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의 舊怨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의 舊怨
  • 박차영 기자
  • 승인 2020.09.2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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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종교 갈등으로 오랜 분쟁상태…아르메니아 괴뢰국 문제 불거져

 

카프카스 산맥 남쪽에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의 분쟁지역인 나고르-카라바흐에서는 일요일인 927일에 군대의 충돌로 23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양측은 보복을 다짐하며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르메니아(Armenia)와 아르제바이잔(Azerbaijan)은 서로 이웃하면서도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사이다. 종교적으로 아르메니아에서는 기독교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아르제바이잔은 이슬람 국가다. 인종적으로도 아르메니아에는 고대 로마시절부터 독자적인 왕국을 이룬 아르메니아 인이 주류인데 비해 아르제바이잔인은 투르크 족이다.

아르메니아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알려져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인 다대오(Thaddaeus)와 바돌로매(Bartholomew)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고대 아르메니아왕국은 로마제국에 앞서 서기 301년에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다.

 

인종적, 종교적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두 나라의 사연은 러시아와 구소련 지배를 받으면서 복잡하게 얽혔다.

두 나라의 영토 분쟁은 아르제바이잔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측에선 아르자흐(Artsakh), 아제르바이잔측은 카라바흐(Karabakh)라고 각각 부른다. 면적은 11,400, 경기도보다 약간 넓고, 산악 고원지대이어서 인구는 15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아르메니아-아르제바이잔 분쟁지역 /위키피디아
아르메니아-아르제바이잔 분쟁지역 /위키피디아

 

역사적으로 이 땅은 아르메니아의 땅이었다. 독자적 왕국을 형성했던 두 나라는 19세기초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분쟁의 불씨는 192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주면서 시작되었다. 소련으로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아르메니아를 약화시키고, 이웃 터키와 잘 지내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카프카즈 북쪽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은 코카서스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아르메니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소련은 이 고원지대를 아르제바이잔 공화국의 자치주로 편성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라고 불렀다.

소련 시절에도 아르메니아 공화국은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지만, 소련의 위세에 눌려 그럭저럭 넘어갔다.

1980년대말 소련이 흔들리고 연방내 민족들이 곳곳에서 독립 운동을 벌이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대표들은 19882월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포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없애고 그 지역을 직할 통치했다.

이때부터 아르메니아와 아르제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을 놓고 6년 전쟁을 벌였다. 전쟁 기간에 카라바흐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아르메니아측은 아르제바이잔이 자행한 행위라고 주장했고, 아르제바이잔은 아르메니아계가 폭동을 일으켜 인명피해가 났다고 변명했다.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8912월 아르메니아 의회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합병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소련은 공화국의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다. 그해 아르메니아인은 자국내 17만명의 아르제바이잔인을, 아르제바이잔은 35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서로 추방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그해 92일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114일 아르제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해 경제 봉쇄를 단행했다. 카르바흐는 19911210일 국민투표를 거쳐 199216일 독립을 선포, 아르자흐 공화국(Republic of Artsakh)을 수립했다. 국명 자체를 아르메니아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 나라는 유엔 회원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도 승인하지 않은 미승인국가다. 다만 소련 해체후 분리된 트란스니스트리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와 같은 미승인국들이 동질감을 느껴 국가로 승인하고 있다.

지정학자들은 이처럼 분쟁이 잠재화되어 있는 지역을 동결 분쟁지역(frozen conflict area)라고 명명한다.

 

명목상 독립 후에도 분쟁이 일어났다. 19922월 호잘르(Xocalı)시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군이 충돌해 전면전으로 확산되었다. 인구로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 비해 3배나 많고, 바쿠 유전도 확보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병력도 아제르바이잔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전투와 외교에서는 아르메니아가 이겼다. 아르메니아군은 파죽지세로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진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 내 체첸 반군,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까지 지원을 받았지만, 연이어 전투에서 패했다. 6년 전쟁에서 아르메니아측은 4,592명이 전사했는데 비해 아제르바이잔은 25,000~3만명이 죽어 나갔다.

 

7월 18일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요구하는 아르제바이잔인들(바쿠) /위키피디아
7월 18일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요구하는 아르제바이잔인들(바쿠) /위키피디아

 

아르자흐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의 괴뢰국이다. 그동안 작은 분쟁이 수시로 일어났지만 국제적 뉴스가 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양국 사이에 전면전의 우려가 제기된다. 아제르바이잔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도 바쿠를 포함한 대도시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아르메니아의 후원을 얻고 있는 아르차흐 공화국도 계엄령을 선포하고 성인 남성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30년만에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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