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서도 대가야 질그릇 조각 나왔다는 주장
부여에서도 대가야 질그릇 조각 나왔다는 주장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0.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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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거론하며 고고학적 자료 강조…사비기 초기 건물지 확인

 

부여 부소산성 아래 쌍북리 유적지에서 백제시대 집터가 발견되었다. 그 집터에서 여러 자기 조각들이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대가야 토기라고 발굴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여 쌍북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기 초기 왕궁과 관련된 주요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와 대가야 토기, 중국제 자기, 옻칠 토기 등 중요 유물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부여 쌍북리 유적은 부소산성, 부여 관북리 유적과 더불어 백제 사비기 왕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되어 왔다. 이번에는 백제 시대 건물지 6동과 약 30m 길이의 장랑형(長廊形, 동서방향으로 긴 형태) 유구, 울타리, 배수로, 우물 등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부여 쌍북리 유적 출토유물 /문화재청
부여 쌍북리 유적 전경 /문화재청

 

이중 건물지1은 중앙에 자리한 사각형의 건물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부속건물이 추가된 역 ()’자형 의 건물로, 1개의 구덩이 양쪽으로 30내외의 기둥을 세운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건물지는 지금까지 사비도성 내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라고 한다.

건물지2는 건물지1과 동일한 위치에 약 30가량 성토한 뒤 조성되었는데, 동서길이 1,240, 남북길이 720인 대형건물지이다. 건물지는 정면 8, 옆면 4칸의 벽주식 건물로 주칸 거리는 175내외다. 이와 유사한 형태와 크기의 건물지는 공산성 내 왕궁 관련 유적에서 확인된 15호 건물지가 있는데, 이 건물지는 공산성 유적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지다.

 

부여 쌍북리 유적 출토유물 /문화재청
부여 쌍북리 유적 출토유물 /문화재청

 

발굴 장소에서 대가야 토기, 중국제 자기, 옻칠토기 등이 나왔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대가야 토기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비도성 내에서 대가야 토기가 출토된 사례가 드믈었기 때문이다.

발굴자들은 토기 조각 하나를 놓고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았다. 주름 무늬의 토기 조각이 나왔는데, 이 토기가 대가야 토기와 닮았다는 것이다. 발굴자들은 이 토기를 대가야 토기로 단정하고, 대가야 멸망 시점인 562년 이전에 부여 쌍북리 유적이 조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538) 직후에 이 건물을 지었다는 논리다.

게다가 부여문화재 연구소는 <일본서기>도 거론했다. 일본서기에는 흠명천황(欽命天皇) 2(541)5(544)에 대가야, 아라가야 등 가야 각 국의 사신이 백제에 온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 기록을 근거로 백제와 가야가 긴밀한 교류관계에 있었고, 이 질그롯 조각이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된다고 주장했다.

발굴자들이 고대 유물을 발굴한 성과를 자랑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릇 조각 하나를 지나치게 견강부회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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