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사①…인도양 무역거점, 킬와 술탄국
동아프리카사①…인도양 무역거점, 킬와 술탄국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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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왕국과 아랍 페르시아 인도 연결하는 중계무역…포르투갈 식민지 전락

 

동아프리카는 인류의 고향이다. 동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먼 옛날 이집트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다는 게 고고인류학자들의 유력한 학설이다. 이 동아프리카에 반투족(Bantu) 이동한 것은 2,500~3,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동아프리카는 인도양에 면해 있다. 인도양에는 계절풍이 부는데, 이 바람을 이용해 오래 전부터 무역 거래가 이뤄져 왔다. BC 1500년전부터 남인도와 스리랑카(실론)에서 동아프리카까지 상품 교역이 이뤄졌다고 한다. 여름엔 무역풍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인도로 건너갔고, 겨울엔 반대쪽 바람을 이용해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1)

 

고대 지중해 해로 /위키피디아
고대 지중해 해로 /위키피디아

 

동아프리카의 탄자니아 해변에 킬와 키시와니(Kilwa Kisiwani)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이 있다. 바로 킬와 술탄국(Kilwa Sultanate)의 유산이다.

킬와국의 스토리는 지금부터 1천년도 더 되는 서기 960~1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은 페르시아(이란) 남서부 시라즈(Shiraz)라는 도시에 살던 알리 이븐A(li ibn al-Hassan Shirazi)이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시라즈의 지배자였고, 어머니는 에티오피아의 흑인 노예였다. 아버지가 죽고 유산상속 싸움이 벌어져 노예의 자식인 알리 이븐은 한푼도 없이 쫓겨나게 되었다. 그는 가솔과 추종자들을 이끌고 소말리아 모가디슈(Mogadishu)로 갔지만, 그곳 통치자에 거슬려 남쪽으로 더 내려가 킬와에 도착하게 되었다. 킬와는 원래 대륙과 연결된 연육도(連陸島)였다고 한다.

알리 이븐은 반투족 왕에게 옷감을 주고 그 곳을 샀다. 그러나 반투족 왕이 마음을 바꿔 땅을 돌려달라고 했다. 알리 이븐과 추종자들은 육지와 이어지는 곳을 파서 섬으로 만들고 그 섬을 차지했다, 그곳에 동아프리카 최초의 이슬람 왕국을 세웠다고 한다.

 

킬와 술탄국 위치 /위키피디아
킬와 술탄국 위치 /위키피디아

 

킬와는 고대로부터 인도양 무역로의 중심지였다. 킬와에 이슬람 왕국이 세워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아랍과 페르시아 상인들이 몰려 왔다.

12세기에 9대 술탄 술래이만 하산(Suleiman Hassan)은 남쪽의 해안 거저 소팔라(Sofala)를 차지했다. 현재 모잠비크에 있는 이 도시는 당시 내륙에 있던 짐바브웨 왕국(kingdom of Zimbabwe)과 무타파 왕국(Kingdom of Mutapa)의 물산이 집결되는 곳이었다. 무팔라에는 흑인왕국들에서 생산되는 상아와 금이 모여 들었다.

킬와 술탄국은 흑인왕국에서 금과 상아를 사서 아랍과 페르시아, 인도에 팔았다. 대신에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과 인도의 면화를 사서 흑인 왕국에 팔았다. 이 중계무역에서 킬와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어 해안도시를 하나씩 점령하거나 복속시켜 몸바사(Mombassa), 펨바(Pemba), 잔지바르(Zanzibar), 마피아(Mafia), 코모로(Comoro), 모잠비크(Mozambique)를 영향권에 넣었다. 술탄국은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Swahili coast)의 지배자로 부상했다.

킬와국은 모잠비크 남쪽으로 진출하려 했지만, 당시의 조선과 행해 능력으로 해류를 거스르지 못했다.

 

킬와의 모습.(1572년 그림) /위키피디아
킬와의 모습.(1572년 그림) /위키피디아

 

킬와는 페르시아와 아랍인으로 지배종족을 구성했지만 흑인들과도 통혼을 하며 인종적 통합정책을 취했다. 이 문화융합 정책은 흑인왕국과 아랍-페르시아의 교류를 원활하게 했다.

이 술탄국은 농사를 짓지 않았다. 곡물과 육류는 반투족 왕국에서 구했고, 그들에게 댓가로 옷감이며 자기 등 생활필수품을 제공했다. 킬와가 교역한 나라는 지금의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지다. 그들은 중간 상인을 활용해 인도, 아랍, 페르시아와 아프리카 내륙지역을 네트워크로 연결했다.

다만 자연에서 나는 코코넛 나무는 자급했다. 해안가에서 자라는 코코넛 나무로 옷감도 짜고 선박을 만들고, 땔감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동아프리카에서 무역왕국으로 성장하던 킬와 술탄국의 평화는 유럽인들에 의해 무너졌다. 1497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면서 킬와를 들렀다. 이후 킬와의 500년 동아프리카 무역 독점은 무너졌다. 2)

 

킬와 술탄국의 요새 /위키피디아
킬와 술탄국의 요새 /위키피디아

 

킬와 술탄국의 붕괴는 내부 분열에서 시작된다.

15세기말, 국왕(술탄)은 권신들에 의해 권력이 약화되었다. 권신들 사이에서도 권력 다툼이 지속되었다.

포르투갈 항해가가 도착하기 직전에 에미르 이브라힘(Ibrahim)이 권력을 잡았다. 이브라힘은 술탄을 갈아치우고 권력을 농단했다. 이브라힘의 반역행위에 대해 지방 도시의 수장들이 반발해 독립 정권을 세웠다. 이브라힘은 킬와만 지배하고 지방 도시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바스코다가마의 항해로 /위키피디아
바스코다가마의 항해로 /위키피디아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도착해 함포로 위협하며 협조를 요구했다. 킬와의 이브라힘에 반대하는 모잠비크, 몸바사, 말린디 등의 위성 도시들이 하나씩 하나씩 포르투갈 정복자에 협조했다. 다가마는 비협조적인 킬와를 약탈하고 인도를 떠나갔다.

1505년 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Francisco de Almeida)가 지휘하는 포르투갈 함대가 킬와에 도착해 이브라함을 내쫓고 병력 500명을 남겨 통치를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무하마드 아르코네(Muhammad Arcone)를 술탄으로 옹립했다. 그런데 아르코네는 왕족이 아니었다. 그는 반발을 의식해 왕족 중에서 미칸테(Micante)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런데 포르투갈이 지명한 술탄 아르코네가 현지 귀족에 의해 살해되고, 미칸테가 술탄에 올랐다. 포르투갈의 현지총독은 미칸테가 포르투갈에 충성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를 퇴위시키고 아르코네의 아들 후세인(Hussein ibn Muhammad)을 새 술탄에 앉혔다.

킬와와 위성도시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미칸테 지지자들은 유럽인에 의해 괴뢰정권이 들어섰다면서 도시를 점거하고 후세인을 몰아내려 했다. 후세인은 포르투갈 병영으로 도망쳤다.

인도에서 킬와 반란소식을 들은 알메이다는 즉시 돌아와 미칸테와 후세인을 불렀다. 알메이다는 후세인에게 손을 들어줬다.

다시 술탄이 된 후세인은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그러자 알메이다는 다시 후세인을 갈아치우고 미칸테를 술탄으로 올렸다.

이렇게 킬와 술탄국은 포르투갈에 의해 국왕이 손바닥 뒤집듯 교체되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킬와의 모스크 /위키피디아
킬와의 모스크 /위키피디아

 

최근 호주 북쪽 섬들에서 킬와의 동전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들로 보아 킬와 술탄국이 인도양 최동단인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무역거래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1) Wikipedia, Indian Ocean trade

2) Wikipedia, Kilwa Sulta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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