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사②…노예무역의 거점, 잔지바르
동아프리카사②…노예무역의 거점, 잔지바르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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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포르투갈 몰아내고 이슬람 왕국 수립…내륙과 인도양 무역에 주력

 

현재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자치주 잔지바르(Zanzibar)1698~1861년 사이 160여년 동안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오만(Oman)의 영토였다. 무려 3,800km나 떨어진 이 섬이 아랍의 영토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은 1505년 탄자니아 해안에 있던 킬와 술탄국(Kilwa Sultanate)을 보호령으로 만들고, 그 북쪽에 있는 잔지바르도 통치했다. 포르투갈은 1609년 디우 전투(battle of Diu)에서 오스만투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함대를 격퇴하고 무스카트 등 아라비아 남쪽 해안의 여러 항구를 장악했다.

17세기 중엽, 오만의 내륙에 살던 야루바(Yaruba) 부족이 다른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포르투갈의 식민통치에 저항했다. 오만은 포르투갈의 요새를 하나씩 제압하며 수도 무스카트를 되찾았다. 1652년에 오만은 함대를 아프리카로 보내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거점인 잔지바르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어 1660년에는 포르투갈의 몸바사(케냐)를 공격했다.

술탄 빈 사이프(bin Saif) 재위 시기에 오만은 동아프리카 포르투갈 식민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1696년 빈 사이프는 몸바사를 공격해 포르투갈군 2,500명을 포위했다. 33개월의 포위 공격에서 포르투갈군은 13명만 살아 남아 오만군에 항복했다. 곧이어 오만은 1698년 잔지바르도 점령했다. 포르투갈은 탄자니아와 케냐 일대 해안을 오만에게 내주고 모잠비크로 쫓겨갔다. 1)

포르투갈의 패주는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아프리카를 식민통치하다 현지인에 쫓겨난 일로는 첫 번째로 꼽힌다. 이로써 아랍인들은 이슬람이 지배하던 동아프리카 해안지대를 200년만에 되찾게 되었다. 양측이 이 해안을 놓고 뺏고 뺏기는 싸움을 벌인 것은 그곳이 인도양 무역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만의 최대영역(1856년) /위키피디아
오만의 최대영역(1856년) /위키피디아

 

오만은 동아프리카 영토의 수도를 잔지바르에 두었다. 오만인들은 동아프리카 해안에서 무역활동을 재개했다. 주거래 품목은 코끼리의 상아뼈였다. 거북껍질, 코팔(천연수지), 정향(향료), 코코넛, 야자실, , 노예 등도 거래되었다. 북동 계절풍이 불 때 아라비아와 인도의 상인들이 수백척의 배를 이끌고 잔지바르에 도착해 거래하고, 이듬해 3~4월에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 그들은 썰물처럼 돌아갔다. 잔지바르는 동아프리카의 중심 무역항이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오만 술탄국은 귀족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 귀족들은 흑인 노예를 부려 플랜테이션 농업을 일으켰다. 주요 생산품은 정향(향료)이었다.

 

잔지바르의 술탄 왕궁 /위키피디아
잔지바르의 술탄 왕궁 /위키피디아

 

오만인들은 잔지바르에 하얀 산호석(coral stone)으로 궁궐을 지었다. 유럽인들은 이 아름다운 도시를 스톤타운(Stone Town)이라 불렀다. 아리바이어로는 Mji Mkongwe, 구도시(old town)란 뜻이다.

도시 내에는 상점과 가게, 시장(바자르), 사원(모스크)가 지어졌고, 거리는 아랍, 인도, 유럽, 아프리카 전통이 두루 섞이며 형성되었다. 잔지바르를 처음 방문한 유럽인들은 이 도시를 보고 경탄한다. 도시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도시는 해안에서 보면 번지르르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악취가 풍겼다고 유럽인들은 기록을 남겼다. 버려진 야채, 동물 배설물, 쓰레기, 심지어 시체가 버려져 온갖 냄새가 열대의 뜨거움과 함께 진동했다는 것이다. 주2)

게다가 잔지바르에는 흑역사가 숨어 있다. 이 곳에서 아랍인들이 흑인노예들을 매년 4~5만명 거래했다는 사실이다. 1811년 잔지바르 노예시장을 목격한 한 서양인은 이렇게 전한다.

노예로 붙잡혀 온 흑인들은 입과 이빨들을 검사받는다. 여자들은 가슴도 체크된다. 걷거나 뛰기도 한다. 신체가 건강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격이 매겨진다. 새 주인이 그들을 데려간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이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들은 방치되어 험하게 다뤄진다. 그들은 우울해 보였고,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노예도 있었다.”

아랍인들은 흑인 노예 가운데 3분의1을 현지에서 사용하고, 3분의 2년 아랍과 이집트, 페르시아, 오스만 투르크에 수출했다. 남겨진 노예들을 현지 농장에 데려가 혹사시켰다. 농장에서 매년 30%의 노예가 죽어나갔다고 한다.

잔지바르의 아랍인들은 폭력 문화에 익숙해 있었다고 서양인들이 전한다. 형제들 간에도 언쟁을 벌이다 죽이는 경우가 허다하고, 노예에겐 아예 인간 대우를 하지 않았다. 노예는 개-돼지처럼 다뤄졌고, 얼마나 가혹했던지, 아랍인들이 지배하던 시기에 흑인 반란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잔혹함이 1964년 잔지바르의 공산혁명을 초래한 이유였다. 그들은 수백년의 설움을 한꺼번에 폭발시켰던 것이다.

지금도 잔지바르에는 노예를 묶어두었던 시설을 관광지로 공개하고 있다. 일부 한국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유럽인들이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노예를 학대한 사람들은 아랍인들이었다. 3)

 

잔지바르의 노예수용소 /위키피디아
잔지바르의 노예수용소 /위키피디아

 

1840년 오만의 술탄 사이드(Said)는 수도를 아라비아 반도의 무스카트(Muscat)에서 잔지바르로 이전했다. 그가 죽은후 형제간에 내분이 일어나 1861년에 나라를 오만과 잔지바르로 나눴다. 셋째 아들은 오만의 술탄이 되고, 여섯째 아들이 잔지바르의 술탄이 되었다. 진지바르가 오만에게서 독립한 것이다.

잔지바르 술탄국은 아프리카 내륙의 무역로를 장악해 콩고강 상류까지 무역거래를 했다. 북쪽으로는 한때 소말리아의 모가디슈까지 장악하기도 했다.

 

잔지바르 술탄국의 내륙 교역로 /위키피디아
잔지바르 술탄국의 내륙 교역로 /위키피디아

 

잔지바르는 19세기 후반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들의 침탈 대상이 된다. 영국은 일찍이 잔지바르의 노예제도 폐기를 요구해 술탄은 1876년에 노예제도를 폐기한다.

영국은 독일과의 협정에 의해 잔지바르를 차지하게 되었고, 1890년 잔지바르 술탄국을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영국 보호령 하에서 술탄제도는 유지되었다.

영국은 잔지바르를 보호령으로 통치하면서 노예제 폐지에 따른 인력부족을 인도인으로 메웠다. 영국 지배 시절에 인도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건너왔고, 영국 록밴드 퀸(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부모들도 이때 잔지바르로 이민을 왔다.

세월이 흘러 19631210일이 되자, 영국이 약속한 보호령 만기일이 돌아왔다. 영국은 잔지바르의 독립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술탄은 더 이상 보호조약이 필요없다면서 1219일 독립을 선언했다.

주권을 되찾은 잔지바르 술탄국은 한달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했다. 원주민 흑인들이 이듬해 112일 이민족인 아랍계 술탄가에 대항하며 공산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에 수천명의 아랍인과 인도인들이 살해되거나 투옥되고 추방되었다. 300년 가까이 잔지바르를 통치하던 아랍 이슬람 지배층은 노예의 후손에 의해 붕괴되었다.

흑인 혁명가들은 유럽인 뿐 아니라 인도인에 대해서도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머큐리가 17살 되던 해에 그곳을 떠난 것은 혁명 와중에 인도-파키스탄인들이 무차별로 살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잔지바르의 마지막 술탄 잠시드 빈 압둘라(Jamshid bin Abdullah)는 오만으로 망명을 갔지만, 그곳에서도 정착이 허용되지 않아 결국 영국으로 건너가 살았다. 그는 20209월에 오만으로 귀국이 허용되었다. 4)

 

잔지바르 시가지의 항공사진 /위키피디아
잔지바르 시가지의 항공사진 /위키피디아

 

잔지바르의 공산 정부는 소련과 동독, 중국의 지원을 받아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바다 건너 탕가니카(Tanganyika)와 합병을 선언했다. 나라의 덩치를 키워 제국주의 세력을 견제하자는 뜻이었다. 19641029일 탕가니카와 잔지바르는 나라 이름의 앞 글자를 합쳐 탄자니아 연합공화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을 수립해 오늘에 이른다.

 


1) Wikipedia, Ya'rubids

2) Wikipedia, Stone Town

3) Wikipedia, History of Zanzibar

4) Wikipedia, Jamshid bin Abdullah of Zanzi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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