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에게 감명을 준 긴즈버그의 생애와 생각
미국인들에게 감명을 준 긴즈버그의 생애와 생각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9.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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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소수의견…“판사는 그날의 날씨를 읽지 말고 그 시대의 기후를 읽어야”

 

미국인들은 18일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연방대법관를 추모하고 있다. 향년 87.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유세 도중에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법의 거인'을 잃은 데 대해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면서 "그는 대법원에서 보여준 훌륭한 정신과 강력한 반대로 명성을 얻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연방 대법관으로 지명되어 상원의 인준을 받아 1993810일에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두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이다.

긴즈버그는 단호하게 소수의견을 제시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으며, 미 연방 대법관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법조인 경력의 상당한 부분을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증진에 힘썼고, 변호인으로서 연방 대법원 판결을 승소로 이끌어냈다. 1970년대 그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자원봉사변호인, 이사, 법문자문위원 등으로 일했고, 그의 진보적인 소수의견(dissents)으로 주목을 받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위키피디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위키피디아

 

남녀평등과 성소수자 이슈등 수많은 인권 판결을 낸 그의 젊은 시절 스토리는 <On the Basis of Sex/세상을 바꾼 변호인>로 영화화되었고, 실제 본인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RBG>도 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는 긴즈버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남녀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에 태어난 긴즈버그는 1950년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으로서 수석졸업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법대 교수가 된다. 그리고 1970년대, 우연히 남성 보육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긴즈버그는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는, 50년 전쟁의 포문을 열 열쇠임을 직감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패배가 확정된 재판이라 말렸지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지지에 힘입어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세기의 재판에 나서는데세상을 바꿀 위대한 용기, 모두의 평등을 위한 결정적 반전이 시작된다!”

긴즈버그는 이렇게 외친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혀야 할 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라."

"판사는 그날의 날씨를 읽지 말고 그 시대의 기후를 읽어야 한다."

 

20년을 네번의 췌장암과 대장암과 싸우다가 간 그는 한번도 글복하지 않았다.

암을 겪는 것만큼 생존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마치 특별한 향신료를 내 일과 일상에 듬뿍 치는 것과 같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고양된 인식이 따라온다."

하버드대학 시절부터 차별과 싸워 온 그는 타인의 차별에 대한 공감능력이 높았다.

"차별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이 겪는 차별에 공감하기 쉽다. 개인적 능력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는 관계없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뉴욕의 로펌 중 나를 고용하려고 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나는 세 가지 이유로 탈락이었다. 유대인이고 여자인 데다 엄마였다."

그래서 그는 차별에는 단호했다.1973년에는 그 유명한 변론을 남겼다.

"1837년에 유명한 노예 폐지론자이자 양성평등주의자인 세라 그림케는 우아한 목소리가 아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목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치우라는 것이다.”

그 후 그는 남녀평등을 본질적인 인간의 평등 문제로 접근했다.

“‘여성의 권리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인간의 권리다.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모든 인간의 권리다.”

"남성을 더 우월한 성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여성 또한 더 우월한 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장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욕설로 통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페미니즘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자신이 원하고 또 그럴 능력도 있는 존재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할 동등한 기회가 젊은 남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에 핵심적인 요소는 여성의 선택권과 의사 결정권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성의 삶과 존엄성을 좌우한다. 정부가 여성의 선택을 대신하는 건 여성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완전한 성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성의 뜻과 성취와 참여는 제한될 수 없고여성도 능력에 근거해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상식에 기반한 질문에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질문으로 답을 했다.

아홉명 정원의 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제 대답은 언제나 아홉명 전원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놀란다.그러나 사람들은 대법관 전원이 남성일 때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 긴스버그에게 가장 영향을 준 것은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어머니의 작은 가르침 하나가 거인의 세계관이 되었다.

"숙녀가 되어라.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라.숙녀가 되라는 건 자칫 쓸데없이 분노 같은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는 것이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라는 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서 영원히 행복해져도 좋지만 자립 능력을 키우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변호사로서 법학자로서 판사로서 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가치관이 충돌할 때 설득하는 법을 고민했다.

"효율적인 판사는 권위적으로 말하는 대신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경솔하거나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는 못 들은 척하는 게 최선이다. 화를 내거나 불쾌한 티를 내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에 대한 보호도 잃게 될 것이다."

"내가 영감을 주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분노처럼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감정에 굴복하지 말라"

"상대편 체스 말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

"변론 기술만 좋은 변호사는 기술자와 다름없다"

"나는 사람들을 세뇌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나 자신을 중립적인 사람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도록그가 자주 쓰는 말인데 법의 지향과 존재의 이유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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