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사②…이슬람과 유대인의 도전
에티오피아사②…이슬람과 유대인의 도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0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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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왕국, 이슬람에 홍해 제해권 빼앗긴후 쇠퇴…자그웨 왕국이 계승

 

에티오피아의 고대 악심왕국은 무역국가였다. 악숨은 강력한 해군으로 홍해와 나일강 상류를 장악했다.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나일강 하류의 누비아(Nubia), 상류의 흑인왕국, 인도의 여러나라와 교역했다. 또 지중해로 진출해 로마제국과도 물건을 사고 팔았다. 주요 수출품목은 상아, 거북등, , 에메랄드였고, 비단과 향료를 수입했다.

악숨왕국은 농산물과 가축도 생산했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토양은 지금보다 훨씬 기름졌고, 밀과 보리와 같은 곡류와 소와 양, 낙타 등 가축을 길렀다. 코끼리의 상아와 코뿔소의 뼈를 얻기 위해 사냥도 했다. 그들은 이렇게 얻은 농산물과 축산물을 로마와 페르시아, 이집트의 상인들에게 팔았다. 악숨에는 금과 은, 소금 광산도 있었다. 특히 소금은 주요 수출품이었다.

교역은 주로 해로를 이용했으며, 육로를 이용해 지중해와도 연결했다.

에티오피아 지역의 악심왕국이 수단 지역의 쿠시왕국과 대립하게 된 것도 무역로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악숨은 이집트와 거래하기 위해 나일강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 중간에 쿠시왕국이 길을 막고 있었고, 쿠시왕조로서도 홍해를 이용하려면 악심왕국이 걸림돌이 되었다. 두 나라의 무역 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되어 350년경에 악숨이 쿠시를 공격해 멸망시킨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1)

 

에리트라해 교역로 /위키피디아
에리트라해 교역로 /위키피디아

 

악숨왕국(Kingdom of Aksum)은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또다른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제국과 친교했다. 이교도 국가인 쿠시왕국을 정복한 후 악숨은 홍해 건너편에 있는 예멘지역을 지배하게 된다. 칼레브(Kaleb) 왕 때(510~540)의 일이다.

칼레브 왕이 예멘을 침공한 것은 서기 520년으로 추정된다. 예멘 일대에는 힘야르(Himyar) 왕국이 있었는데, 유대인인 유수프 아사르 야타르(Yusuf Asar Yathar) 왕이 기독교를 탄압했다. 악숨의 칼레브 왕이 군대를 보내 힘야르군을 쳐부수고 유수프 왕을 죽였다. 그리고 현지 출신의 기독교도를 힘야르 총독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525년에 악숨에서 파견한 장군 아브라하(Abraha)와 그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총독을 쫓아내고 예멘 일대를 지배했다. 악숨왕조는 군대를 파병했지만 아브라하 일당을 꺾지 못했다. 이후 아브라하는 악숨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준독립적으로 예멘을 통치했다.

아브라하가 죽고 그의 아들이 예멘을 통치할 때 배다른 아들 마드-카리브(Ma'd-Karib)가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다. 그러자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가 예멘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다. 악숨왕조와 동로마제국의 동맹관계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마드-카리브는 사산조 페르시에의 후스로우 1(Khosrow I)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로 인해 예멘 땅에서 악숨과 페르시아 사이에 전쟁(AksumitePersian wars)이 벌어졌다. 전쟁은 570년과 578년 두 차례 벌어졌는데, 최종 승자는 페르시아였다. 2)

 

마호메트 일행이 악숨 왕에게 보호를 요청하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마호메트 일행이 악숨 왕에게 보호를 요청하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예멘을 페르시아에게 빼앗긴 이후 홍해에서 악숨의 해상활동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이슬람이었다.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이 615년 메카를 지배하던 쿠라이시족에 쫓겨 탈출(1차 헤지라)할 때, 그들의 망명지가 악숨왕국이었다. 아리비아인들은 당시 에티오피아를 아비시니아(Abyssinia)라 불렀다. 악숨왕국은 이들 종교적 망명자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보호 주었다.

이슬람 지도자들이 아라비아 반도를 석권한 이후엔 생각이 달라졌다. 630년 우마르 칼리프는 군대를 보내 악숨왕국의 항구 아둘리스(Adulis)를 쳐들어 왔다. 악숨왕국이 이슬람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홍해의 제해권을 잃게 되었다. 3)

 

제해권을 빼앗긴 후 무역국가로서의 역할이 위축되었다. 악숨왕국의 주화 생산이 7세기초에 중단되는데 이런 실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악숨의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했고, 사람들은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수도 악숨도 피폐해져 이동했는데, 그 위치가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악숨왕국은 고립된 국가로 전락한다.

 

악숨왕국의 쇠퇴에 기여한 또다른 요인으로 기후변화가 거론된다. 1세기 이후 악숨왕조 전성기까지 우기가 3개월 보름에서 7개월로 늘어났다. 에티오피아 대지는 인구를 먹여 살릴만큼 충분한 식량을 공급했다.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수익과 산물이 풍요를 더했다. 하지만 무역로가 끊기면서 악숨왕국의 인구는 식량난에 봉착했다. 그들은 식량생산과 목초지 확보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게 되었다. 서기 650년 이후 악숨왕국의 토질은 급격하게 저하되었고, 8세기 이후엔 기후변화로 강우량이 줄어들었다. 이런 환경변화가 고대 에티오피아 왕국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는 이론이다.

 

에티오피아의 교회 /위키피디아
에티오피아의 교회 /위키피디아

 

현지인들이 전하는 구전기록에는 에티오피아 고원으로 쫓겨난 유대인들이 최종적으로 악숨왕국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주디트(Judith, 또는 Yodit, Gudit)라는 유대인 여왕이 960년경에 악숨왕국을 쳐들어가 교회와 문서들을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악숨 에자나왕이 325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이에 붊반을 품은 정통 유대인들이 고원지대로 들어가 별도의 왕국(Kingdom of Semien)을 세웠다. 유대인들은 600년을 벼르다가 악숨 왕국이 쇠약한 틈을 타서 타도한 것이라는 얘기다.

주디트 여왕에 관한 설화는 전승기록, 역사자료등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여왕은 악숨의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관을 쓰고 악숨의 영토를 40년간 통치했다고 한다. 그녀의 악행은 아직도 북부 에티오피아에는 전설적으로 전해온다. 유물 발굴조사에서 이 식기에 불탄 교회와 침약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서양의 역사학자들은 주디트를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한다. 유럽의 학자들은 주디트라고 하는 여왕이 이슬람일 가능성, 이교도일 가능성 등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이 그녀를 유대인으로 몰아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4)

일부 서양학자 중에는 악숨왕국이 언제 멸망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1200년 경의 에티오피아 /위키피디아
1200년 경의 에티오피아 /위키피디아

 

에티오피아를 800~900년간 지배하던 악숨왕국이 사라진 후 주디트 여왕의 후손들이 에티오피아를 통치했다. 주디트는 악숨 왕가를 몰살했다. 전설에 따르면, 악숨의 충신이 왕의 어린 계승자를 몰래 빼돌려 이웃 셰와(Shewa) 왕국으로 피신시켰다고 한다.

주디트 여왕의 후손들도 오래 가지 못했다. 1137년 마라 타클라 하이마노트(Mara Takla Haymanot)가 자그웨 왕조(Zagwe dynasty)를 일으키고 비기독교 왕국인 주디트 왕조를 멸망시켰다. 그는 악숨의 마지막 딜 나오드(Dil Na'od) 왕의 딸과 결혼했다. 이로써 자그웨 왕조는 악숨왕조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갖고 형식적으로 솔로몬 왕가를 잇게 되었다. 5)

자그웨 왕국은 악숨왕국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기독교 왕국을 이어나갔다.

 


1) Wikipedia, Kingdom of Aksum

2) Wikipedia, Kaleb of Axum

3) Wikipedia, Migration to Abyssinia

4) Wikipedia, Gudit

5) Wikipedia, Zagwe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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