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한글사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글사전은 순우리말로 ‘말모이’인데, 말을 모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다. 최초의 말모이 원고 집필은 1911년 한글학자 주시경과 그의 제자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가 침필에 침여해 시작되어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1914년까지 이루어졌다. 한글을 통해 민족의 얼을 살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의도였다.
본래 여러 책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1책만 전해지고 있다.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체로 썼고 ‘알기’, ’본문‘, ’찾기‘, ’자획찾기‘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알기‘는 범례에 해당하는 6개 사항을 표시해 괄호 속에 품사를 제시했으며, 뜻풀이는 한글 또는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했다. ’찾기‘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했고,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의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 앞에는 각각 ’+‘, ’ב를 붙여 구분했다.
전해오는 말모이 원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러한 체제가 한 눈에 보일 수 있는 사전 출간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원고지 형태의 판식(板式)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치 옛것과 새것이 혼합된 듯, 고서(古書)의 판심제(版心題)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 라는 서명을 새겼고, 원고지 아래 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첫 단어와 마지막 단어, 모음과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등의 표기 방식이 안내되어 있다.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1916년 김두봉이 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문법책인 <조선말본>을 간행하기도 했으나, 김두봉이 3ㆍ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상해로 망명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원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으로 이어져 우리말 사전 간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되었다.
말모이 원고는 현존 근대 국어사 자료 중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위해 남은 최종 원고이며, 국어사전으로서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 편찬 역량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자료다. 단순한 사전 출판용 원고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가 1929~1942년에 이르는 13년 동안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사)한글학회(8책), 독립기념관(5책), 개인(1책) 등 총 3개 소장처에 분산되어 있다. 특히, 개인 소장본은 1950년대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故)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말 큰사전 원고’의 「범례」와 「ㄱ」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다. (사)한글학회 소장본은 총 12책이나, 4책은 광복 후〜1950년대 작성된 여벌 원고(전사본)로 확인되었다.
‘말모이 원고’가 출간 직전 최종 정리된 원고여서 깨끗한 상태라면, 이 ‘조선말 사전 원고’ 14책은 오랜 기간 동안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집필ㆍ수정ㆍ교열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손때가 묻어 있다.
이 원고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 10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과 관련 인물들을 검거해 투옥하고 재판한 사건으로, 이윤재, 한징은 옥중 사망했고 최현배 등 11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해방후 1945년 9월 8일 경성역(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원고가 발견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57년 편찬한 것이 ‘큰 사전’(6권)이다.
1947년 10월 9일 제1권을 발행한 이후 2권은 1949년 5월 5일, 3권은 1950년 6월 1일, 4권은 1957년 8월 30일, 5권은 1957년 6월 30일, 6권은 1957년 10월 9일 등 모두 6권으로 발행되었다. 이때 1〜2권은 ‘조선말 큰 사전’, 3〜6권은 ‘큰 사전’이라 서명을 붙였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자 결과물로서 국어사적 가치가 있다. 게다가 조선어학회 소속 한글학자들 뿐 아니라 전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의 염원이 담겨있다.
조선말 큰사전을 만들기 위해 1929년 10월 31일, 이념을 망라해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결성해 편찬 사업이 시작되었다. 영친왕(英親王)이 후원금 1,000원(현재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했으며, 각지의 민초(民草)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오는 등 계층과 신분을 뛰어넘어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 맞선 범국민적 움직임이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식민지배 상황 속에서 독립을 준비했던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이며,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실체다. 또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다.
문화재청은 ‘말모이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 524-2호) 등 2종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