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은 중동의 이웃나라보다 늦은 1938년에 터졌다. 페르시아(이란)에선 1908년, 이라크에선 1927년에 원유가 발견된 것에 비해 사우디의 석유 개발은 뒤쳐져 있었다. 그 배경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가형성이 늦었다는 점을 들수 있다. 알 사우드 가문의 수장 압둘 아지즈(Abdul-Aziz)가 아라비아 반도 동부에 네지드(Nejd) 왕국을 수립한 것은 1906년이고, 서부의 숙적 헤자즈(Hejaz) 왕국을 정복해 합병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수립한 것은 1932년이었다. 주1)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1922년부터 석유탐사작업을 벌이던 개척자가 있었는데 뉴질랜드인 프랭크 홈즈(Frank Holmes)였다. 그는 탐사유효기간 내에 원유 발견에 실패해 바레인으로 건너갔다. 홈즈는 바레인에서 원유시추작업을 벌이다가 돈이 모자라 미국 엑슨에 손을 내밀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다른 미국회사를 찾았는데, 미국의 스탠더드계 소칼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소칼은 1931년에 바레인에서 석유 발굴에 성공했다.
건국초기에 사우디의 아지즈 국왕은 돈이 매우 필요했다.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영국인 세인트 존 필비(St John Philby)라는 고문으로 두고 있었다. 필비는 국왕에게 지하에 있는 광물자원을 개발해 돈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국왕은 필비에게 사람들을 주선해 달라고 했다. 필비가 소개한 사람은 미국인 사업가 찰스 리처드 크레인(Charles Richard Crane)이었고, 크레인은 미국 석유회사들을 타진했다. 주2)
사우디 석유개발에 의향을 보인 회사는 미국의 걸프오일이었다. 하지만 걸프는 레드라인 협정(Red Line Agreement)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사우디에서 독자적인 원유 개발을 할수 없었다.
레드라인 협정은 영국의 앵글로-페르시아 석유(BP의 전신)가 이라크에서 석유개발에 성공한 후 영국, 미국, 프랑스 석유회사와 맺은 협정이다. 이 협정은 쿠웨이트를 제외한 중동지역에 석유메이저들의 독점권을 인정하며, 개별회사가 독자적인 원유채굴에 나서지 못하도록 옭아맨 카르텔 계약이다. 석유메이저들은 이라크에서 독점권을 얻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족쇄가 되었다. 미국의 엑슨과 모빌, 걸프오일은 레드라인 협정 회원사였다.
이때 소칼이 필비를 찾아왔다. 소칼(SoCal)은 스탠더드오일오브캘리포니아(Standard Oil of California)의 약자로, 엑슨, 모빌과 함께 미국 거대기업 스탠더드 오일에서 분리된 회사다. 소칼은 미국 내에서도 엑슨과 모빌에 쳐져 있었으나, 그 이유로 레드라인 협정에 가입되지 못했다.
아지즈 국왕은 서양 석유메이저들이 일방적으로 그은 레드라인을 따르지 않았고, 소칼도 그 협정에 얽매이지 않았다.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국왕은 1932년, 소칼에게 사우디 석유 이권을 넘겼다. 소칼은 석유가 나면 국왕에게 충분한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소칼은 사우디 원유를 채굴하기 위해 CASOC(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mpany)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아람코(Aramco)의 시초다. 소칼은 레드라인 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회사 가운데 또다른 투자자를 찾았다. 그 회사가 텍사코였다. 소칼은 1936년에 에 CASOC의 지분 50%를 텍사코에 념겨줬다.
1938년 3월 3일 소칼과 텍사코가 시추한 담만(Dammam) 7광구에서 시커먼 기름이 분출되었다. 초대형 유전이었다. 소칼과 텍사코는 영국 BP가 주도하는 레드라인 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덕분에 사우디에서 이권을 확보한 것이다. 영국은 이란과 이라크의 석유를 차지했지만, 미국 석유회사들은 사우디에서 중동석유 이권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사막의 나라 사우디에 재외공관을 두지 않고 있었다. 소칼과 텍사코가 미국 국무부를 대신해 사우디 왕가와 직접 거래했다.
1939년 5월에 본격적인 석유생산에 앞서 화려한 세리머니가 열렸다. 국왕이 석유공장을 찾아와 파이프라인의 밸브를 돌리자 석유가 세차게 흘러나왔다. 기쁨에 넘친 아지즈 국왕은 단번에 채광권 범위를 44만1,000평방마일(114만㎢)로 늘렸는데, 그 면적은 텍사스,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 뉴멕시코를 합친 것과 맞먹었다. 주3)
국왕은 새로 발견한 부로 왕국을 강화하려 했다. 왕국내 부족들 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유목민들을 정착시키는데 오일머니를 활용했다. 돈이 많이 들어갔다. 국왕은 석유사업자들에게 수시로 돈을 요구했다.
사우디에서 대형 유전이 터지자, 세계는 이 사막국가를 주목하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이 사우디 곳곳을 조사한 결과, 원유 매장량이 당초 추정량보다 훨씬 많고 미국보다 많은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소칼과 텍사코의 규모가 세븐시스터스의 다른 5개사보다 앞질러 갔다. 1944년 1월 소칼과 텍사코는 사우디 합작회사의 이름을 CASOC에서 아람코(Aramco: Arabian American Oil Co.)로 변경했다.
사우디 왕정은 불안했다. 국왕은 이미 60대를 넘어섰고, 왕자들도 많았다. 절대군주국에서는 누가 차기 국왕이 되는지에 따라 석유이권이 달라질수도 있다. 중동지역에는 공산당 조직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이 사우디 석유이권을 노릴 수도 있었다.
소칼과 텍사코는 미국 시장을 주도하는 두 자매를 끌어들이기로 했다. 엑슨과 모빌이 들어오면 미국 국무부가 사우디 정부에 개입하게 되고, 미국의 석유이권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는 게 이들의 계산이었다. 엑슨과 모빌은 소칼과 텍사코가 값싸고 양질의 사우디 기름으로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을까, 걱정하던 차에 합작 제의를 받아들였다. 1948년 소칼과 텍사코는 엑슨과 모빌의 투자를 받아들여 아람코의 지분구조를 소칼 30%, 텍사코 30%, 엑슨 30%, 모빌 10%로 변경했다. 주4)
2차 대전후 세계적으로 민족주의 바람이 불었다. 1848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모든 석유이익에 대해 절반의 몫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석유기업을 국유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해 11월 이익 반분의 원칙이 법으로 제정되었다.
사우디 국왕도 이 소식을 듣고 아람코에 이익을 반반씩 나누자고 요구했다. 압둘-아지즈 국왕은 베네수엘라에서도 그렇게 하는데 사우디에서는 왜 안 되느냐며 석유산업 국유화 가능성을 꺼내 들었다. 때마침 이스라엘-아랍 전쟁이 터졌다. 사우디는 아랍의 입장을 대변했고, 미국과 영국에 이스라일 지지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국무부가 끼어들었다. 국무부는 중동에 소련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석유회사들에게 사우디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했다. 대신에 국무부는 국내 소득세를 면제해주겠다고 했다. 석유회사의 입장에서는 미국에 낼 세금을 사우디에 내는 것이니, 크게 손해를 볼 게 없었다. 결국 미국인들의 세금을 사우디에 바치는 꼴이 되었다. 이 원칙을 수용하면 미국의 세수는 5,000만 달러가 줄어들었다. 국무부의 종용에 의해 사우디 정부와 아람코는 이익을 50대50으로 나누는 원칙에 합의했다. 주5)
1950년 사우디에서 체결된 이익반분의 협정은 원유 보유국과 석유메이저 사이에 힘의 관계가 서서히 역전되고 있음을 드러낸 케이스였다.
주1) Wikipedia, Unification of Saudi Arabia
주2) Wikipedia, St John Philby
주3)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앤써니 심슨, 책갈피(2000), P132
주4) Wikipedia, Saudi Aramco
주5) Wikipedia, History of the oil industry in Saudi Arab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