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청년 사바틴, 명성황후 시해 목격하다
러시아 청년 사바틴, 명성황후 시해 목격하다
  • 이인호 기자
  • 승인 2020.10.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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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공사관, 중명전 등 건축에 관여…10.19.∼11.11. 덕수궁서 특별전

 

명성황후가 피살되던 1895108, 러시아인 사바틴은 조선의 궁궐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4시쯤 시위대 1대대장 이학균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조선 주재 일본공사였던 미우라 고로를 필두로 한성 주둔 일본군 수비대와 공사 관원, 낭인 집단 등이 경복궁에 난입한 것이다.

사바틴 초상화 /문화재청
사바틴 초상화 /문화재청

 

사바틴은 미국인 예비역 대령 다이와 일본인 침입자들을 저지하려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조선의 시위대가 도망치고 사바틴은 명성황후가 거처하는 건청궁 곤녕합(坤寧閤)에서 천인공노의 사건을 목격했다.

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이렇게 증언했다.

일본 자객 4~5명이 칼을 뽑았고, 긴 칼을 찬 일본인이 현장을 지휘했다. 20~25명의 자객들은 곤영합 마루를 넘어 옥호루, 사시향루, 정시합의 방을 샅샅이 뒤지면서 명성황후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궁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밖으로 질질 끌며 왕비의 소재를 추궁했다.”

일본 자객들은 사바틴에게 왕비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려달라고 위협했다. 사바틴은 엉뚱한 곳을 가르키고는 현장을 빠져 나와 주한러시아공사 이바노비치 베베르에게 사건 전모를 진술했다.

사바틴은 미국인 다이와 함께 을미사변을 목격한 외국인 2명중의 하나다. 그는 후에 경복궁 내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를 그렸고, 시해에 대한 증언을 기록해 두었다.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시해장소 지도 /문화재청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시해장소 지도 /문화재청

 

사바틴의 본명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Afanasy Ivanovich Seredin-Sabatin, 1860~1921)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지방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왕립예술아카데미에 1년간 재학하다가 건축학을 공부했으며, 그후 항해사가 되었다. 그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극동함대 소속으로 부임해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사바틴은 1883년 조선의 외교고문으로 부임한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에게 측량 토목기사로 고용되어 조선에 왔다.

처음에 인천해관에서 승선세관감시원(tidewaiter)으로 일했으며, 1888년 한성으로 가서 궁궐 건축을 담당했다.

1895년 을미사변을 목격한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잠시 조선을 떠났다가 1899년 경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서 1904년 러일전쟁 후 한반도를 떠나기까지 건축과 토목사업에 참여했다.

조선 사람들은 한자 음차(音借) 방식으로 성()인 세레딘-사바틴을 설덕(薛德), 살파정(薩巴丁), 살파진(薩巴珍)’ 등으로 불렀다.

 

러시아 공사관 본관 최초 설계 도면 정면도 /문화재청
러시아 공사관 본관 최초 설계 도면 정면도 /문화재청

 

그는 서울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 건립에 관여했다. 러시아 공사관 건립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직을 맡았던 베베르가 주도했는데, 사바틴은 공사관 건축을 위한 부지 매입, 도면과 예산을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공사관의 최초 설계안은 러시아 건축가 류뱌노프가 설계하였으며, 그중 사바틴이 관여한 것이 확실한 건물은 관문각과 러시아공사관이다.

그 외 제물포구락부, 독립문, 중명전, 정관헌, 손탁호텔 등 건물이 사비탄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덕수궁 중명전 /위키피디아
덕수궁 중명전 /위키피디아

 

그는 영어를 배워 영국신문의 극동 특파원을 겸임하기도 했으며 중국 심양의 북대하(北戴河) 등지에서 주택개발업을 벌이기도 했다.

1905년 러일전쟁 직후 그는 신경쇠약에 걸려 처자식을 놔두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홀홀단신 떠났다. 거기서 그는 시베리아 등지와 우랄 지방 등 러시아 곳곳을 방랑하다 1921년 사망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올해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1019일부터 1111일까지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라는 주제의 특별전을 개최한다. 부제는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으로 정했다. 전시는 19일 개막과 온라인 전시 공개를 먼저 시작하며 현장관람은 20일부터 덕수궁 중명전(2)에서 시행한다.

 

대한제국 황제의 개인 주택 계획안 /문화재청
대한제국 황제의 개인 주택 계획안 /문화재청
완공된 러시아 공사관 본관과 정문 전경 /문화재청
완공된 러시아 공사관 본관과 정문 전경 /문화재청
서울 정동 소재 구한말 주한 러시아 공사관 유적 /위키피디아
서울 정동 소재 구한말 주한 러시아 공사관 유적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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