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농부의 아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
딸기 농부의 아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9.1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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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파벌-무기반의 정치인, 관방장관 장기 역임…아베 노선 이어갈듯

 

이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오른팔로 알려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의 차기 총리로 선출되었다

스가 요시히데 /위키피디아
스가 요시히데 /위키피디아

 

일본 자민당이 914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치른 총재선거에서 소속 국회의원 394명과 자민당 도도부현(都道府縣) 대표 141명 등 모두 535명의 투표권자가 참여해 스가 후보가 유효투표 534표 중 377표를 얻어 예상한 대로 압승했다. 이번 선거에 도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은 89표와 68표를 각각 얻었다.

공식적인 총리 지명 선거는 916일 임시국회에서 실시되는데, 요식 절차일 뿐 스가가 차기총리를 맡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로써 일본은 2기 아베 정권이 출범한지 78개월여만에 제99대 신임 총리를 맞게 됐다.

 

스가는 1948년 일본 북동부 아키타(秋田)현에 있는 딸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2차 대전 말기에 남만주철도 직원으로 만주국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맞았다. 부친은 귀국후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었고, 딸기 재배로 성공했다.

스가는 고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올라가 박스 공장에 취직했고 이후에는 쓰키지(築地) 시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늦게 호세이(法政)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벌었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 후 겐덴(建電)설비에 취업했다가 곧바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호세이대 출신 선배 국회의원실의 소개를 받아 19754월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郞) 중의원 의원의 비서가 되었다. 그후 11년간 오코노기의 비서로 일하다가 19874월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시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정치기반, 간판, 자금 등의 조건 없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총재 선거에 출마한 경쟁자들이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정치인인데 비해 자신은 배경이 없는 정치인임을 강조했다.

그가 중앙정치에 진출한 것은 47세 때였다. 스가는 시의원을 거쳐 199610월 중의원 총선거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가나가와 2구에서 처음 당선되었고, 그후 연속 8선을 기록했다.

 

스가 요시하데 관방장관. /위키피디아
스가 요시하데 관방장관. /위키피디아

 

20069월 제1차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에 임명되면서 처음 입각했다. 201212월 제2차 아베 내각이 발족하면서 78개월간 관방장관을 맡았다.

관방장관은 중앙정부의 각 성청(省廳)의 고위 관료의 인사를 담당하고 부처간 이기주의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데, 대통령제에서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관방장관은 매일 기자회견에 등장해 언론에 노출도가 많아 일본에[서는 총리 등용문으로 통한다. 관방장관 출신으로 충리가 된 사람은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였던 사토 에이사쿠를 비롯해 오히라 마사요시, 스즈키 젠코,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총리 등이 있고, 아베 총리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밑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바 있다.

스가기 이 조직을 틀어쥐고 총리와 내각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스가는 당내에 측근 30명 정도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번 총재 선거에서 5개 파벌의 지지를 얻어 차기 총리를 거머 쥐었다.

그는 오랫동안 아베 신조 총리와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그의 정권도 아베 총리의 정책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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