해 39일일이었다. 이 금액을 갚지 못해 금융위기가 온다는 설은 지난해말부터 설이 퍼졌지만, 레바논 정부는 미온적인 개혁 정책으로 우왕좌왕했고 레바논 중앙은행(BDL)도 외화 예금인출 및 대외 유출 통제 등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마침내 37일 하산 디아브 총리는 TV에 출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총리는 레바논의 부채가 GDP170%900억 달러에 달해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채무상환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 중지한다고 밝혔다.

레바논의 대외 자금줄인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쿠웨이트 등은 수니파 산유국들이다. 이들 국가는 최근 국제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선뜻 호의적인 자금 지원을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임 시아파 출신 온건 성향의 하리리 총리가 지난해 10월 반정부 시위 이후 부상한 정부 책임론과 시위대 퇴진 여론에 밀려 자진 사퇴했다. 헤즈볼라계 현 총리와 헤즈볼라계가 다수인 내각의 주요 인사들 면면이 수니파 걸프국들 입장에서 탐탁지 않은 것도 자금 지원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레바논 정부의 대외채무에 대한 관리 능력이 상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어 뱅크런과 외화유출로 암시장 내 환율 급등세가 지속되고, 안전자산인 달러화, 유로화, , 보석, 명품 등 고가사치품에 대한 사재기가 횡행하고 있다. 기업의 줄도산과 식당 등 자영업자의 폐업이 증가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무려 30%를 넘어선다. 경제 악화가 심화될 경우 빈곤층이 전 국민의 60%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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