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시스터스②…적자 BP와 서자 로열더치셸
세븐 시스터스②…적자 BP와 서자 로열더치셸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9.16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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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 로열더치셸엔 외국기업 취급, BP에는 급유 독점권 부여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터졌을 때 영국은 세계 해양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 석유가 조명용으로 상용화하고 연료로 사용되면서 영국은 자국과 식민지에 원유탐사를 시도했다. 영국은 인도,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에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스코틀랜드에 셰일 오일이 약간 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전을 발견하지 못했다. 19세가말에 석유가 발견된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러시아 바쿠, 루마니아, 폴란드 정도였다. 당대 최대유전은 펜실베이니아와 바쿠였는데, 미국 유전은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러시아 유전은 스웨덴 기업인 노벨 형제들이 각각 장악하고 있었다. 스탠더드 오일과 노벨 형제는 유럽의 석유유통 시장을 반분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영국에서 석유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이 유대인 마커스 새뮤얼Marcus Samuel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나전칠기를 수입하는 상인이었다. 그는 1890~91년에 아버지와 코카서스를 여행하면서 석유 시장의 잠재력에 눈을 떠 유대계 금융회사 로스차일드와 9년 계약의 신디케이트를 형성해 바쿠에서 생산된 등유를 수입하는 회사(Marcus Samuel & Company)를 차렸다. 이어 18927월 흑해 연안 바툼에서 영국까지 선박을 통해 등유를 처음 실어 날랐다.

그는 유조선에 초점을 맞췄다. 동아시아에 대형 석유저장탱크를 만들어 유조선으로 수에즈운하를 통해 실어 나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자금조달에 나섰다. 영국의 비유대 정치인들이 음모를 벌이고 언론들이 비아냥거렸지만, 그는 로스차일드의 지원으로 유조선 뮤렉스(Murex)에 이어 콘치호를 취항시켜 원유를 방콕과 싱가포르로 운송했다.

새뮤얼의 회사가 유조선 선대를 확대하며 유럽과 아시아 석유유통시장을 확대하자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이 욕심을 내 매수 제의를 해왔다. 새뮤얼은 거부했다. 그는 1987년에 셸 운송무역회사(Shell Transport and Trading Company)을 설립해 주식 과반수의 지배권을 차지했다. 그는 아버지가 조개 수입을 한 것을 기념해 회사 이름에 조개(Shell)를 사용했다고 한다.

 

 

유럽에선 셸 이외에 또다른 경쟁자가 나타났는데, 네덜란드 자본이 1890년에 설립한 로열 더치 석유(Royal Dutch Petroleum Company)였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왕실의 허가증을 받은 것을 과장해서 마치 네덜란드 국영기업인 듯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이 회사의 창립자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수마트라(인도네시아)에서 원유 채굴에 성공한 휴고 라우든(Hugo Loudon)과 경리사원 출신 헨리 다터어딩(Henri Deterding)이었다.

세계 석유시장을 영국의 셸과 네덜란드의 로열더치,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이 팽팽하게 경쟁했다. 세 회사는 때론 둘이 곃합해 나머지를 견제했고, 때론 파트너를 바꾸어 싸웠다. 1901년 미국 텍사스에서 유전이 발견될 때까지 세계석유시장은 러시아 바쿠 유전이 절반 이상 공급했기 때문에 스탠더드 오일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어려웠다. 1)

 

마커스 새무얼(왼쪽), 헨리 디터어딩 /위키피디아
마커스 새무얼(왼쪽), 헨리 디터어딩 /위키피디아

 

20세기초 미국의 걸프오일이 스탠더드 오일의 횡포를 막아내며 텍사스에서 유전을 확보하자 셸의 새뮤얼은 걸프오일에게서 기름을 확보했다. 셸이 경쟁사와 손을 잡자 스탠더드 오일의 경영자 아치볼드(John D. Archbold)는 새뮤얼을 불러 회사를 400만 달러를 주고 회사를 인수하고 합작사 CEO에 앉히겠다고 약속하면서 유혹했지만 새뮤얼은 거절했다.

하지만 걸프오일이 확보한 텍사스 스핀들톱 유전이 금새 고갈되자 셸은 곤경에 빠졌다. 게다가 새뮤얼이 1902년 유대인으로는 세 번째로 런던시장에 당선된 후 경영을 등한시했다.

이후 셸은 급격하게 붕괴되었다. 이 틈에 스탠더드 오일은 도이체방크와 손잡고 독일에서 셸을 추방해 버렸다. 로열더치의 디터어딩은 석유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며 회사를 확장해 나갔다. 마침내 로열더치는 셸에 합병을 제의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새뮤얼은 디터어딩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합병 조건은 6040으로 로열더치 측이 경영권을 가지고, 디터어딩이 CEO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19064월 로열더치셸이 탄생하게 된다. 2)

 

BP의 로고 /위키피디아
BP의 로고 /위키피디아

 

로열더치셸의 탄생에 대영제국은 자존심을 상했다. 1911년 해군장관이 된 윈스턴 처칠은 해군 함대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할 것을 추진했다. 로열더치셸은 영국회사임을 강조하며 해군에 연료를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처칠은 시큰둥했다. 처칠은 대신에 페르시아(이란)에서 석유탐사에 성공한 앵글로 페르시아 오일(Anglo-Persian Oil Company)에 주목했다. 이 회사가 앵글로 이란 오일을 거쳐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 Company plc)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오늘날의 BP.

이 회사의 시초는 석유채굴사업자 윌리엄 다아시(William Knox D'Arcy)였다. 그는 페르시아 국왕으로부터 석유채굴권을 따내 1902년부터 시추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채굴에 실패해 재산을 날리고 버마 석유회사(Burmah Oil Company Ltd)에 채굴권을 넘겨주고 자금 지원을 받았다. 버마 석유회사를 소개해 준 것도 영국 해군이었다. 다이시는 마침내 19085월에 대형 유전을 발견했다. 페르시아 유전 개발 이후 버마 석유는 자회사로 앵글로 페르시아 오일을 설립했다. 3)

 

BP 주유소 /위키피디아
BP 주유소 /위키피디아

 

대영제국 해군은 로열더치셸을 따돌렸다. 영국의 순수혈통(자본)40%에 불과한 혼혈 기업에게서 충성심을 기대할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영국은 버마(미얀마)에서 유전이 발견되었을 때 영국 해군은 공급권을 로열더치셸에게 주지 않고 스코틀랜드인들이 설립한 버마 석유에 주었다. 버마 석유는 이후 급성장했고, 페르시아에서 탐사작업을 하던 다아시에게 투자해 성공했다. 로열더치셸의 새뮤얼은 차별이라고 강하게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페르시아에서 원유를 발견한 이후 앵글로 페르시아의 회장 스트라스코나 경(Lord Strathcona)은 부족한 경비를 정부가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스트라스코나는 회사에 영국 정부의 투자를 받으면 자본금도 확충하고, 막강한 해군 함정에 석유를 공급해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란 아바단까지 130마일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이라크 석유를 개발하려면 재원이 부족했다. 앵글로 페르시아측은 로열더치셸을 외국회사라고 지칭하며 셸에게 판매는 물론 생산까지 허용한다면 도덕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외교적 국수주의를 이용한 것이다.

해군장관 처칠은 전시에 로열더치셸을 믿을수 없다고 판단했다. 독일과의 대결 수위가 높아지면서 영국은 1913년 안정적인 석유수급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앵글로 페르시아 오일에 지분참여를 결정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3개월전인 19145월에 영국 정부는 2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앵글로 페르시아 오일의 지분 50.0025%를 취득했다. 아울러 영국해군은 이 회사에 30년간 연료 공급독점권을 부여했다. 이사 전원을 영국인으로 하되, 정부가 거부권을 갖는 이사 2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로써 이 회사는 영국 국영회사가 되었다. 영국 해군은 빠르게 전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교체하고 1차 대전에 참가하게 된다. 4)

 

BP의 원조 앵글로 페르시아 석유는 로열더치셀처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았다.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영국 정부가 석유를 사줬고, 그들이 가는 곳에 영국해군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BP의 석유는 다른 회사보다 쌌다. 페르시아에 이어 이라크에서 터진 원유는 다량이고 양질이어서 경쟁사에 비해 원가가 낮았다.

게다가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은 연방정부와 의회가 반트러스트법을 적용하는 바람에 산산조각이 난 반면에 PB는 영국 정부에 의해 육성되었다. 영국의 BP는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국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1차 대전 이후 영국 식민지에서는 BP를 제국주의 앞잡이로 간주되어 심한 반발을 사야 했다.

 


1) Wikipedia, Royal Dutch Shell

2)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앤써니 심슨, 책갈피(2000), P 74~80

3) 아틀라스뉴스, 석유의 역사⑥…중동에서 대형 유전이 터지다

4) Wikipedia,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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