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수군 요충지 태안 안흥진성, 국가사적 된다
서해 수군 요충지 태안 안흥진성, 국가사적 된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8.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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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유일의 수군방어영…강화도와 호남 해안 연결하는 조운로 보호

 

충청남도 유일의 조선 수군방어영이었던 태안 안흥진성(安興鎭城)이 국기지정 문화재 사적으로 지정예고되었다. 이 문화재는 1976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태안 안흥진성은 전체 길이 약 1,714m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충청도 태안지역에 분포해 있는 수군진성(水軍鎭城) 중 가장 큰 규모다. 각자석(刻字石)에 새겨진 글을 통해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선조 11(1583)으로 추정된다. 체성 상부의 여장(女墻, 적의 화살이나 총알을 방어하기 위해 구조물)이 남아 있어 성곽의 축조와 변천을 파악할 수 있다.

 

태안 안흥진성 /문화재청
태안 안흥진성 /문화재청

 

태안 안흥진성은 서해안에 자리한 입지적 특성상 조운로의 주요 거점을 담당하는 장소이자 보장처인 한양과 강화도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축성되었다.

효종 때 대신 이후원(李厚源)은 이 지역이 천연의 요새지이므로 군대를 주둔하고 양곡을 저장하면 안으로 강화도의 표리(表裏)가 되고 밖으로 호남과 영남을 제어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효종은 충청감사에게 명을 내려 성을 쌓게 했는데, 부근의 19개 군민이 동원되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다.

성의 역할이 인정되어 1866(고종 3)에는 안흥방어영(2품 방어사 군영)으로 승격되어 18세기 후반에는 충청수영 행영(行營)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왔다.

또 군사적 요새지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두어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맡아보게 하였다. 1894(고종 31)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성 안의 건물이 일부 불타 없어졌다. , , , 북 네 곳에 석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출입구만 남아 있다. 성의 윤곽으로 보아 규모가 큰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안에는 20여 호의 민가가 있으며, 그 뒤편의 고지에는 태국사(泰國寺)가 있고, 성내 동문편에 영의정 김우근(金佑根)의 영세불망비와 비각이 있다.

 

안흥진성 성벽과 여장 /문화재청
안흥진성 성벽과 여장 /문화재청

 

안흥진성은 <조선왕조실록>, <대동지지>, <비변사등록> 등 문헌기록을 통해 축성의 연도·배경·완공시기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서해안의 관방유적(군사목적의 시설 유적)이다. 전국의 통제영·방어영·수영·수군진성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해 수군진성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지정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1872년 지방지도의 안흥진성 /문화재청
1872년 지방지도의 안흥진성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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