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전쟁⑦…가다피의 전술에 석유주도권 역전
석유전쟁⑦…가다피의 전술에 석유주도권 역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09.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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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각개격파에 성공…석유회사에서 산유국으로 헤게머니 이동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리비아는 오스만투르크의 영토로 지중해 해적들의 소굴이었다. 1911년 이탈리아가 오스만 투르크령 3개 지역을 공격해 차례로 집어삼켜 식민지로 떨어졌다. 2차 대전 때엔 사막의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며, 1943년 이탈리아 패전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었다. 연합국은 분할통치를 거쳐 3개 지역을 통합해 리비아로 독립시켰다. 19511224일 키레나이카(Cyrenaica)의 부족장 이드리스(Idris)가 국왕이 되어 독립을 선포하고, 왕정을 실시했다. 1)

리비아에서 석유탐사는 1956년부터 시르테 분지에서 시작되었고, 1959년에 엑슨, 모빌, 걸프오일 등 미국계 석유회사들에 의해 본격적인 양산체제로 들어갔다.

 

리비아 원유는 품질이 좋았다. 유황분을 적게 함유했기 때문에 공해에 시달리는 유럽에서 선호되었다. 게다가 1967년 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수에즈 운하가 폐쇄된 이후 지중해에 면해 있는 리비아 원유는 유럽에 원활하게 수송되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1969년에 리비아산 원유는 서유럽 수요의 4분의1을 차지했다.

리비아는 왕정시절에도 7자매라 불리는 거대 석유회사의 독점을 깨려고 시도했다. 작은 회사들에게도 원유개발과 유통에 참여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독립계 석유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리비아로 덤벼들었다. 독립계 석유회사들은 리비아 원유 생산의 50%를 차지했다. 이드리스 왕정은 적당히 부패했기 때문에 뇌물과 협상이 통하는 구조였다.

 

리비아의 유전과 파이프라인 /위키피디아
리비아의 유전과 파이프라인 /위키피디아

 

196991일에 무아마르 가다피(Muammar Gaddafi) 대령이 이끄는 군부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붕괴시키고 아랍 민족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가다피는 제국주의를 극도로 싫어했다.

가다피 대령은 석유회사들이 원유채굴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정권 장악과 동시에 석유가격 인상을 요구했다. 가다피 정권의 초대총리 술레이만 마구라비(Mahmud Suleiman Maghribi)는 미국에서 유학했고 석유산업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가다피는 리비아에서 석유사업을 하는 21개 사에 원유가를 배럴당 40센트 올리겠다고 통보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일방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의 엑슨을 중심으로 대형회사들은 가다피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리비아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충분한 원유를 구할수 있었다.

가다피 정권은 엑슨을 공격하지 않고 약체인 옥시덴탈 석유(Occidental Petroleum)을 공략했다. 옥시덴탈은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독립계 회사로, 1965년 리비아에서 석유채굴권을 얻었다. 가다피는 옥시덴탈에게 하루 생산량을 68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리비아 원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옥시덴탈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옥시덴탈의 사장 아먼드 해머(Armand Hammer)는 액슨을 찾아가 물량을 달라고 협조를 부탁했으나, 엑슨은 조그만 회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옥시덴탈은 가다피에게 무릎을 꿇었다. 옥시덴탈은 유가를 배럴당 30센트 올리고 5년동안 매년 2센트씩 올리는데 합의했다. 또 수익 분배조로 내는 소득세를 50%에서 55%로 인상하는데도 동의했다.

 

이번에는 오아시스 컨소시엄이 타깃이 되었다. 이 컨소시엄은 로열더치셸과 컨티넬탈, 마라손, 아메레이다 헤스 등 미국 독립계 3사로 구성된 회사로, 사실상 셸이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이 컨소시엄은 가다피의 유가 인상에 응하지 않았다. 가다피는 1970925일 하루 15만 배럴에 해당하는 컨소시엄의 원유 생산을 전면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다급해진 셸의 CEO는 영국의 BP를 이끌고 워싱턴으로 달려와 미국계 5개 자매와 협의를 했다. 미국 국무부가 참여했다. 7자매들은 리비아의 원유생산 중단에 공동대응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빠져나가는 회사가 있었다. 미국 5자매 가운데 소칼과 텍사코는 옥시덴탈과 유사한 조건으로 가디피 정부와 타협하게 된다. 셸과 엑슨, 모빌도 하는수 없이 리비아의 조건을 따르게 된다. 결국 가다피가 7개 거대 석유메이저와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2)

 

무아마르 가다피 /위키피디아
무아마르 가다피 /위키피디아

 

가다피의 승리는 이웃 산유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산유국들은 영미의 석유메이저들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1960년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을 결성했지만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1953년 미국에 의해 이란 모사데크 정권이 축출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7자매들은 중동에서 위세당당하게 담합하며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나라에 대해 공급보이코트를 했다. OPEC 회원국 가운데 아랍국가들은 별도로 OAPEC(아랍석유수출국기구)를 결성했는데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석유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OPEC가 창설 10년 동안에 해내지 못한 일을 리바이의 가다피 정권이 해 낸 것이다.

 

석유회사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1971111일 세계 석유회사 23개사의 대표들이 뉴욕에 모였다. 여기에는 영미의 7자매와 프랑스의 CFP, 일본의 아라비아 석유, 독일 엘베라트, 벨기에의 페트로휘너가 보태졌다. 23개 회사는 리비아에서처럼 산유국에 의해 한 회사가 각개격파가 이뤄질 경우 다른 회사가 공동전선을 취한다는 내용의 협약에 서명했다. 23개 회사는 또 다른 회사의 승인 없이 리비아 정부와 협정을 맺어서는 안 되고 리비아 정부가 한 회사에 생산량을 감축시킬 경우 다른 회사들이 특정비율로 삭감량을 부담해 지원하는 약정에도 서명했다. 석유회사들의 거대한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이 카르텔에 미국 법무부는 독점금지조항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사실상 미국 주도의 국제카르텔인 셈이다.

 

리비아의 해상유전 /위키피디아
리비아의 해상유전 /위키피디아

 

산유국 카르텔인 OPEC과 석유회사 카르텔이 1971112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만났다. 협상은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산유국들도 더 이상 석유메이저에게 밀리지 않았다. 협상은 결렬 위기로 치달았다. 산유국들은 석유회사측이 215일까지 OPEC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석유수출을 금지하겠다고 협박했다. 산유국들은 석유산업 국유화 카드도 꺼내 보였다. 결국 석유회사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데드라인 하루 전날인 1971214OPEC24개 서방 석유회사들이 협정에 조인했다. 원유 공시가격(posted price)을 배럴당 35센트 오른 2달러14센트로 올리되, 매년 2.5%씩 자동으로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또 산유국과 석유회사가 이익을 반씩 나눠 갖는다는 이익반분원칙도 깨져 산유국의 몫을 55%로 올렸다. 이 협정은 테헤란 협정(Tehran agreement)이라 불린다. 국제석유 전문가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은 이 협정에 대해 원유 수급의 주도권이 석유회사에서 산유국으로 넘어간 분기점이라고 평가했다.

 

석유회사들은 리비아와는 별도로 협상을 벌였다. 가다피 정권은 집단 교섭을 피하고 개별회사와 따로따로 협상을 벌였다. 각개격파 방식이다. 가다피는 이라크,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리비아측 협사대표는 잘루드(Abdessalam Jalloud) 소령이었다. 그는 리비아인이 석유 없이도 천년을 살아왔다면서 석유회사들의 보이콧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석유회사들은 석유가 없으면 버틸수 없다는 약점을 이용했다.

리비아측은 개별 석유회사를 불러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 모욕을 주는가 하면,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어떤 경우 교섭단이 제출한 재안을 마룻바닥에 내던지기도 했다. 이런 협박을 통해 리비아는 원유가격을 원유가격을 배럴당 3달러30센트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것저것 합쳐 올린 금액은 배럴당 76센트였다. 리비아는 개별회사들과 협상을 통해 3205년간 유효한 트리폴리 협정(Tripoli Agreement)을 체결한다. 3)

가다피 정권은 이 협상을 통해 첫해에 10억 달러의 예산을 더 만들어 냈다. 이어 가다피는 석유산업 국유화에 돌입한다.

 


1) Wikipedia, History of Libya

2)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앤써니 심슨, 책갈피(2000), P271~281

3) wikipedia, Muammar Gadd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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