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전쟁②…히틀러에 협력한 석유상인들
석유전쟁②…히틀러에 협력한 석유상인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9.21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엑슨, 독일기업과 제휴했다가 적발당해…텍사코는 독일에 기름 공급

 

독일은 1차 대전에서 석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독일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석유자원을 해결하기 위해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석탄액화법에 주력했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Friedrich Bergius)1913년에 석탄액화법(liquid hydrocarbons)을 개발해 1931년 카를 보쉬(Carl Bosch)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베르기우스를 가장 반긴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루르, 자르 지방의 풍부한 석탄을 활용해 석유를 대체하자는 것이었다. 1)

히틀러는 석탄에서 뽑아낸 합성연료(Synthetic fuel) 생산설비를 대대적으로 증설해 1939년엔 하루 7만 배럴의 생산 능력을 갖췄고, 2차 대전 막바지인 1944년에 하루 생산량을 124,000 배럴로 늘렸다. 독일군이 사용하는 연료에서 합성연료의 비율이 193946%에서 19457%로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독일은 석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석유메이저들은 이 틈을 활용해 독일과 일본 등 적국에 기름을 공급하고 기술을 제공하다가 적발되었다. 석유메이저들은 미국과 영국에 적을 두고 이중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월터 티글 /위키피디아
월터 티글 /위키피디아

 

독일의 화학공업은 당시 세계최고였다. 미국도 독일의 기술을 배우려 했다. 미국 최대석유회사인 엑슨의 CEO 월터 티글(Walter C. Teagle)1925년에 독일의 기술력에 감명을 받아 독일 최대 종합화학회사인 IG 파르벤(IG Farben)과 특허와 연구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히틀러가 집권하기 이전이었다.

당시 파르벤은 중도보수당인 독일인민당(German People's Party)과 유대가 깊었고, 티글이 이 회사와 제휴를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파르벤은 바스프(BASF), 바이엘(Bayer), 회히스트Höchst, 아그파(Agfa) 등 당대 내로라는 6개 화학회사를 합병한 유럽 최대의 기업이었다. 이 회사은 베르기우스, 보쉬, 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등 노벨 화학상 수상자만 3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파르벤은 나치에 접수되었다. 엑슨은 나치 치하에서도 파르벤과의 계약을 이행했다. 독일에 석유를 공급하고 가솔린의 성능을 높이는 테트라에틸렌 납(tetraethyl lead)을 제공하고 합성고무 제조 면허를 매각했다. 대신에 엑슨은 파르벤에서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두 회사 사이에 파르벤은 석유사업에 손을 대지 않고, 엑슨은 화학분야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약정이 맺어져 있었다.

독일이 유럽을 침략한 이후에도 엑슨은 파르벤과 기술 정보 교환을 이어갔다. 아마도 티글의 입장에서는 전쟁은 단기에 끝나고, 장사는 영원한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티글은 일본에도 대규모의 항공기용 연료 성분을 다량으로 팔았다.

1941년말에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일본이 쳔연고무 산지인 동남아를 점령하면서 고무 공급이 부족해 졌다. 미국 정부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엑슨에 합성고무 생산을 독려했는데, 엑산은 파르벤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군수용 합성고무 생산을 거부했다.

 

1942년 7월 아우슈비츠의 파르벤 공장을 찾은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 /위키피디이
1942년 7월 아우슈비츠의 파르벤 공장을 찾은 나치 2인자 하인리히 힘러 /위키피디이

 

미국 법무부가 엑슨에 들이닥쳤다. 법무부 요원들이 엑슨의 서류를 뒤지던 중에 독일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티글은 두 아들이 미 공군에 입대해 미국을 위해 공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독일회사와 협정을 이행하고, 자회사를 통해 기름을 파는 이중적 행태가 드러났다. 미국 언론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티글의 반역행위를 규탄했다.

당시 티글은 친구인 빌 패리시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회장이 되었으나, 계약은 자신이 체결했으므로 책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티글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대통령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 검찰과 엑슨은 타협점을 찾았다. 티글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엑슨이 5만 달러의 벌금을 무는 선에서 합의되었다. 2)

 

헨리 디터딩 /위키피디아
헨리 디터딩 /위키피디아

 

헨리 디터딩(Henri Deterding)석유업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릴만큼 1900~1936년 사이 36년간 로열더치셸을 경영하며 독재적 오일왕국을 형성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태생인 그는 엑슨의 티글과 함께 당대 석유업계의 양대 거물로 거명되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태생인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러시아 혁명을 반대해 서유럽으로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White Russian)을 재정적으로 도왔다.

그의 반공주의는 도를 지나쳐 친나치로 흘렀다. 그가 두 번째로 결혼한 여성은 소련을 탈출한 백계 러시아인 리디아(Lydia), 석유업계의 경쟁자 칼루스트 굴벤키안(Calouste Gulbenkian)의 한때 여인이었다. 리디아와의 결혼은 디터딩으로 하여금 더욱더 나치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했다. 그는 1936년에 리디아와 이혼하고 비서였던 독일여성 샤로테 크나아크(Charlotte Knack)와 세 번째 결혼을 했는데, 이 여성은 나치 당원이었다.

셸의 임원들은 보스의 사생활이 회사에 주는 영향을 우려해 디터딩에게 은퇴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나이 70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 메클렌부르크로 건너갔다. 히틀러는 그의 독일 이주를 환영했다. 그는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2월에 사망했는데, 히틀러와 괴링은 그의 장례식에 화환을 보냈다. 3)

 

텍사코는 1930년대 미국에서 4위의 석유기업이었다. 사장 토킬드 리버(Torkild Rieber)는 노르웨이 태생으로,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에 원유를 공급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스페인 내전에 미국의 중립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격분했고, 법무장관은 텍사코를 반역좌로 고발하겠다고 경고를 보냈다.

토킬드 리버 /위키피디아
토킬드 리버 /위키피디아

 

하지만 텍사코는 이탈리아를 경유해 스페인의 파시스트 정권에 기름을 계속 공급했다. 대금 납부 조건은 내란이 종식된 후 지불하는 외상팬매였다. 리버 사장은 프랑코를 통해 독일 나치와 접촉해 콜롬비아산 석유를 독일로 공급하기로 했다.

19391차 대전이 터진 후에도 그는 유조선을 중립국 항구에 세워두고 영국의 감시를 피해 독일에 석유를 공급했다. 대금은 유조선으로 받는 바터 무역이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나치 간부 헤르만 괴링과 회담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나치의 믿음을 얻었다. 히틀러는 변호사 게르하라트 베스트릭(Gerhardt Westrick)을 미국에 보내 자신의 편에 서라고 요청했다. 리버는 베스트릭의 미국 체재 및 접대 비용을 대며 지원했다.

한편 나치가 텍사코의 직원 니코 벤드맨을 스파이로 삼아 미국내 군수산업 동향을 파악하다가 영국 첩보부에 발각되는 일이 생겼다. 영국은 독일 스파이들이 미국을 휘젖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는 베스트릭이 독일의 스파이였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미국 언론에 폭로했다.

베스트릭은 미국에서 추방되고, 텍사코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 바람에 리버는 19408월 텍사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전이어서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고 있던 시기였다. 4)

 

전쟁은 기업에게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과 영국은 그동안 독일에 협력했던 자국 석유기업들을 적발하고 석유기업들에게 독일과 동맹국과의 거래를 차단하도록 요구했다. 기름이 부족해진 독일은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연료와 동맹국인 루마니아에서 뽑아 올린 석유를 통해 군대를 움직였다.

 

1843년 8월 1일, 미군 B-24가 루마니아 유전을 폭격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843년 8월 1일, 미군 B-24가 루마니아 유전을 폭격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194112월 미국이 참전하면서 연합군은 제공권을 확보했고, 그 첫 타깃은 독일의 연료공급망이었다. 미국-영국 연합 폭격기는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Ploiești) 유전을 초토화시켰고, 독일 전역의 합섬섬유 공장을 집중 포격했다. 연료가 떨어진 독일은 소련의 바쿠 유전을 뺏기 위해 남하하다가 스탈란그라드에서 발이 묶여 패전하게 된다.

1944512일 미국 폭격기 935대가 독일 전역의 합성석유공장을 집중포격하면서 초토화시켰다. 당시 독일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르(Albert Speer)는 일기에 이날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썼다.

이후 독일공군기는 항공유가 떨어져 전투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독일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고 만다.

 


1) Wikipedia, Friedrich Bergius

2) Wikipedia, Walter C. Teagle

3)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앤써니 심슨, 책갈피(2000), P119~120

4) Wikipedia, Torkild Riebe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