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6점식 한글점자 ‘훈맹정음’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6점식 한글점자 ‘훈맹정음’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0.1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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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유물 2건 문화재 등록 예고…동해 북평성당 등 12건, 문화재 등록

 

일제 강점기에도 맹인들을 위해 한글점가 개발되었다.

문화재청은 1015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한글점자 훈맹정음제작 및 보급 유물, 한글점자 훈맹정음점자표 및 해설 원고 등 2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흰 지팡이의 날19801015일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지정한 날이다.

<훈맹정음>은 박두성(朴斗星, 1888~1963)1926114일에 반포한 우리나라 최초의 6점식 점자로, 일제강점기 시대 시각장애인들이 한글과 같은 원리를 통해 글자를 익히도록 한 고유 문자체계다.

이번에 등록예고된 훈맹정음 유물들은 한글점자 창제 당시의 시대상, 역사성을 되짚어보고 우리말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해당 유물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문화재로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한글점자 훈맹정음제작 및 보급 유물

훈맹정음의 사용법에 대한 원고, 제작과정을 기록한 일지, 제판기, 점자인쇄기(로울러), 점자타자기 등 한글점자의 제작·보급을 위한 기록, 기구 등 848점으로, 당시의 사회·문화 상황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시각장애인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한글점자 /문화재청
한글점자 /문화재청
맹사일지 /문화재청
맹사일지 /문화재청
점자 타자기 /문화재청
점자 타자기 /문화재청

 

한글점자 훈맹정음점자표 및 해설 원고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 등은 한글점자의 유래, 작성원리, 그 구조와 체계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훈맹정음이 창안되어 실제로 사용되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통해 당시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을 익히게 되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해당 유물은 714점이다.

 

훈맹정음 해설 /문화재청
훈맹정음 해설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또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대한제국애국가, 동해 북평성당 3건과 대한제국 군복 등 9건을 포함한 총 12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5호 동해 북평성당

1959년 건립한 시멘트 블럭 건물로 6.25전쟁 이후 시대적 배경 속에서의 건축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성당 본당으로서의 건축적 양식과 구조적 특징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고, 원형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강원 영동지역에서 갖는 천주교사적 의미와 함께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6호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안동의병 중 한사람이었던 이긍연(李兢淵, 18471925)이 을미사변 이후인 1895121일부터 18961011일까지 직접 보고들은 내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의병 군진의 결성부터 투쟁활동, 해산까지의 과정과 군사력 등 의병활동 당시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당 유물은 독립운동사 시발점인 을미의병 발상지 중 안동지역의 의병 활동 전모를 동시기에 기록한 상징적인 자료라는 점과 특히, 70~80명 가량 의병 성명이 등장하여 의병장 이외에 의병활동 정황을 알 수 없는 현재 시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97호 대한제국애국가

대한제국 시기 애국가 제정의 필요성에 의해 군악대 지휘자로 초빙되어 온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Franz von Eckert, 1852~1916)가 작곡한 것을 1902년 발행한 것으로, 관악합주용 총보와 한글와 독일어로 번역한 가사가 실려 있으며, 제작 경위를 밝히는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의 서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유물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 속에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려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외교 노력을 담고 있어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1호 전()대원수 상복

흑색 융()으로 제작된 근대 서양식 군복으로, 좌우에 각각 별 5개가 자수되어 있는 의령장(衣領章)과 소매에 11줄의 수장(袖章), 앞여밈 단추 9개 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3호 참장 예복

좌우 각각에 별 3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참장 계급을 나타내는 7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청색 융 제작 예복, 흑색과 청색 융으로 제작되고 상부에 이화문이 있는 예모, 금사광직으로 제작된 대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14점의 유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4호 보병 부령 상복

부령 계급을 나타내는 5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 융으로 제작된 상복 상의로, 좌우 흉부를 가로질러 매듭장식이 있는 늑골복(肋骨服) 형태인 것이 특징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5호 보병 정위 예복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정위 계급을 나타내는 3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더블 브레스티드 형태의 예복, 흑색과 홍색의 융으로 제작된 예모(禮帽, 모자), 금사광직으로 제작된 대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14점의 유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6호 보병 부위 예복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홍색 융 제작의 상의, 흑색·홍색의 융으로 제작된 예모, 금사광직으로 제작된 대례견장 등으로 구성된 총 16점의 유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7호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

1896년 민영환의 추천으로 육군 참위가 되어 근무하다가 1898년 부위로 진급하여 복무한 황석(黃淅, 1849-1938)이 착용하였던 군복이다. 예복은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흑색 융으로 제작된 상의를 비롯하여 입전모(立前毛식대(飾帶도대(刀帶) 5점이 남아 있으며, 상복은 흑색 융으로 제작된 상의와 상모, 소례견장 등 5점이 남아있다. 이외에도 하의 2점과 멜빵, 외투 등이 남아있어 다양한 종류가 현존하는 흔하지 않은 유물 구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8호 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정위 계급을 나타내는 3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예복·상복 상의를 비롯하여 예모, 대례견장과 소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28점의 유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9호 헌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홍철유)

1900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511월에 정3품 통정대부, 헌병대 육군헌병부위로 근무하였던 홍철유(洪哲裕)가 착용하였던 군복 28점이다. 예복 상의는 다색(茶色) 융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되었으며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과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예모와 입전모 등이 남아 있다. 상복으로는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는 다색(茶色) 융으로 제작된 상의가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543-10호 군위 부위 예복

좌우 각각 별 1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과 부위 계급을 나타내는 2줄의 수장(袖章)이 있고 흑색·짙은 녹색의 융으로 제작된 상의를 비롯하여 흑색·짙은 녹색의 예모, 입전모, 대례견장으로 구성된 총 15점의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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