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흑인왕국⑤…천년 왕조 카넴-보르누
아프리카 흑인왕국⑤…천년 왕조 카넴-보르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0.10.22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하라 사막의 교역 중심지…노예무역 성행, 1200년 왕조연대기 발견

 

차드호(Lake Chad)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사헬(Sahel) 지역에 있는 호수다. 그 지역은 1년의 대부분이 건기이고, 68월의 짧은 우기에 200mm 안팎의 비가 내리는 준사막지대다. 차드호 주변 저지대엔 지금 인구 3,000만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차드 호는 BC 5000년경엔 한반도의 5배나 되는 100넓이의 내륙의 바다였다. 유럽인이 1823년에 차드호를 처음 탐색했을 때, 세계 최대의 호수라고 평가했다. 지금은 쪼그라들었지만, 이 호수는 사하라 사막과 반건조지역을 이어주는 거대한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카넴-보르누 제국의 최대영역 /위키피디아
카넴-보르누 제국의 최대영역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중부 차드호 주변에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왕조국가가 있었다. 카넴-보르누 제국(KanemBornu Empire)이라는 나라였다. 이 나라는 차드의 카넴(Kanem) 지역과 나이지리아의 보르누(Bornu)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다. 700~1380년 사이를 카넴 왕국, 1380~1893년을 보르누 왕국이라 부른다. 왕국은 14세기 후반에 외부의 침략에 의해 중심지를 동부 카넴에서 서부 보르누로 이동했으며, 역사학자들은 두 시기를 합쳐 카넴-보르누 왕국 또는 제국이라 부른다.

이 왕국의 존재는 8~10세기 아랍인과 페르시아인들의 기록에 테다-투부(Teda-Tubu)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1851년에 독일 여행가 하인리히 바르트(Heinrich Barth)가 나이지리아 보르노주에서 아랍어로 된 기르감(Girgam)이란 연대기를 발견했다. 이 연대기에는 카넴-보르누 왕조의 69대 역대 군주 이름과 약간의 보조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 연대기는 그동안 아랍인들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 많아 카넴-보르누 왕조의 실체를 밝히는 사료로 인정받고 있다. 1)

왕조의 이름은 세푸와 왕조(Sefuwa dynasty) 또는 사이파와 왕조(Sayfawa dynasty)라고 불린다.

 

사하라 사막의 무역로 /위키피디아
사하라 사막의 무역로 /위키피디아

 

이 왕국은 전성기에 지금의 차드, 니제르를 포괄하고, 나이지리아 북부, 카메룬 북부, 리비아 남부, 수단의 일부를 걸치는 사하라 사막과 사헬지역에 대제국을 형성했다. 14세기 이후엔 카넴 일대를 잃고 나이지리아 보르누 일대로 위축되었다.

 

사하라를 건너는 캐러번 /위키피디아
사하라를 건너는 캐러번 /위키피디아

 

초기 카넴 왕국은 리비아 트리폴리와 차드호 중간지대의 무역로를 장악했다. 다양한 유목부족들이 연방형태로 결속되어 있었으며, 투부(Toubou)족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건국 시점은 서기 700년 경으로, 우리나라의 통일신라 초기에 해당한다.

이 왕국이 중앙아프리카의 차드호 근처로 남하한 것은 두가지 이유로 해석된다. 첫째는 사하라의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습지를 찾아 남하했고, 둘째는 다른 인종의 공격에 의한 것이다.

카넴-보르누 왕국의 군주는 마이(Mai)라고 불렀다. (마이)은 앞에 커튼이 쳐져 있는 커다란 상자 안에 앉아서 명령을 내렸고, 그 주변엔 맹수들이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차드호 근처로 내려온 카넴 왕국은 11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12세기 카넴 왕국의 왕은 10만명의 기병과 12만명의 보병을 보유할 정도로 세를 과시했다. 13세기엔 북아프리카 이슬람 술탄들에게 기린을 보내며 외교관계를 맺었고, 이집트 카이로에 이슬람 학교를 짓기도 했다.

 

14세기말에 카넴 왕국은 내부 분열이 일어난데다 사오(Sao)족이 북쪽에서 공격해 옴에 따라 거점인 카넴을 버리고 차드호 서쪽에 있는 보르누로 이동했다. 이 시기가 1377~1387년 경으로 파악되는데, 이때부터 카넴 시대에서 보르누 시대로 전환된다.

 

카넴부 부족의 전사들 /위키피디아
카넴부 부족의 전사들 /위키피디아

 

16세기에 보르누 왕국은 영토를 확장해 하우사(Hausa), 아히르(Ahir), 투아레그(Tuareg)족을 지배하게 된다. 이 무렵 보르누 왕국은 노예무역을 한다. 흑인들을 잡아 아랍국가에 팔았다. 아랍부족과 오스만투르크는 보르누에 머스킷 총을 주었고, 그 총으로 또 흑인들을 포획, 노예로 팔았다. 차드호와 트리폴리(리비아) 사이의 무역로는 주요한 노예 루트로 활용되었고, 지중해에 노예시장이 크게 형성되었다. 2)

보르누의 왕들은 메카로 순례여행을 떠났으며, 18세기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진출할 때에도 보르누는 마이에 의해 통치되었다.

19세기초 보르누 왕국은 풀라니(Fulani)족의 공격을 받아 왜소해져 명맥만 남아 있다가 1846년에 소코토칼리프국(Sokoto Caliphate)에 의해 사실상 멸망했다. 칼리프는 이슬람에서 정신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최고의 자리인데, 아프리카 중서부에서는 아무나 칼리프를 자칭했다.

그후 살아남은 왕조의 후계자들은 마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그 아래 단계인 셰후(shehu)라는 이름으로 이어가다가 1893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종말을 맞았다. 지금도 나이지리아 북부와 카메룬 북부의 보르누 후예들은 셰와를 추장으로 선출해 부락공동체를 이어가고 있다.

 


1) Wikipedia, Girgam

2) Wikipedia, KanemBornu Empire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