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역사①…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사용
석유의 역사①…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사용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9.0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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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방수재, 연료, 등잔용으로 사용…동서양 고전에 공히 인용

 

현대인들은 석유와 떨어져 살수 없다.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를 이용하고 석유로 가동되는 공장의 제품을 이용하고,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을 끼고 산다. 이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9세기 중엽이고, 양산되어 생활화된 것은 20세기다. 불과 1~2세기에 인류는 석유 없이 살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석유는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다만 그 용법을 다양하게 알지 못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석유란 단어가 동양과 서양에서 같은 어원으로 출발했다. 서양의 petroleum의 어원은 돌(petra)과 기름(oleum)이란 라틴어의 합성어다. 동양에서는 중국 송()나라 때 기술관료였던 심괄(沈括)이 저서 <몽계필담>(夢溪筆談)에 석유(石油)라는 용어를 썼다. 동양에서 석유란 단어는 서양의 petroleum을 번역하면서 나온 게 아니라, 오래전에 석유의 존재를 인지하면서 사용했던 용어댜.

 

조로아스터교의 성화(이란) /위키피디아
조로아스터교의 성화(이란) /위키피디아

 

고대인들은 자연 상태에서 지표면에 스며 나온 석유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대규모 산유지대인 중동에서는 일찍이 석유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구약성서>에 노아의 방주에 방수용으로 아스팔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구약에는 수지를 함유한 목재로 방주를 하나 만들어라. 그리고 그 방주의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라.”라고 쓰여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선 건축물 방수용으로 역청(bitumen)이 사용되었다. 역청은 천연산 석유의 화합물이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 BC 484~425)4,000년 전부터 아스팔트가 사용되었으며, 바빌론의 탑과 벽도 아스팔트로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이수스 강의 제방에 다량의 아스팔트가 별견되었다. 헤로도투스는 키시아(페르시아)의 아르데리카(Ardericca)란 도시 근처에 역청이 뿜어 나오는 우물이 있다고 썼다.

기원전 400년경에는 페르시아 군대가 그리스를 공격하면서 화살촉에 석유를 발라 불화살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고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번성한 조로아스터교(拜火敎)는 불을 숭배했는데, 신전의 불(聖火)에 기름을 사용했다.

 

증류기 /위키피디아
증류기 /위키피디아

 

중동지역에서 유전은 9세기에 아르제바이잔의 바쿠에서 개발되었다. 바쿠의 유전은 이슬람 지리학자 알 마수디(Al-Masudi)에 의해 10세기에 전해졌다. 13세기에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이 지역을 지나가면서 수십척의 배에 실을 석유 물량이 생산되고 있다고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 적었다.

당시에도 정제기술이 개발되었는데, 그 기술이 이슬람 과학자 무하마드 이븐 자카리야 라지(Muhammad ibn Zakarīya Rāzi)에 의해 전해진다. 당시 정제 기술은 증류기에서 등유를 추출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생산된 등유는 등불로 활용되었다.

아랍과 페르시아에서는 석유를 군사용으로 활용해 방화용 무기를 개발했다. 12세기에 이슬람이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석유정제법이 유럽에 전해졌다. 13세기엔 루마니아에도 비슷한 기술이 전수되었다.

 

등잔 /위키피디아
등잔 /위키피디아

 

동양에서도 석유는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중국 고대문서인 <역경>(易經)에 자연 상태의 기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는 BC 4세기에 처음으로 석유를 추출해 연료로 사용했다.

반고(班固, 32~92)<한서>(漢書)에도 석유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후한서>(後漢書)에는 주천(酒泉)이란 곳에 비즙(肥汁)이 나는데, 이것은 아주 밝게 타며 먹을 수는 없다고 쓰여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석유를 여러 가지로 지칭되었다. 비즙, 수비(水肥), 석지(石脂), 화유(火油), 맹화유(猛火油), 웅황유(雄黃油), 석뇌유(石腦油) 등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최초의 석유 채굴은 서기 347년경으로 기록된다. 유정(油井)240m까지 파내려가 석유를 뽑아 올렸는데, 당시 굴착기로는 대나무를 연결해 끄트머리에 드릴을 부착한 것이 활용되었다. 이렇게 캔 기름은 소금을 건조하는데 사용되었다.

5~6세기 남북조 시대의 기록을 보면 서역(신장)의 구자국(龜玆國)에서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나와 개울을 이루어 몇 리를 흐르다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고 되어 있다. 이 액체는 노인들의 이를 다시 나게 해주며 모든 병을 치료한다고 적혀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 유전에서 나오는 가스를 조명용과 연료로 사용했음을 암시하는 기록도 있다. 7세기에 일본에서 석유는 불타는 물로 알려져 있었다.

 

중국 송조의 학자 심괄(沈括) /위키피디아
중국 송조의 학자 심괄(沈括) /위키피디아

 

동양권에서 석유(石油)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송나라 학자 심괄에 의해서였다. 심괄(沈括, 1031~1095)1088년에 쓴 <몽계필담>에서 석유의 다양한 용도에 대해 기술했다. 그는 석유는 얼핏 보면 옻나무의 진과 다름없어 보이며, 태우면 짙은 연기를 내고 센 불길을 낸다. 그 연기로 먹을 만들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든 먹으로 쓴 글은 옻칠을 한 것처럼 검고 윤기가 돈다. 그 글씨의 아름다움은 소나무 검정으로 만든 먹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적었다.

 

카리브해 트라니바드 섬의 역청호수 /위키피디아
카리브해 트라니바드 섬의 역청호수 /위키피디아

 

근대에도 석유에 대한 관심은 있었다.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는 1595년에 영국의 월터 로리(Walter Raleigh) 경이 카리브해 드리니다드(Trinidad) 섬에 역청 호수(Pitch Lake)를 언급했다. 1753년 핀란드 출신 과학자팀은 북미지역을 답사하면서 영국령 펜실베이니아에 석유 우물이 있다고 언급했다.

1745년 러시아에선 우카타 지방에 석유 추출과 정제 시설이 만들어졌지만 램프를 켜기 위한 등유 생산이 주목적이었다. 같은해 프랑스 알사스 지방에서도 오일샌드가 채취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석유 생산과 이용은 한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고, 고도의 정제기술이 개발되고, 내연기관에 의한 자동차가 발명되어야 했다.

 

석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쯤이었다. 따라서 석유는 현대문명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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