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어원…왜 금행이라 하지 않았을까
은행의 어원…왜 금행이라 하지 않았을까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8.09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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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은본위제 형성되며 금융 길드를 은행이라 호칭…일본·한국도 도입

 

왜 은행(銀行)을 금행(金行)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돈은 한자로 금()인데, 따라서 금행이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는 은행이라고 부른다. 그 배경에 대해 많은 설이 있다.

 

중국의 상인 길드인 '()'라고 불렀다. 중국은 명나라 이후 은()으로 세금을 물리고 은본위제를 실시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남미와 멕시코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은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은 중심의 세금 제도인 일조편법과 지정은제가 시행되었다. 중국에서 은을 거래하는 상인들의 길드, 즉 행()이 금융업의 주체가 되면서 '은행(銀行)'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고 한다.

 

·청기 중국에 은본위제가 정착되면서 상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대량의 물건이 먼 지역까지 수송되고 거래되었지만, 결제 방식은 현금거래였다. 은을 수레에 싣고 가서 물건을 사오거나 물건 값으로 은을 싣고 와야 했다. 상인이 직접 은을 들고 운반하지 않을 경우, 표국(鏢局)이라는 무장조직을 이용해야 했는데, 수수료가 고리대나 다름없었다. 중국에선 표국을 물류조직이라고 미화하지만, 조폭조직이나 다름없었다.

청나라 시대 산시(山西)성 핑야오(平遙) 출신 뇌이태(雷履泰, 17701849)라는 진상(晋商)이 은의 수송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일승창(日昇昌)이라는 안료가게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일승창의 점포망을 통해 환거래방식을 창안해 냈다. 일승창 지점에서 은을 수령한후 그에 상응하는 표()를 발급하면, 일승창 어느 지점서도 그 표에 적인 금액만큼 은을 내주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 표는 지금의 환어음에 해당한다.

그는 자금 송금이 필요한 상인들을 고객으로 끌어 왔다. 산시와 베이징을 본거지로 두고 중국 전역은 물론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진상들이 뇌이태의 고객이 되었다.

그리고 일승창에서는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많이 받으면 비난을 받을 것이므로, 초기에는 거래액의 1%로 정했다.

그는 1823(道光 3)에 일승창을 표호(票号)으로 개편하며, 본격적으로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산시상인(진상) 뇌이태가 창시한 이 상업금융기관은 어음애 해당하는 ’()를 발급하고 이 표에 근거해 현금을 환급하므로, 표장(票莊), 또는 포호(票号)라고 불리었다. 표호의 출현으로 현금을 운반하던 표국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히 줄어들었고, 표호의 사업은 크게 일어났다. 뇌이태가 표호를 설립하자 진상들 사이에 표호 설립이 줄을 이었다. 외국인들은 주로 신시성 출신 상인들이 표호를 만들었기에 산시은행’(山西银行)이라고 했다.

19세기 중반 홍수전(洪秀全)이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을 일으키면서 다방면으로 개혁을 시도했는데 이때 재정 방면의 개혁에서 '銀行을 부흥시키자!(興銀行)'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한다. 이것이 중국에서 '銀行'이라는 말이 사용되게 된 효시라고 한다.

 

중국 산시성 핑야오의 일승창 유적 /위키피디아(중국판)
중국 산시성 핑야오의 일승창 유적 /위키피디아(중국판)

 

우리나라에서 은행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은행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한국에 근대적 은행제도가 도입된 1878년에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이 개설된 때 부터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영어 'bank'를 번역하면서 "金行"라고 부르자는 방안도 있었지만, 금행(きんこう)보다 발음이 부드러운 은행(ぎんこう)으로 하기로 했다는 설이 있다. bank의 번역어로 '은행'이 처음 사용 된 것은 1866년이지만, 이 번역어가 정착 한 것은 메이지 시대인 1872년의 국립은행조례(國立銀行條例) 제정 이후의 일이다. 메이지 시대에 bank를 은행으로 번역한 것은 중국에 따른 것이다. 1865년 홍콩상하이은행 등이 설립되면서 중국에서 은행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영어에서 '뱅크‘(Bank)는 이탈리아어 방코 Banco에서 유래되었다.

banco는 이탈리아어로 책상, 벤치를 뜻하는데, 피렌체의 은행가들에 의해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 된 말이다. 그들은 녹색 천으로 덮인 책상 위에서 거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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