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51세에 기로소 입소하다…등극 40년도 기념
고종, 51세에 기로소 입소하다…등극 40년도 기념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08.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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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숙종, 영조에 이어 네번째…광화문 기념비, 의성 연수전 설립

 

조선 왕조에 오래 산 임금이 드믈다. 60세 이상 산 임금은 태조, 정조, 광해군, 숙종, 영조, 고종 정도를 꼽을수 있다. 이중 정조는 동생인 이방원(태종)에 의해 옹립된 인물이고, 광해군은 퇴위 후에 환갑을 맞았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재위 기간에 환갑을 맞은 임금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정도에 불과하다.

국왕의 장수는 신하들이 감축해야 할 일이다. 국왕의 환갑은 나라의 경사였다.

조선 시대에는 나이가 많은 문관들을 우대하기 위해 기로소(耆老所)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고려시대의 기영회(耆英會)를 본뜬 제도다. 2품 이상 문관은 70세가 넘으면 기로소에 입소하게 하고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국왕의 경우 특별하게 나이를 낮춰 환갑인 60세를 넘으면 기로소에 입소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태조는 60세가 되자 친히 기영회에 입소했다. 하지만 그후 왕들이 오래 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게 되자, 숙종과 영조는 60세가 되기도 전에 미리 앞당겨 기로소에 들어갔다.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한국나이)가 되던 1902년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즉위 39년째가 되던 해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어 아버지 대원군의 섭정,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나라의 간섭, 청일전쟁, 아관파천, 대한제국 수립의 온갖 수난을 겪은 고종 황제의 기로소 입소는 황태자(순종)을 비롯해 신하들이 경하할 일이었다.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경하하기 위해 황태자가 직접 상소했다. 고종실록(39년 양력 84)에 따르면, 황태자가 상소하기롤,

올해는 세 가지 경사가 겹치니 세상에 다시 없을 일입니다. 폐하가 51세가 되시고 등극하신 지 40년이 된 것만도 열성조 이래로 드문 일입니다. 게다가 또 기로소 예식은 왕조가 선 때로부터 지금까지 500년 간에 겨우 네 번 있는 일이니, 올해의 경사야말로 천 년에 제일 큰 경사이며 신자(臣子)로서 이런 훌륭한 때를 만난 것도 역시 천 년의 행운입니다. 부모가 장수하는 것을 기뻐하고 세월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하는 소자의 정성으로 그 은혜와 사랑에 만분의 일이나마 본받음으로써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펴고자 하였는데……라고 했다.

 

고종은 자신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해 영조의 예에 따라 자신의 어진(御眞)을 그리도록 하고 기념 건축물을 짓도록 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광화문 4거리에 있는 기념비와 경북 의성에 있는 고운사 연수전이다.

 

사적 제171호 서울 광화문의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문화재청
사적 제171호 서울 광화문의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문화재청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에 있는 고종어극 40년칭경기념비(四十年 稱慶紀念碑)는 광화문을 오가다 늘상 스치는 곳에 있다.

이 기념비는 고종이 등극 40주년과 그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석은 비전(碑殿)안에 있다. 이 비석에는 고종이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비석 앞면에는 황태자였던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했다. 사적 171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2078호 의성 고운사 연수전 /문화재청
보물 제2078호 의성 고운사 연수전 /문화재청

 

의성 고운사 연수전(孤雲寺 延壽殿)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0호였다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2078호로 승격되었다. 이름 자체에 임금이 오래 사실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연수전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에 자리하고 있는데,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해 1904년에 세운 기로소 원당이다. 고운사 내에 있던 영조의 기로소 봉안각의 전례를 따라 세워진 대한제국기의 황실 기념 건축물이다.

고운사 연수전은 조선 국왕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는 건축물로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다. 연수전은 솟을삼문 형식의 정문인 만세문과 사방에 담장을 두어 사찰 내의 다른 구역과 구분되는 독립된 구획을 이루고 있다. 본전 건물은 3단의 다듬은 돌 석축 위에 있으며, 정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정사각형(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이다.

한 가운데 자리한 중앙 칸을 어첩(御帖) 봉안실로 삼았고 둘레에 퇴(툇간)를 두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금단청을 했고, 천장에는 다른 곳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용과 봉, 해와 달, 학과 일각수(一角獸, 유니콘과 비슷한 상상 속 동물), 소나무와 영지, 연과 구름 등 다양한 주제의 채색 벽화가 가득하다. 규모가 작지만 황실 건축의 격에 어울리는 격식과 기법, 장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 높은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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