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광물의 보고 부건빌 섬, 독립 기로에
남태평양 광물의 보고 부건빌 섬, 독립 기로에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9.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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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토로아마, 새 수장에 선출…구리광산 재개 여부에 촉각

 

남태평양에 부건빌(Bougainville)이라는 섬이 있다. 솔로몬 군도의 주요 섬의 하나로, 파푸아뉴기니의 영토에 속해 있다. 면적은 9,318으로 경기도 정도이고, 인구는 23만명쯤 된다.

이 섬은 뉴기니의 자치주인데, 지난해 11월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주민 98%의 지지를 받아 독립을 결정했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에서 독립운동의 지도자이자 코코아 농부인 이쉬마엘 토로아마(Ishmael Toroama)가 당선되었다고 뉴욕타임스지가 보도했다. 1)

부건빌이 독립한다면 세계공동체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는 아직도 부건빌의 독립 허용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부건빌의 신임대통령 이쉬마엘 토로아마 /페이스북 사
부건빌의 신임대통령 이쉬마엘 토로아마 /페이스북 사

 

부건빌의 비극은 그 섬에 세계적인 구리 광산이 확인되고부터 시작되었다.

이 섬은 1768년 프랑스 항해가 루이 부갱빌(Louis Antoine de Bougainville)에 의해 발견되었고, 그후 미국과 영국의 고래잡이선이 물을 구하기 위해 드나들었다. 1899년 독일이 점령해 뉴기니섬 북동부와 통합해 지배하다가 1차 대전 이후 영국령을 거쳐 1920년부터 호주가 위임통치를 해왔다. 2차 대전 때에 한때 일본군이 점령했다가 미군에 의해 탈환되어 호주가 다시 통치했다. 1975년 호주 의회가 파퓨아뉴기니의 독립을 의결하면서 부건빌은 파퓨아 뉴기니의 영토로 인정되었다.

 

부건빌 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부건빌 섬의 위치 /위키피디아

 

이 섬에 엄청난 양의 구리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64년이다. 부건빌 섬의 팡구나 광산(Panguna mine)에는 구리 10억 톤, 1,200만톤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엄청난 보물이 땅속에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호주의 광산기업 리오틴토(Rio Tinto)가 달려들었다. 광산채굴은 1969년부터 시작되었고, 리오틴토는 파푸아뉴기니측엔 수익금의 20%를 준데 비해 로 부건빌 주민들에겐 0.5~1.25%만 던져 주었다. 이 광산에서 나온 광물은 신생독립국 파푸아뉴기니 GDP40%를 차지했다. 이 섬은 파푸아뉴기니애갠 대단히 중요한 보물단지가 된 것이다. 2)

 

부건빌의 판구나 구리광산 /위키피디아
부건빌의 판구나 구리광산 /위키피디아

 

부건빌의 독립운동은 파푸아뉴기니가 독립하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섬 주민들은 광산 수익금이 부당하게 배분되고, 광산개발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으며 환경피해가 심하다면서 호주 정부에 파푸아뉴기니와 별도의 독립국가를 요구했다. 하지만 호주의 해외영토부 장관 찰스 반스는 부건빌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독립 요구를 무시해버렸다. 부건빌 섬은 파푸아뉴기니 독립에 딸려 부속도서로 전락하게 되었다.

1975년 파푸아뉴기니가 독립한 이후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부건빌 독립운동가들은 같은 해 91일에 북솔로몬 공화국(Republic of the North Solomons)을 선포했지만, 어느나라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독립공화국은 얼마 가지 않아 자치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깃발을 내려놓았다.

 

파푸아뉴기니 지배 하에서 팡구나 광산 주변의 주민들은 쫓겨났고, 광산 인근의 광물은 심각한 오염에 시달렸다.

1988년말 부건빌 사람들은 독립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부건빌 혁명군(Bougainville Revolutionary Army)은 광산을 접수하고 폭발물을 탈취하고 광산노동자들에게 파업과 태업을 주도했다. 그들은 광산으로 들어가는 고압선을 차단했다.

파푸아뉴기니 군과 경찰이 투입되었다. 반란군은 밀림과 산악지대를 오가며 게릴라 전투를 벌였다. 1998년까지 10년간 계속된 반란으로 부건빌 주민의 10%에 해당하는 2만명이 사망했다.

호주 언론들은 부건빌의 혁명운동을 테러로 보도하고 리오틴토의 이익에 영합했다. 혁명 기간동안에 광산도 폐업했지만, 부건빌 섬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다. 외부에서 약품과 식량, 기름등이 공급되지 못했다. 그들은 코코넛에서 기름을 짜 자동차를 운행하고 약초를 개발하는 방법을 통해 생명을 유지했다. 해외언론에서는 그들의 투쟁을 코코넛 혁명’(Coconut Revolution)이라 불렀다. 3)

 

부건빌 섬의 지도 /위키피디아
부건빌 섬의 지도 /위키피디아

 

1997년 뉴질랜드가 중재에 나서 내전을 종식시키고 부건빌은 파푸아뉴기니의 보다 광법위한 자치를 부여받는 지역으로 인정되었다. 자치 정부 소립도 허용되었고, 파푸아뉴기니와 부건빌은 섬의 독립을 묻는 투표를 실시하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에 따라 201911월에 독립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투표에서 98.31%가 독립을 지지했다. 파푸아뉴기니는 이 투표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부건빌 섬은 이제 자치정부의 새 수장을 만났다. 토로아마 대통령이 파푸아뉴기니로부터 독립을 얻을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또다른 관심은 팡구나광산의 재개여부다. 광산은 1989년 주민반란이후 폐쇄되어 있다. 부건빌이 독립할 경우 이 광산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1) NYT, Former Rebel Leader Is Elected President of Bougainville

2) Wikipedia, Panguna mine

3) Wikipedia, History of Bougain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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