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가림성에 신라와 조선 시대 우물 나왔다
부여 가림성에 신라와 조선 시대 우물 나왔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8.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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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거점 산성…조선시대 사각형 우물과 신라시대 원형 우물 발견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에 가림성(加林城)이 있다. 가림성은 백제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금강하류에 세워진 거점 산성으로, 돌성(石城)이며 사적 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성터에 집 우물 2개가 발굴되었다. ()백제고도문화재단 발굴팀은 통일신라 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2개의 우물을 확인했다.

발굴팀은 지난해 9월부터 북성벽 내측부에 대한 수구와 집수 시설을 조사했는데, 조선 시대에 사용한 사각형 집수정(우물)과 통일신라 시대에 사용한 원형 집수정을 확인했다.

 

부여 가림성에서 확인된 우물 2기 /문화재청
부여 가림성에서 확인된 우물 2기 /문화재청

 

조선 시대 우물은 길이 4.9m, 너비 4.5m, 깊이 2.3m에 평면은 방형의 형태로, 내부에서 조선 시대 분청사기 조각, 기와 조각, 말머리 토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선 시대 중기에 축조되었다가 가림성이 폐성되는 17~18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성벽에서 조사된 수구지와 함께 조선 시대 성내 배수체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통일신라 시대 집수정은 조선 시대 집수정의 하층과 가림성 북성벽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길이 15m, 깊이 2.8m 이상의 크기로 평면은 원형을 띄고 있으며, 물을 가운데로 모으는 집수정과 그 외곽에 돌로 축조한 물을 차단하는 시설과 배수를 겸한 수로가 돌아가는 형태로, 부여 석성산성에서 확인된 집수정과도 유사하다. 내부와 주변 토층 조사를 통해 집수정의 최초 축성 시기와 축조 방식을 밝힐 예정이다.

 

가림성의 조선시대 우물 /문화재청
가림성의 조선시대 우물 /문화재청

 

가림성은 1996년 동문지와 남문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2011, 2015~ 2018년까지 총 6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동문지와 남문지의 축조 형태, 백제 시대 성벽 축성법, 백제~조선 시대 개축한 성벽 흔적, 조선 시대 수구지, 정상부의 평탄지에 자리한 건물지 등이 확인된 바 있다.

 

가림성의 통일신라시대 우물 내부 /문화재청
가림성의 통일신라시대 우물 내부 /문화재청

 

가림성은 <삼국사기>501(백제 동성왕 23)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기록되었다.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했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했으며,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했다고 해서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부여 가림성 /문화재청
부여 가림성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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