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고대제국②…메카 순례 나선 말리왕국
아프리카 고대제국②…메카 순례 나선 말리왕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04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40~1670 서아프리카 이슬람 왕국… 순례여행 시 황금을 마구 뿌린 무사 왕

 

말리왕국(Mali Empire)1240년 가나왕국(Ghana Empire)이 쇠퇴할 무렵에 그 후예인 소소왕국(Sosso Empire)을 정복하고 1670년까지 서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한 이슬람 왕국이다. 지배 종족은 흑인 만딩카(Mandinka) 족이며, 토속종교를 믿는 가나왕국의 잔여세력을 제압하고 서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이슬람을 심었다.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 신자의 나라였다.

지배영역은 지금의 모리타니, 말리, 세네갈에 걸쳤으며, 4세기 동안에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이슬람 제국을 형성했다. 이 시기에 이슬람 여행작가 이븐 칼둔, 이븐 바투타, 레오 아프리카누스 등이 이 왕국을 방문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자체문자는 없지만 전승문화와 유물 등을 통해 왕국의 위용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말리 공화국(Republic of Mali)이 이 고대왕국의 이름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호로 사용하고 있다.

 

말리왕국 전성기의 영역 /위키피디아
말리왕국 전성기의 영역 /위키피디아

 

수도는 한곳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첸네(Djenné)와 팀북투(Timbuktu) 등이 주요도시이자 수도로서 기능을 했고, 현재 그곳에는 말리 왕국이 건설한 진흙 모스크가 서 있다. 1)

 

말리왕국의 건국자는 순지아타 왕(Sundiata Keita, 1217~1255)이다. 그는 만딩카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의 역량을 강화한 후 키리나 전투(Battle of Kirina)에서 자신들을 지배하던 소소왕국을 제압하고 이슬람 왕국을 건설했다.

 

1375년 카탈루냐 지도에 그려진 만사 무사 왕의 메카 순례 그림 /위키피디아
1375년 카탈루냐 지도에 그려진 만사 무사 왕의 메카 순례 그림 /위키피디아

 

순지아타 이후 말리왕국의 국왕들은 이슬람 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메카를 방문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만사 무사 왕(Mansa Musa Keita)이다.

만사 무사는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다. 그는 1324~25년 사이에 메카를 순례했다. 북아프리카를 거쳐 중동까지 그의 순례 행로에는 6만명이 수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행은 모두 페르시아산 비단으로 만든 정장을 입었으며, 노예만 12,000명이 동원되었다. 노예는 1인당 1.8kg의 금괴를 소지했다. 아내만 800명이 동행했고, 80마리의 낙타에는 마리당 100kg의 금을 실었다.

무사 왕은 순례길에 가난한 사람을 보면 금을 주었다. 이집트의 카이로, 아라비아 반도의 메디나에서도 그는 금을 펑펑 썼다. 또 현지의 값비싼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메카에 도착했을 때 금이 떨어졌다. 그는 비싼 이자를 보장하고 금을 빌려서 또 썼다. 그의 무절제한 낭비벽으로 메카와 카이로, 메디나에서는 금이 홍수처럼 쏟아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 수많은 목격자들이 기록과 구전으로 그의 소비벽에 대한 스토리를 남겼다. 지중해 지역에서 그는 금 가격을 움직이는 조작자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성지 순례에서 얼마나 많은 금을 썼던지, 그후 10년간 말리왕국에선 금부족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만사 무사 왕의 재임시기(1312~1337)가 말리 왕국의 전성기였다. 2)

 

첸네의 말리왕국 모스크 /위키피디아
첸네의 말리왕국 모스크 /위키피디아

 

말리왕국은 가나왕국처럼 사하라사막 남부 반건조지대인 사헬(Sahel) 지역의 교통로를 지배하면서 통행세를 받는 무역국가였다. 주요 거래품목은 금과 소금이었다.

말리왕국은 가나왕국과 달리 자체 내에 3개의 주요 금광과 북부에 소금광산을 확보하고 있었다. 왕국은 금과 소금을 북부 모로코와 남부 흑인지역에 매매했고, 또 이동상인조작으로 캐러반(caravan)을 조직해 거래를 했다. 말리왕국에서는 금에 대해 특별한 가치 기준이 없었는데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통되던 금화 디나르(dinar)와도 호환했다고 한다.

이븐 바투타의 기록에 따르면, 캐러반에는 수백명의 여성들이 따라다녔는데, 상단의 일을 돕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 자유가 없는 고용자였다고 한다.

말리왕국의 또다른 주요 거래품목은 노예였다. 그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흑인들을 잡아다 광산이나 지중해 연안의 이슬람 국가로 수출했다. 유럽인들이 노예무역을 하기 이전에 이 흑인왕국은 다른 종족의 흑인들을 잡아다 인신매매를 했던 것이다. 다만 노예를 사달은 사람들은 노예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말리왕국의 서적 사본 /위키피디아
말리왕국의 서적 사본 /위키피디아

 

말리왕국은 지방분권형 국가였다. 지방에 만딩카족의 지배자를 파견했지만 세금을 걷는 일 이외에는 현지 부족에게 자치권을 맡겼다. 이런 느슨한 지배가 말리왕국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게 했다는 분석이 있다.

왕국은 준직업군인을 두고 있었다. 평화시에는 이들이 캐러반을 보호하다가 전시에는 전국민을 동원했다. 주요 무기는 활과 창이었다. 때로는 불화살을 이용해 화공작전에 동원하기도 했다.

 

이슬람 사료를 종합할 때 말리왕국에 3개의 왕조가 있었고, 21명의 왕이 지배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리왕국도 15세기 이후 약화되었다.

말리 영토 내에 있던 부족인 송가이(Songhai) 족이 힘을 얻으면서 말리왕국을 압박했다. 게다가 1591년엔 북쪽에 있던 모로코가 쳐들어 왔다. 교역로가 차츰 적들에게 빼앗기면서 말리왕국은 쇠약해졌다. 이후 말리왕국은 송가이왕국(Songhai Empire)의 지방정부로 전락하게 되었다. 1670년에는 바마나왕국(Bamana Empire)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말리왕국의 명줄이 끊어졌다.

 


1) Wikipedia, Mali Empire

2) Wikipedia, Mansa Mus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