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합의 기초가 된 철강과 석탄의 화해
유럽 통합의 기초가 된 철강과 석탄의 화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9.0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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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프랑스 쉬망, 철과 석탄의 공동관리 제의…유럽 화해의 계기

 

18세기말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유럽 각국에선 철과 석탄이란 지하자원의 확보가 국가의 최대과제가 되었다. 철은 철도와 선박, 자동차를 만드는데 기초소재로 사용되고, 무기의 재료다. 석탄은 가졍용은 물론 선박, 자동차를 움직이는 연료이고, 철을 제련하는 코크스의 원료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섬유산업에서 시작되어 증기기관, 증기선, 철도, 제철업으로 파급되었고, 철과 석탄은 산업 발전의 피와 쌀과 같은 존재로 부상했다. 전쟁을 치르는데도 철과 석탄이 필수적 존재였다. 무기를 제작하고 병력을 철도와 증기선으로 수송해야 하는데, 철과 석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자원전쟁이란 말은 적어도 산업혁명 이전에는 없었다. 산업혁명 이전 전쟁의 주목적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71)부터 영토 획득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특히 식민지 확보는 자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그 핵심이 철과 석탄이었다.

 

유럽의 석탄 철강 광산 /위키피디아
유럽의 석탄 철강 광산 /위키피디아

 

유럽 대륙에 철과 석탄의 주요 산지는 공교롭게도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에 밀집되어 있었다. 독일의 루르-자르 지방, 프랑스의 알사스-로렌 지방, 벨기에에 질좋고 풍부한 석탄과 철광산이 산업혁명과 함께 활발하게 개발되었다.

독일은 알사스-로렌 지방을, 프랑스는 루르-자르 지방을 원했다. 알사스-로렌은 라인강 서쪽에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인데, 중세부터 철광석이 풍부한 곳으로 유명했다. 프랑스가 보유한 철광석 매장량의 90%가 알사스-로렌에 묻혀 있다.

라인강 동쪽의 루르 지방에는 양질의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독일 석탄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가 이곳 탄전에서 생산된다.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으며 주민이 독일어 사용자라는 점을 주장하며 알사스-로렌의 영유권을 주장했고, 프랑스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루르와 자르를 갖고 싶어 했다.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고 프랑스와의 전쟁(1870~71)에서 승리한후 차지한 곳이 알사스-로렌이다. 당시 철혈(鐵血) 재상이라 불리던 비스마르크는 쇠와 피에 의해서 독일을 통일할수 있다고 연설했다. 그는 철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가 1871년에 쓴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는 철과 석탄 산지를 잃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후 프랑스는 알사스-로렌을 차지했다. 또 독일이 전쟁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루르지방을 점령했다. 프랑스의 루르 점령 이후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게 된다. 독일의 앙심은 2차 대전으로 치닫는다. 2차 대전 중에 독일은 다시 알사스-로렌을 영토로 되찾는다.

2차 대전에 독일이 다시 패한 후 알사스-로렌을 프랑스에 빼앗긴다. 프랑스는 독일 영토인 자르란트(Saarland)도 점령해 보호령을 통치하며 영토화하려고 했다.

100년에 걸친 분쟁은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베네룩스 3국에 걸쳐 있는 철과 석탄의 광산을 둘러싼 것이었다.

 

독일 루르지방 에센에 있는 졸페라인 석탄기념관 /위키피디아
독일 루르지방 에센에 있는 졸페라인 석탄기념관 /위키피디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유럽 전체에 엄청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벌이는 대륙의 분쟁에 늘 영국이 끼어들었고, 주변국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고 참전해야 했다.

2차 대전 종전후 프랑스의 초기 대응은 독일을 원시시대로 돌리는 것이었다. 프랑스 해방의 주역 샤를 드골이 앞장서고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이 뒷받침한 이론이었다. 독일의 산업을 제거하고 광산지대를 독일 영토에서 제외시키는 계획이 마련되었다. 그 차원에서 프랑스군은 자르란트를 점령하고 독일 공장에서 기계와 설비를 뜯어갔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런 보복성 대책은 곧 파기되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소련이 군사력을 앞세워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동유럽을 공산화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자 미국이 서유럽의 단합을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1차 대전 종전후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보복이 또다른 전쟁을 유발했다는 반성에서 유럽의 영구적 평화를 주장하는 범유럽주의가 강하게 대두되었다는 사실이다. 두 경향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냉전(cold war)은 서유럽의 단합을 강화시키는 외적 요소로 작용했고, 유럽주의는 오랜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는 내부적 흡인력으로 나타났다.

영국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이 먼저 1946714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를 요구하며 유럽을 미 합중국(USA)와 비슷한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미국과 소련의 대결 속에 유럽이 하나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처칠의 호소력은 컸다. 하지만 승전국인 프랑스에서는 독일을 제압해야 한다는 드골주의(Gaullism)가 팽배했다. 여기에 로베르 쉬망(Rober Schuman)이 등장한다.

 

쉬망은 록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피에르 쉬망은 알사스-로렌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적이었다가 영토변화에 따라 독일 국적으로 바뀌었다. 쉬망도 독일 국적이었다가 1차 대전 이후 프랑스 국적으로 바꿨다. 이렇게 출생지와 국적이 바뀌고,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쉬망은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굳히게 되었다.

2차 대전후 쉬망은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고, 드골주의와 공산당 사이에 제3의 세력을 확보했고, 1948년에는 외교부 장관이 된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가입 6개국 /위키피디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가입 6개국 /위키피디아

 

195059일 프랑스 외교 장관 쉬망은 이른바 쉬망 선언(Schuman Declaration)을 발표했다. 내용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생산되는 철과 석탄을 하나의 조직에 의해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헛된 말을 쏟아낼 게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프랑스는 평화를 희망한다. 우리의 생각에 유럽이 동의할 것이다. 독일의 루르와 자르, 프랑스의 산업 시설은 하나의 목표로 움직일 것이며, 유엔의 감시를 받을 것이다. 지금부터 유럽은 새로 태어날 것이다. 유럽은 굳게 단합할 것이다.”

 

룩셈부르크에 있는 옛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본부 /위키피디아
룩셈부르크에 있는 옛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본부 /위키피디아

 

쉬망은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었다. 철강과 석탄의 생산을 공동관리하는 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며, 평화적 발전을 향한 길이라는 것을 그는 간파했다.

서독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가 즉각적으로 반겼다. 패전국이었던 독일로선 유럽의 무대에 복귀할 기회가 되었다.

쉬망의 제안에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이 호응했다. 영국은 이때 노동당이 정권을 접고 있었는데, 처칠의 생각과 달리 국제기구의 초국가적 권력에 반대하며 가입을 포기했다.

쉬망의 제안에 의해 마침내 6개국으로 철과 석탄의 생산을 조절하는 기구가 1951년에 탄생했다. 이 조직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쉬망 선언 이후 프랑스는 독일 자르란트를 영토화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자르란트는 1955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일로 귀속될 것이 결정되었다. 철과 석탄의 화해는 원자력의 화해로 이어졌고, 1957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가 결성되었다.

 

오늘날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은 쉬망의 제안에서 시작된다. 쉬망이 철과 석탄의 공동관리를 제안한 59일은 '유럽의 날'(Europe Day)로 기념되고 있다. 자원에 대한 국가간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승화시켜 경제공동체를 형성한 역사적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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